참된 믿음으로 성례에 참여하라.
미국의 위대한 물리 화학자 깁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Mathematics is a language.”
수학은 언어이다. 수학은 단순한 계산과 논리 흐름이 아니다. 사람들이 언어를 통해 대화하듯이 수학은 추상 언어를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렇다면 추상 언어란 무엇인가? 쉬운 예를 하나 들어보자. “광희에게 사과 3개가 있었는데 호동이가 이 중 하나를 슬쩍 먹어치웠다. 재석이에게 펜이 3개 있었는데 키가 큰 광수가 펜 한 개를 빌렸다.” 이 두 사건의 공통점을 수학식으로 나타내라고 하면 “3-1=2”로 나타낼 수 있다. 이처럼 현상의 독특한 특징이나 속성을 제거하고 서로 다른 두 현상 간에 보편성을 부여하는 과정을 “수학적 모델링”이라고 말하며 추상화에 필요한 기호, 수식을 가리켜 추상 언어라고 부른다.
수학적 모델링에는 표(sign)가 있다. 표란 실제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눈에 보이도록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하나, 둘, 셋과 같은 어림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1, 2, 3과 같은 숫자로 나타낼 수 있으며 이를 표라고 말한다. 성례와 이를 상징하는 실체 사이의 관계도 이와 같다.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죄씻음을 받지만 우리의 눈으로는 그 실체를 볼 수가 없다. 우리는 그 실체를 세례를 통해서 볼 수 있다. 세례를 받을 때 뿌리는 물은 죄씻음을 상징하는 표이다. 성찬도 마찬가지이다. 성찬이란 예수님의 몸을 상징하는 떡과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일을 말한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떡과 포도주는 우리 눈에 보이는 실체이다.
사람은 의심이 많다. 두 눈으로 직접 보지 않고선 잘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들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성례를 계획하셨다. 성례는 보는 예배이다. 세례는 예배시간에 성도들이 모두 참여한 자리에서 하는 이유가 있다. 우리는 믿음이 확실치 않을 때 세례를 두 눈으로 봄으로서 믿음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믿음은 세례에 참여하도록 성령 하나님이 도우신다. 우린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 성찬은 마치 천국 잔치와 같다. 초대교회 때 성찬의 모습은 성도가 다 모여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자리였다. 성찬은 세례를 받은 사람만 참여할 수 있었다. 이때 세례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식사에 참여하지 못하고 앉아서 지켜만 봐야 했다. 난 성찬에 참여할 때 초대교회 때 모습을 상상한다. 그리고 속으로 이렇게 말한다. ‘훗날 천국에서도 이처럼 먹고 마시리라.’ 우린 성찬에 참여함으로써 성도들과 참된 교제를 하며 그분의 참된 사랑 안에 거하게 된다.
성찬과 세례에는 인(seal)이 있다. 인(seal)이란 도장이 찍힌 증명서와 같다. 누군가가 나에게 상명대 수학교육과에 다니는 재학생이 맞는지 증명하라는 상황을 가정하자. 그때 난 상명대 총장의 도장이 찍힌 학생증을 그에게 내밀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례와 성찬은 내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증명서와 같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넌 나의 백성이라고 찍어주신 도장이 바로 세례와 성찬이다. 학생증을 위조하면 법적인 처벌을 받지만 참된 믿음 없이 성례에 참여한다고 해서 아무도 책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례와 성찬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권리를 얻는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 없이 성례에 참여하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반드시 책망하신다. 여기에 믿음이 흔들리는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성례를 통해 눈물을 흘리며 돌이킴을 얻었다. 당신이 만약 믿음 없이 성례에 참여한다면 누군가의 간절함을 발로 차버리는 것과 같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우린 이 사람처럼 성례에 간절함이 있는가. 세례를 받았다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세례와 성찬에 참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