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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Sep 14. 2019

숫자가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나이팅게일이 알려주는 숫자의 비밀이란

여기는 OO대학교의 한 강당. 그곳에는 간호학과 학생들이 있다. 그들의 손에는 촛불이 하나씩 쥐어져 있다. 강당은 새벽녘에 안개 낀 호수처럼 고요하고 어두운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듯 촛불이 반짝인다. 한 학생이 입을 열었다. 작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이다. 그 목소리는 촛불과 함께 빛이 되어 반짝이는 듯했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 (이하 생략)”     


목소리의 내용은 나이팅게일 선서였다. 간호학과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흰색 가운을 입은 채 나이팅게일 선서식을 거행한다. 어둠을 밝히는 촛불은 주변을 비추는 봉사와 희생정신을 의미하며 흰색 가운은 이웃을 돌보는 간호 정신을 상징한다. 나이팅게일 선서는 그녀가 직접 만든 것은 아니다. 1853년 크림전쟁 당시 밤마다 등불을 들고 환자를 돌보던 나이팅게일의 정성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사진 출처 : http://www.cctimes.kr/news/articleView.html?idxno=422948


사람들은 나이팅게일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기 위해 그녀를 백의 천사 또는 등불을 든 여인으로 불렀다. 물론 그녀가 뛰어난 간호사였던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팅게일의 가장 뛰어난 공적을 알지 못했다. 나이팅게일은 뛰어난 통계학자이자 사회 개혁가이다. 그녀는 통계학자로서 병원의 위생시설을 개선했고 전쟁 중 다친 병사의 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였다. 그녀는 통계를 바탕으로 국민보험과 의료복지를 개선하는 방안을 영국 정부에 제안했다. 영국은 그 공로를 인정하여 그녀를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라고 칭했다. 우리는 간호사가 아닌 통계학자로서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보려 한다. 1853년 러시아와 터키는 크림반도에서 충돌했다. 1854년 영국 정부는 터키를 지원하기 위해 간호사들을 파견했다. 그때 나이팅게일은 영국 간호사단을 지휘하는 간호장교였다. 전쟁 중 다친 군인들이 모인 야전병원의 상황을 본 나이팅게일은 충격에 빠졌다. 야전병원에 들어서자마자 그녀는 코를 움켜쥐며 군의관에게 말했다.      


“아니 이게 병원인지 화장실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입니다.”      


제일 청결해야 할 야전병원은 위생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소변과 대변 그리고 피가 뒤섞인 악취가 코를 찔렀고 환자를 누인 침대 시트는 고름과 핏물이 뒤섞였다. 바닥엔 피가 묻은 붕대가 먼지처럼 나뒹굴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환자가 유입된 탓에 환자를 관리할 인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상황이 좋지 못한 탓에 환자들은 감염증으로 쓰러졌다. 감염증으로 사망한 환자의 시체를 수습하는 일은 종일 반복되었다. 나이팅게일은 다른 곳곳의 야전병원의 상황을 살폈다. 어느 한 곳도 위생과 청결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없었다. 그녀는 야전병원의 위생 상황을 개선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한눈에 봐도 전쟁터에서 죽은 환자보다 야전병원에서 감염증으로 죽어가는 환자 수가 훨씬 많은 거 같다. 하지만 감정적인 호소는 상황을 개선하지 못한다. 이 사실을 국회의원들과 정치학자들에게 확실하게 이해시킬 방법은 없는 걸까.’      



그녀는 통계학을 활용하여 그들을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감정적인 호소보다 숫자가 보여주는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면 분명 설득력이 있을 터이다. 하지만 정치학자들은 통계학을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통계학을 모르는 사람들도 숫자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료가 필요해.’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통계학 지식을 활용하여 ‘닭 볏’이라 불리는 그래프를 만들었다. 닭 볏 그래프는 원그래프와 막대그래프를 적절히 활용한 그래프이다.      



닭 볏 그래프를 보면 가운데에서 오른쪽으로 30도씩 회전하고 있다. 이때 30도씩 회전한 한 칸의 간격이 바로 1년이다. 부채꼴의 반지름은 1년간 사망한 병사의 수를 나타낸다. 안쪽 검은색으로 칠한 부분은 전쟁터에서 사망한 병사의 숫자이고 바깥쪽의 옅은 하늘색 부분은 야전병원에서 사망한 병사의 숫자이다. 부채꼴의 반지름보다 넓이로 판단할 우려가 있어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위생이 좋지 않은 병원에서 죽은 환자 수가 전쟁터보다 훨씬 많다.’라는 점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다.      



나이팅게일은 딱딱한 숫자를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모양으로 바꿨다. 딱딱한 숫자가 어떤 모양과 의미가 있는 형태로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 시대로서 엄청난 획기적인 사실이었다. 닭 볏 그래프는 통계학을 잘 알지 못하는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을 이해시키기 충분했다. 현대 간호학이란 개념은 나이팅게일이 위생의 중요성을 알린 결과 점차 성립되기 시작했다. 만약 나이팅게일이 통계학자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병원은 어떻게 되었을까. 병원은 비위생적인 시설이자 지금의 화장실보다 못한 곳으로 기억되었을 테다. 

     

나이팅게일은 숫자에 관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숫자를 떠올리면 무미건조하고 딱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1+2=3은 계산적이다. 1+2의 결과는 3이란 사실만 드러낼 뿐 여기에 어떤 감정이 들어있지 않다. 이와 달리 닭 볏 그래프는 야전병원의 위생이 열악하다는 짙은 호소력과 애틋한 감정이 느껴진다. 여기 야전병원에서 감염증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고. 환자들이 깨끗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여러분은 숫자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다양한 생각이 떠오를 테다. 주민등록증에 박힌 번호와 패스트푸드점 번호표. 어쩌면 곧 다가올 지루한 수학 시간이 생각날지 모르겠다. 이젠 숫자를 생각하면 나이팅게일의 숫자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사람의 생명을 구한 바로 나이팅게일의 숫자를. 




이 글은 18년도에 작성된 글로 최근 탈고를 거쳐 다시 썼습니다. :)

https://brunch.co.kr/@stigma7942/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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