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

안도 다다오가 꿈꾼 낭만을 그리다.

by 배재윤

유현준 교수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을 읽고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알았다. 그가 직접 설계한 스미요시 주택은 다다오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주었다. 스미요시 주택에는 몇 가지 독특한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외부공간과의 연결성이다. 방에서 화장실로 이동하려면 반드시 천장이 없는 공간을 거쳐야 한다. 우산을 쓰지 않으면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 왜 방과 방 사이를 이동할 때 억지로 밖을 나와야 할까. 그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건축 철학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연과 분리되어 실내 공간에서만 살아간다.”


현재 일본은 택지 부족 현상으로 아주 골머리를 앓는다. 이러한 현상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스미요시 주택이었다. 스미요시 주택은 집 공간의 평수를 늘리는 대신 높이를 무한대로 늘렸다. 천장을 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푸르른 하늘을 보도록 했다. 집 공간이 좁아도 마치 넓은 곳에 사는 것과 같은 경험을 제공한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다음으로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이란 별도의 *마감재를 쓰지 않고 콘크리트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법이다. 마감재를 쓰지 않아 환경에 이롭다는 장점이 있지만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과 차가운 느낌 때문에 대중에게 외면받았다. 하지만 안도 다다오는 그만의 독특한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대중화를 이끌었다. 노출 콘크리트 공법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특수 왁스를 발린 거푸집을 사용함으로써 거친 표면을 대리석처럼 매끈하게 만든다. 두 번째, 주변에 있는 자연 조형물과 빛을 활용해 건물을 짓는다. 앞서 본 스미요시 주택에 하늘을 보이도록 한 예시는 두 번째 특징이다.

*마감재 : 마무리 공사를 하는 건물의 실내와 겉면을 꾸미는 데 쓰는 재료.


강원도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서도 차가운 콘크리트와 자연의 신비한 조화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교회 선생님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로 여행을 갔다. 그때 우연히 들렀던 곳이 뮤지엄 산이다. 뮤지엄 산은 노출 콘크리트 공법으로 지어져 있었다. 난 속으로 ‘정말 안도 다다오스럽게 지었다.’라고 생각했는데 다름 아닌 안도 다다오가 직접 지은 것이었다. 세상에, 진짜가 나타났다!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죽기전에 꼭 한번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우연히 마주치다니.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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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인 조형물과 자작나무 길


입구에서 뮤지엄 산으로 가려면 도보로 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새파란 하늘이 보이는 하얀색 자작나무 길을 걸었다. 주위엔 맥문동이 흐드러지게 피었고 길가에 흐르는 물속엔 새카만 흑색 자갈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뮤지엄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사람 인’ 모양의 조형물이 있었다. 아치 사이로 걸어가자 신기하게 흑색 자갈들이 박혀있는 물 위로 파란 하늘이 비쳤다. 지금 내가 물 위를 걷고 있는 건지 하늘을 걷고 있는 건지 모를 황홀감이다. 그는 자신의 신조대로 자연을 건축으로 삼았다. 자연이 건축이고 건축은 자연이 된다. 뮤지엄 산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그의 건축 철학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내부는 어떤 모습일까. 산 내부는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지어졌다. 회색 콘크리트임에도 불구하고 공사장의 느낌은 들지 않았다. 건축 내부를 천천히 걸었다. 콘크리트 사이로 들어오는 빛에 따스함을 느꼈다. 곳곳에는 큰 창을 배치했다. 바깥 풍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안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은 밖에서 절대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햇살과 하늘의 소중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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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 산 바깥과 내부

구불구불 미로를 거닐다 보면 삼각형으로 되어있는 하늘 천장을 찾을 수가 있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밑바닥은 회색 자갈돌을 촘촘히 깔아 두어 마치 외딴 행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전시장 바깥으로 나오면 계단식 논처럼 되어있는 ‘워터가든’을 볼 수 있다. 물 위에 비치는 뮤지엄 산과 원주의 드넓은 산맥을 바라보면 마치 구름 위를 떠다니는 듯하다. 워터가든 옆에는 작은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커피와 쿠키를 먹었다. 차가운 콘크리트로도 자연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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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 가든 풍경

건축의 낭만은 단순히 집을 짓는 행위가 아니다. 건축가가 가진 철학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남김으로써 좋은 경험을 제공하는 일이다.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자 했던 낭만은 무엇이었을까.


다다오가 지은 건물은 서울의 모습과 같았다. 신입생, 처음으로 상명대로 향했던 날. 시청역 9번 출구 밖에 펼쳐진 광경은 아직도 생생하다. 고막 깊은 곳까지 전해지는 경적과 북적대는 소리. 시커먼 파도처럼 흐르던 8차선 도로와 기차처럼 줄지어가는 버스들. 메타세쿼이아 숲처럼 솟아오른 고층 건물들까지. 도심 밖 모든 장면이 나를 압도했다. 그날의 서울은 나를 집어삼키며 말했다. “너는 결코 이 콘크리트 밖을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난 자연과 담을 쌓은 도심에 굴복하지 않았다. 지하철 출구를 나서면 하늘의 색깔을 확인했다. 한강을 건너는 기차 안에서는 잠깐 이어폰을 빼고 강을 통과하는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가끔 빌딩 숲 사이로 비춰오는 노을빛에 눈물을 글썽였다. 다다오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현대인들의 슬픈 낭만을 그렸다. 콘크리트를 벗어날 수 없다면 햇살과 하늘의 소중함을 느끼며 살자고. 콘크리트로 담을 쌓아도 우린 자연과 멀어질 수 없을 테다.




콘크리트 바깥에 비치는 자연의 모습에 감사할 줄 아는 일. 그것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낭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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