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과일 한 접시

by 배재윤


고등학생 시절 야간 자율학습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책상 위에 과일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사과, 배, 복숭아 등의 과일을 씻었고 내가 집에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대학생이 된 난 집을 떠나 서울에서 생활했다. 가끔 서울에서 내려와 집에 올 때마다 어머니는 과일 한 접시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난 친구들과 종일 놀고 새벽이 돼서야 집에 들어왔다. 살금살금 들어와 방문을 열면 과일 한 접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하염없이 날 기다리던 과일은 매몰차게 버려졌다. 내게는 그저 귀찮은 존재였을 뿐. 먹지 않은 과일은 수분을 잃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돌아올 때마다 과일을 씻었다. 나는 또 먹지 않았고 어머니는 말라비틀어진 과일을 하나씩 목구멍으로 삼켰다. 그래도 어머니는 내 책상 위에 과일 한 접시를 올려놓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과일 한 접시를 줄 수 있는 건 보고픈 내 아들이 반드시 집에 돌아온다는 사실과 같았으니까.


2016년 5월 17일, 입대하던 날. 어머니는 훈련소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는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보고 싶을 거야. 아들.” 훅훅하는 소리와 함께 “현 시간부로 입영 장정들은 운동장 중앙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방송이 들렸다.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다. 애써 터져 나오는 눈물을 꾹꾹 참았다. 나마저 울어버리면 어머니는 그대로 주저앉을 것만 같았기에. 어머니는 2년 동안 자식을 향한 그리움을 삼켜야 했다. 차라리 말라비틀어진 과일을 삼키는 게 더 나았을 것을.





늦은 밤 12시 40분, 고요한 시간. 오랜만에 군 휴가를 나온 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다. 책상엔 과일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고개를 푹 숙였다. 그제야 묵묵히 그것들을 입안에 넣었다. 과즙이 입안에서 터졌다. 포크를 쥔 손과 입술은 부르르 떨렸다. 어머니의 눈물과 사랑을 삼켰다. 시큰거리는 코를 부여잡고 부엌 식탁에 빈 접시를 두었다. 어머니는 안방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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