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간 친구가 남겨준 것

다시 널 마주할 수 있기를

by 배재윤


18년도 6월, 고등학교 동창이 죽었다. 엊그제까지 서로 카톡을 주고받았던 친구였는데 난 네 영정 사진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발인은 다음 날 오전 11시였다. 10시 40분경, 흰색 마스크를 쓴 사람이 나와 친구 3명을 불렀다. 친구가 있는 방은 무척 서늘했다. 시퍼런 싱크대 주변엔 영어가 빼곡히 적힌 약품들이 줄지어 있었고 벽면엔 새하얀 옷과 마스크가 걸려있었다. “모시겠습니다.” 우린 흰색 장갑을 끼고 관을 힘차게 들었다. 손이 부르르 떨렸다. 관의 무게가 내 가슴을 짓눌렀다.


하늘은 내 마음을 아는 걸까. 친구를 보내러 가는 길. 추적추적 장맛비가 내렸다. 추모공원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산 깊은 곳에 있었다. 상조 직원들은 생전 처음 보는 기계로 유가족들을 이끌었다. 5m 즈음되는 긴 컨베이어 벨트 위엔 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벨트 끝엔 사람 허리 높이 즈음되는 알 수 없는 철문이 있었다. 우린 벨트 위에 관을 내려놓았다. 이상한 굉음과 함께 컨베이어 벨트가 철문 쪽으로 돌아갔다. 철문이 열리고 친구를 실은 관이 시커먼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상조 직원들은 친구를 향해 90도로 몸을 굽혔다. 친구들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친구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분향실로 향했다. 유가족들은 분향실 의자에 둘러앉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바깥 복도에 서서 분향실을 에워쌌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들었다. 어머니는 사람이 낼 수 없을 것만 같은 소리로 울부짖었다. 아버지는 넋을 잃은 채 말했다. “잘 가 아들. 행복해.” 떠나는 아들을 향해 힘없이 흔드는 아버지의 손, 들썩이는 어머니의 어깨를 난 더는 바라볼 수 없었다. 입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소리는 막을 수 있었지만 흐르는 눈물은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난 후다닥 건물 바깥으로 나갔다. 그제야 이별이 실감 났다.


참 좋은 친구였다. 골목길에서 내 스물두 번째 생일을 함께 해준 친구. 매미 소리를 들으며 농구공을 주고받았던 기억. 10cm의 〈스토커〉를 함께 부르며 말도 안 되는 화음을 맞추던 추억까지. 이제 친구는 내 곁에 없다. 함께 찍은 사진 몇 장과 발인을 도울 때 꼈던 흰색 장갑만이 남아 있을 뿐.




책상 맨 밑 서랍을 열었다. 빛이 닿지 않는 그곳에 친구의 마지막 길을 도왔던 흰색 장갑이 있었다. 오랜만에 꺼내본 장갑의 소매는 노르스름했다. 아마 땀과 눈물이 뒤섞여 말랐을 것이다. 장갑을 보며 생각했다. 네가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다가 다시 널 마주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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