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졸업여행의 기억
중학교 졸업여행 첫째 날 밤, 잠들고 싶어도 잠 못 드는 이 밤. 그곳은 야생의 정글과 같았다. 잠이 들면 분명 짓궂은 녀석들의 사냥이 시작될 테니. 그들은 사냥감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내 얼굴과 발에 겨자나 치약을 발랐다. 난 잠에서 깨어 어쩔 줄 몰라하며 화장실로 달려가 허겁지겁 얼굴을 씻었다. 코가 얼얼하고 눈물이 흘렀다. 씩씩 소리 내 봐도 들려오는 건 비웃음 소리일 뿐. “그만해.”라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 그것보다 더한 고통에 시달릴 테니까. 난 꼭꼭 숨고 글썽이는 눈물을 감췄다.
정말 무서운 건 둘째 날이 밝아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옥 같은 밤이 다시 찾아온다. 난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제주도 성산일출봉 앞에서 점프하고 뛰놀며 장난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깔깔 웃는 너희들처럼 걱정 없이 살고 싶었다. 다가오는 오늘 밤조차 두려운 나는 어디에 기대야 할까. 엄마에게 떼를 쓰는 어린아이처럼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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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제주에서의 밤. 누군가 내게 그때의 감정을 좌표평면에 그리라고 한다면 한없이 내려가는 그래프를 벅벅 그어야지. 무한대로 치닫는 슬픔에 울음을 터트렸다. 졸업여행이 누군가에겐 추억일지 몰라도 내겐 그저 잊고 싶은 기억일 뿐이었으니까.
내가 이토록 슬픈 기억을 꺼내는 이유가 있다. 슬픔을 위로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슬픔뿐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 머릿속에는 감정 컨트롤 본부가 있다. 그곳에선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다섯 감정이 일한다. 11살 소녀 라일리의 다섯 감정 또한 어느 때보다 바쁘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실수로 기쁨과 슬픔은 본부를 이탈하게 되어 머릿속 세계로 떨어졌다. 그들은 머릿속 세계에서 다시 본부로 돌아가야 했다. 본부로 돌아가는 길에 라일리의 유년 시절을 함께 했던 상상 속 친구 빙봉을 만난다.
코끼리를 무척 닮은 빙봉은 어느덧 훌쩍 커버린 라일리에게 점점 잊혀가는 존재였다. 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는 말이야 언젠가 꼭 라일리와 함께 멋진 로켓 수레를 타고 우주로 여행을 떠날 거야.”라고. 하지만 라일리와 빙봉의 소중한 추억인 로켓 수레는 기억처리반에 의해 머릿속 벼랑 밑으로 떨어졌다. “어쩌면 좋지? 이제 다신 라일리와 함께할 수 없을 거야.” 로켓 수레가 떨어진 벼랑 끝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기쁨은 빙봉이 슬픔에 빠진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어서 기운을 내 빙봉! 네가 이러고 있으면 라일리는 더 슬퍼할 거란 말이야.” 빙봉은 서럽게 울었다. 그때 빙봉에게 다가서는 감정이 있었다. 모두에게 외면을 받던 슬픔이었다. 슬픔은 빙봉 옆에 다가가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렸다. “로켓이 사라져서 속상하지 네가 사랑하는 걸 가져가 버리다니 너무 슬픈 일이야.” 슬픔을 통해 빙봉은 흘리던 눈물을 멈추고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슬픔을 위로하는 슬픔. 울부짖는 자들의 서늘한 옷자락에 뜨거운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다. 그러니 당신의 손을 잡고 말하고 싶다. 실컷 울라고. 얼굴이 콧물 범벅이 되어도 괜찮으니 우선 엉엉 울어야 한다고. 당신이 조금 진정되고 훌쩍거릴 때 서로의 눈물을 닦아주며 함께 슬픔을 이야기하자고. 나와 당신이 겪었던 아픔이 얼마나 찢어질 듯이 아프고 지워버리고 싶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