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해를 한 학생이 찾아왔습니다

자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by 배재윤


여긴 OO고등학교 WEE 클래스 상담소. 17살의 학생이 찾아왔다. 학생의 팔에는 칼에 베인듯한 흉터가 이쑤시개를 흩뿌린 듯 퍼져있다. 반에서 1~2등을 할 만큼 공부를 잘하고 상장도 많이 받은 학생이다. 누구에게 괴롭힘이라도 당했던 걸까.


학생은 자해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커터칼로 손목을 그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해 도구도 다양해졌다. 커터날은 녹이 슬기에 녹이 슬지 않는 면도날을 챙겼다. 소독제와 피를 지혈하는 압박 붕대까지 준비했다.

학생의 이름은 유영(가명)이다. 난 유영이에게 물었다. “자해하면 많이 아프지 않니?”, “아프죠. 아프긴 한데 조금 기분이 나아지니까. 그리고 뭔가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거라도 안 하면 당장 죽을 거 같으니까요.” 당황스러웠다. 아니 공감이 되질 않았다. 자해하면 고통스러운 감정이 전부 해소된다니. 난 유영이를 바라봤다. 유영이는 두 손을 모은 채 손가락을 자꾸 만지작거렸다. 불안에 떨고 있었다.


유영이는 13살에 부모로부터 학대를 경험했다. 부모님은 유영이가 집에 늦게 왔다는 이유만으로 몽둥이를 들었다. “왜 밖에 싸돌아다니냐. 6시에 들어오라는 약속을 왜 지키지 않냐.” 학년이 올라갈수록 온몸 구석구석에 피멍이 들었다. 15살이 되자 성적에 대한 압박이 심해졌다. 시험 성적이 발표된 날에도 유영이는 부모님께 호되게 맞았다. “꼴도 보기 싫다. 당장 집에서 나가라. 왜 넌 그것밖에 못 하냐.”


유영이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선생님!” 유영이는 마치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터질 것만 같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공부 못하면 엄마 아빠 자식이 아닌가요? 부모님은 저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해요. 넌 나약해서 문제다. 의지가 없어서 그렇다.”


유영이는 시험 기간만 되면 밥을 먹지 못했다. 애써 먹으면 구토했다. ‘한 문제 틀리면 인생이 망한다.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다.’라고 생각했다. 어찌 성적이 사람 목숨보다 소중할 수 있을까.


“시험 기간만 되면 제 팔과 손목과 발목, 허벅지 등 수많은 부위를 썰어댔어요. 피는 질질 흐르고 눈물, 콧물은 사정없이 쏟아져 나왔죠. 제가 죽고 싶었냐고요? 아니요! 전 살고 싶었어요. 살려주세요. 제발 이 지옥에서 구해주세요. 죽을 것 같아요. 제발요.”


유영이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벌벌 떨었다.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다. 난 유영이의 손을 붙잡았다. 먼저 진정시켜야 했다. “유영아 괜찮아. 선생님 눈을 보자. 응 그래그래. 괜찮아. 괜찮을 거야. 지금 선생님이랑 같이 있잖아?”


유영이는 죽고 싶은 게 아니다. 살고 싶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차라리 몸에 상처를 내야지. 내가 다치면 부모님이 날 안 혼내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아픈 날 보듬어주지 않을까.’ 아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이 아인 부모님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유영이는 조금 진정되었다. 난 유영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내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네 아픔을 몰라줘서 미안하다는 말 몇 마디일 테다.


자해를 이해하지 못했다. “자해하면 아프지 않을까? 자해하는 아이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왜 자해하는 걸까.”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해는 날 간절히 알아봐 달라는 신호탄이다. “I’m here.”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말이다. 그 간절한 신호를 이젠 외면하지 말자. 망설이지 말고 다가가 “그래 내가 여기 있어.”, “Yes I’m here.”이라고 말하며.





I’m here.

Yes! I’m 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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