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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May 03. 2021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일

끔찍했던 가습기 사태와 영화 <서복>의 연관성

  영화 〈서복〉의 서복은 서인 그룹에서 만든 최초의 복제 인간이자 죽지 않는 존재다. 서복의 골수 세포를 연구하면 인간의 모든 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생의 비밀이 밝혀지는 것이다.


  영화를 보면 복제 인간을 연구한 신학선, 임세은 박사가 등장한다. 두 인물이 서복을 바라보는 시선은 대조적이다. 신학선 박사는 서복을 단지 실험체라고 생각한다. “글쎄요 저걸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토마토 줄기에서 감자 뿌리가 자란다면 그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서복은 우리와 다른 종입니다. 죽지 않는 존재거든요.” 서복은 4평 남짓 한 연구실에서 골수 채취를 당하며 영원히 살 운명이다. 죽음을 거스르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말이다. 전직 정보국 요원이었던 기헌은 신학선 박사에게 이건 너무 가혹한 거 아니냐고 따지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건 그냥 돼지에서 인슐린을 추출하는 거랑 비슷한 겁니다. 서복은 사람이 아니니까. 아시잖아요.”

골수 채취를 준비 중인 서복

 

   신학선 박사에게서 죄책감은 찾을 수 없다. 마치 과학자에게 도덕적 책임이나 의무를 지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수학자 푸앵카레의 모습과 같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다. 《더 좋은 삶을 위한 도덕 주제들》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양날의 칼과 같아서 누가, 어떻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에 대한 책임과 가치문제는 과학 기술자의 몫이 아니라 정치인, 사회집단, 시민사회의 몫이다.


*가치중립 : 어떠한 특정 가치관이나 태도에 치우치지 않는 것.


  영화에서 서인 그룹의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난 이제부터 권력을 가진 영생을 살 거야. 그리고 내가 아무나 살려줄 거 같아? 살려주는 건 오로지 내 마음이야.” 서복이 강제로 골수를 착취당해야 했던 이유는 죽지 않는 기술로 권력을 가지려는 세력 때문이었다. 회장의 욕망은 분명 잘못되었다. 그렇다고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신한선 박사에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신학선 박사와 서인그룹 회장


   임세은 박사는 서복의 인간적인 모습을 말한다. “24시간마다 억제제를 맞아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뇌파가 증폭되며 세포분열이 빨라져 목숨이 위험해지죠. 당연히 죽을 수 있죠. 차에 치이거나 총에 맞거나 그러면 죽지 않겠어요? 그래도 안 죽으면 불사신이게?” 임세은 박사는 사고로 아들 경윤이를 잃었다. 사무친 그리움에 빠진 그녀는 자신의 난자로 복제 실험을 강행한다. 그 결과물이 서복이다. “엄마는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잖아요. 그렇다면 나는 뭐가 되어야 하죠? 뭐가 되고 싶어도 되는 거예요?” 그녀는 알기나 했을까. 서북이 평생을 닭장 속 닭처럼 알을 낳아야만 하는 신세가 될 거라고.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는 서복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서인 그룹 회장에게 총을 겨누다 죽고 만다.


  서복은 임세은 박사의 그리움으로 탄생했다. 그리고 서복을 소유한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에게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과학기술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더 좋은 삶을 위한 도덕 주제들》에 따르면 “과학연구는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지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기에 초기 단계에서부터 미래의 위험성과 부작용을 심사숙고해야 한다.”라고 말한다.


서로를 바라보는 임세은 박사와 서복

  

  윤리학자 한스 요나스는 현대 과학기술이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결과의 모호성 때문이라 말했다. 처음에는 좋은 의도가 있어도 전체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말이다. 대표적인 예시로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볼 수 있다. 가습기 살균제는 94년도에 현재 SK케미칼에서 출시한 제품이자 가습기 속 균을 죽이기 위해 만든 화학약품이다. 가습기는 세균이 증식하기 쉬운 환경이라 세척을 자주 해야 한다. 가습기 살균제는 이런 세척의 귀찮음을 해결해주었다. 살균제를 물에 넣기만 하면 닦지 않아도 세균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관리가 편하다는 이유로 많은 소비자에게 판매되었다.


  2006년 어느 봄, 한 의사는 이상함을 느낀다. 어린아이들이 봄만 되면 폐가 굳어 죽었다. 더욱 이상한 건 원인이 불명했다. 세균과 바이러스, 심지어 유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그는 소아과 의사들에게 메일을 보냈다. “봄만 되면 아이들이 너무 많이 죽는다. 혹시 이 원인을 알고 있는가.” 수많은 의사는 답변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주로 봄에 발생하고 여름이 되면 갑자기 사라진다. 이유는 모르겠다.”


  원인이 밝혀진 건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출시된 지 17년째 되는 해였다. 임산부가 같은 증상으로 죽었다. 서울아산병원 홍수종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상하게 기관지 옆 폐포만 손상을 받는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무언가가 문제다.” 의사들은 질병관리본부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원인은 가습기 살균제였다. 살균제에 쓰이는 약품은 락스와 같은 제품으로 개인하수처리시설에도 쓰였다. 부모와 남편은 그저 아이와 임산부의 건강을 위해 가습기를 틀었을 뿐이다. 기업의 욕심으로 사용된 과학기술이 사람을 죽였다.



  

  복제기술의 완성품인 서복은 영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전 그저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단지 그뿐이었는데.” 서복의 말은 내게 질문처럼 들렸다. “사람은 과학기술을 의미 있는 존재로 만들어갈 자신이 있는가?”라고. 과학기술의 본질은 욕망이다. 누구든 어제보다 잘살고자 하는 욕심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욕심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핵심은 방향성이다. 욕망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끊임없이 우릴 의심하며 살펴야 한다. 다신 제2의 가습기 사태의 희생자가 나와선 안 되니까.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서복>

 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9074&imageNid=6727331#tabhttps://movie.naver.com/movie/bi/mi/photoView.nhn?code=159074&imageNid=6727545#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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