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끝내 무너지지 않을 거란 바람
옥수수밭이 드넓게 펼쳐진 아이오와의 겨울은 영하 26도까지 떨어진다. 스펜서 공공 도서관의 사서 비키 마이런은 책 반납함 안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작은 생명을 만난다.
“반납함은 금속이어서 오히려 바깥보다 더 차가웠다. 냉동된 고기를 얼려놓아도 좋을 정도다. 나는 찬 공기에 숨이 막혀 호흡을 고르다 바로 그때 문득 새끼 고양이를 보았다.”
가엾은 것. 어쩌다 반납함에 들어갔을까. 누가 반납함에 떨어트렸을 수도 있다. 혹은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극적으로 구출된 후 녀석은 고개를 들어 만나는 사람마다 눈을 맞추었다. 마치 구해줘서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는 듯이. “새끼 고양이가 처음 나와 눈을 맞추었을 때, 그때 벌써 내 마음은 정해졌다. 그 순간 우리의 마음이 서로 엮어버렸던 것이다. 녀석은 이미 내게 그냥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었다. 단 하루 동안 같이 있었을 뿐이었는데, 벌써 헤어진다는 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곧 녀석의 이름이 생겼다. ‘듀이 리드모어 북스.’ 줄여서 듀이다.
비키 마이런은 듀이를 주말마다 자신의 집에 데려갈 정도로 아끼고 보살폈다. 이유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블루 코핀’ 즉 파란 관이라 불렀다. 듀이가 강철로 만든 책 반납함에서 얼어 죽을 뻔했듯이 그녀는 그 집에 붙잡혀 산 채로 매장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그녀가 첫 아이를 낳을 때였다. 산통이 시작되었을 때 담당 의사는 급한 약속 때문에 출산 촉진제를 대량 투여했다. 그 결과 그녀는 두 개의 난소와 자궁을 적출 해야 했다. 그날 이후 남편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집에 오지 않았다. 끝내 이혼을 했지만 주택 융자와 자동차 대출 상환이 6개월씩이나 밀렸고 6천 달러의 부채가 그녀의 삶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었다. 무엇보다 유방암으로 양쪽 가슴을 다 들어낸 일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스펜서에 있는 모든 도로 역시 반듯한 직선이었다. 그런데, 인생은 왜 그렇게 될 수 없는 걸까.” 그녀가 스펜서 마을에 닥친 시련을 생각하며 남긴 말이다. 1980년, 스펜서 마을 또한 시퍼런 블루 코핀에 휩싸였다. 갑자기 닥쳐온 금융 위기로 공장 노동자는 줄줄이 해고를 당했다. 상점들은 간판을 내렸고 찬란한 금빛이 가득했던 옥수수밭엔 비틀어버린 줄기가 곱등이 다리처럼 듬성듬성 땅에 박혔다. 스펜서의 땅값은 곤두박질치고 은행의 금고는 바닥을 보였다.
삶이 매번 따사로운 햇볕과 같았다면 좋았을 것을. 우리 또한 블루 코핀에 휩싸여 어쩔 줄을 몰랐던 기억이 있을 테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고 무지개가 필 거라는 어쭙잖은 위로를 말하고 싶진 않다. 삶은 마치 변덕을 부리는 날씨와 같다. 어느 때는 살결이 따가울 정도로 덥거나 등에 닭살이 돋듯 쌀쌀하거나. 게다가 삶엔 기상예보가 없지 않던가. 예상치 못한 소나기가 내리면 흠뻑 젖을 수밖에 없다고. 뜨거운 햇볕에 살결이 홀라당 타버리거나 휘몰아치는 눈바람에 덜덜 떨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것이 우리 삶이라고. “다만 중요한 것은 그럴 때 당신을 바닥에서 일으켜 꼭 껴안아 주며 모든 것이 괜찮아질 거라고 이야기해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책에선 고양이 듀이가 그랬다. 듀이로 인해 그녀의 삶뿐만 아니라 마을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사람도 아닌 것이 어떻게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양이 한 마리가 있다고 경제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이유는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 아니었을까. 마을 사람들은 듀이가 어떤 고양이인지 분명 알고 있었다. 이 작은 생명체가 냉동고 같은 책 반납함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듯이 우리 삶도 분명 그럴 거라고.
그녀는 1988년 겨울의 그 녀석은 스펜서 마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주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끝내 무너지지 않을 거란 바람이다.
최초의 신약성서 사본인 사이나이티크스는 4세기에 등장했다. 이 책은 네모난 형태의 소가죽에 한쪽 끝을 묶어 펼쳐 볼 수 있는 ‘코덱스’ 형태다. 코덱스는 무려 1600년 전부터 지금까지 보존되었다. 책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책은 죽지 않았다. 컴퓨터를 갖춘 완전 자동화 시스템이 그 자리를 맡았을 때도. 텔레비전, 라디오, 영화, 연극 등등의 최신 미디어의 등장에도 살아남았다. 1, 2차 세계대전, 백년 전쟁이 일어나 도서관이 불타 없어져도 무너지지 않았다. 책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우리도 그럴 것이다. 고양이 듀이, 비키 마이런, 마을 스펜서 그리고 책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