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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Jan 30. 2021

책을 소각장으로

  얼마 전 학생과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 전 독서가 잘 안 돼요. 다른 공부는 다 재밌는데 왜 독서는 안 되는 걸까요.” 독서는 재미없다. 안 읽히는 책은 모조리 소각장에 넣어버리고 싶을 정도다. 유튜브로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데도 왜 우리는 독서를 해야 할까. 깊은 사고는 독서를 해야만 형성할 수 있다. 미국 신경심리학자 매리언 울프의 말을 빌리자면 “독서는 뇌가 새로운 것을 배워 스스로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인류의 기적적인 발명”이다. 이토록 중요한 독서를 즐겁게 할 수 있는 법은 없을까.


  독서가 즐거우면 결코 정상이 아니다. 애초에 인간은 책을 읽도록 태어나지 않았다. 문자가 발견된 건 8000년 전이고 인쇄술의 별명으로 책이 대중에게 보급된 건 고작 500년 전이다. 우리의 뇌는 책 읽기를 싫어한다. 한 주제에 집중해서 꾸준히 생각하는 일은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 아니다. 아이들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지치지 않는 심장을 가진 그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갓난아기는 움직이는 모빌을 어찌 그리 좋아하는가.

  우리도 아이들과 같이 산만하다. 우리에게 움직이는 모빌은 디지털 매체다. 유튜브를 틀면 당신이 클릭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 동영상을 수백 개씩 제공한다. SNS 피드에는 짧은 문장들이 넘쳐난다. 마치 패스트푸드와 같은 읽기는 독해력을 떨어트린다.



  완독에 대한 부담감은 독서를 재미없게 만든다. 책은 보통 분량이 200페이지가 넘는다. 움직이는 유튜브 동영상도 10분이 넘어가면 다 보질 못하는데 하물며 200페이지 책은 어떨까. 피어오름 출판사 대표인 이은화 작가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책을 꼭 다 완독 할 필요는 없어요. 책의 내용을 100% 다 기억하는 독자는 어차피 없습니다. 완독보다 내게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는 데 집중해보세요. 그럼 그 책은 완독 하지 못해도 자신의 것이 됩니다.”


  〈어쩌다 어른〉에서 이동진 작가는 독서를 포기하는 과정을 《총 균 쇠》 읽기로 예를 들었다. “《총 균 쇠》는 읽기가 힘든 책입니다. 책 읽는 가정을 생각해보죠. 처음엔 읽기로 했으니 한 40페이지 정도 읽습니다. 중간에 핸드폰 보기를 참으면서 읽습니다. 주말에 간신히 책을 폅니다. 약 17페이지 정도 읽습니다. 평일엔 책을 도저히 펼 수 없습니다. 피곤해서 세 페이지 읽습니다. 독서는 재미없고 완독에 대한 부담감이 듭니다. 결국 독서를 포기합니다.” 그는 독자들에게 아무리 유명한 책이라도 안 읽히면 “아님 말고”라고 말했다. 모두에게 좋은 책이라 해도 내게 안 맞을 수도 있다. 안 읽히면 책을 버리면 된다. 버리기 아까우면 책장에 보관해두었다가 나중에 다시 읽을 수 있다.



  

  우리의 뇌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구별하지 못한다. “달걀말이에 케첩을 듬뿍 뿌려서 밥과 함께 입에 넣었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뇌의 미각 영역이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가 해변의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라는 문장을 읽으면 뇌의 후각 영역이 활성화된다. 독서는 비자 없이 떠날 수 있는 여행이다. 독서가 즐거우면 정상은 아니지만, 당신이 결코 책을 소각장으로 버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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