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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Mar 21. 2022

매화에 향기가 없다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버지는 길가에 핀 꽃을 보면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설날에 김해에 내려온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함께 산책하러 나갔다. 아파트 숲을 벗어나 강기슭에 들어설 즈음 아버지가 가던 걸음을 잠깐 멈췄다. “어 이거 매화 아이가?” 아버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매화는 우리가 드문드문 멈춰서는 곳마다 활짝 피어있었다. 아직 찬바람이 부는 2월 겨울인데 말이다. 남쪽은 어느새 봄이 찾아왔다.

    

  매화는 벚나무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이며 매실나무라고 불린다. 특히 남도 지방에서 매실을 재배하기 위해 자주 심었다. 벚꽃과 가장 큰 차이는 향기의 유무다. 벚꽃에는 향기가 없어 곤충이 모여들지 않고 병충해에 강해 관리하기 쉽다. 가로수에 이토록 벚나무가 많은 이유다. 이와 달리 매화는 좋은 향기가 가득하다. 하지만 이번 봄에 핀 매화에는 향기가 없었다.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삶에 향기가 있어야 비로소 삶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체취도 함께 떠오르듯이. 갓난아이 입가의 분유 냄새가 그립듯이. 코를 막고 음식을 먹으면 아무 맛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우린 삶의 향기를 잃어버렸다. 마스크를 쓴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오르는 4월에 산을 올라도 마스크에서 맴도는 지독한 입 냄새만 맡을 뿐이다.


  모든 것엔 저마다의 향기를 품고 있다. 햇볕이 내리쬐는 날이면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아지랑이 냄새. 장마철엔 흙과 빗물이 섞인 냄새. 지하철의 먼지 섞인 쿰쿰한 냄새와 가을이 올 때 차가워지는 바람 냄새마저도 이젠 생소하다. 우린 일상뿐만 아니라 향기를 잃어버렸다.


  엊그제 확진자가 삼만 명을 넘었다. 어쩌면 이번 봄에도 꽃향기를 맡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한숨을 푹 쉰 채 고갤 떨구었다. 그러자 발밑에 낙엽을 비집고 나온 풀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허리를 숙인 채 꽃을 바라봤다. 은은한 자주색과 푸른 잎은 햇살과 함께 어우러져 반짝였다. 넌 나의 꺼져버린 한숨에 보답하듯 잔잔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다시 마스크를 벗게 될 날이 올 수 있을까. 그때가 오기 전까지 풀꽃이 내게 보답했던 향기를 기억할 것이다. 희망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꽃. 밟히고 뭉개지더라도 그 향기를 잃지 않았으니 우리 이대로 살아가자. 언젠가 예전의 향기를 되찾을 날을 고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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