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재윤 Dec 02. 2022

교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하루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늘 가슴이 아프다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면서 단 한 번도 정교사를 부러워한 적은 없었다. 명예퇴직 후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빼곤 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내가 60살이 되었을 때 확실히 받을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간제 교사도 정교사와 동일한 경력이 인정되며 정교사에게만 주어지던 교원 1급 자격증도 연수를 통해 받을 수 있다. 심지어 교직 경력 3년만 채우면 누구나 EBS 강사에 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


기간제 교사의 유일한 단점은 고용 불안정성이다. 채용이 안 되면 백수 신세니까. 그러나 삶의 안정성을 누리는 정교사보다 기간제가 더 끌렸다. 내 능력이 뛰어나다면 내가 원할 때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학교에 면접을 봐서 들어갈 수 있으니까. 마치 열정적인 프리랜서처럼 느껴졌다. 메가스터디의 김기훈 강사의 말을 빌려 “네가 회사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회사가 너를 간절히 찾도록 만드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래서 난 졸업 후 바로 기간제 교사의 길을 걸었다.


 어제 전 근무지였던 학교에서 축제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 근무 중인 선생님의 초대를 받아 오랜만에 학교를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 틀림없다. 그 짧은 2시간의 공연을 보겠다고 칼퇴근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KTX를 타고 또 택시를 타고 왕복 4만 원의 교통비를 썼으니 말이다. 솔직히 공연보다 가르쳤던 학생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마치 첫 면접을 볼 때만큼 떨렸다. 학생들이 혹시나 반겨주지 않으면 어쩌지. 어떻게 인사를 하면 좋을까. 여러 생각에 잠겼다.


  축제장에 도착한 뒤, 오랜만에 학생들과 인사를 하려니 이상하게 부끄러워 출입구 구석에 홀로 박혀있었다. MBTI로 따지자면 난 분명 E인데 말이다. 그래도 나를 용케 알아본 학생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눴다. 이 학교를 떠난 지 기간으론 4개월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계절이 두 번 바뀔 만큼 긴 시간일 수도 있겠는데 그새 학생들은 여러모로 훌쩍 성장해 있었다. 단발머리는 중단발. 갈색 머리는 진한 검정색. 웃픈 이야기지만 살이 쪘다고 투정 부리는 녀석. 수학 성적이 눈에 띄게 올라서 칭찬해달라는 기특한 학생부터 만나서 너무 반갑다며 글썽이는 학생들까지. 내가 뭐라고 고맙기도 하고 미안했다. 어쩌면 미리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겪게 한 죄책감일 수도 있겠다.


  다시 경기도로 돌아가는 길, 단 한 번도 부럽지 않았던 정교사가 문득 부러워진 건 질투심이었을까. 학생들의 성장 과정을 계속 지켜볼 수 있다는 건 정교사가 가진 큰 축복이다. 통상 기간제 교사의 계약기간은 짧으면 2개월 길면 1년이므로 3년 동안 학생들이 자라는 과정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물론 재계약 여부에 따라 사정이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으나 계약이 만료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학생들과 무조건 이별이다. 학생과의 이별은 정교사, 기간제 교사 모두 겪어야 하는 일이지만 성격이 다르다. 학생의 3년의 과정을 모두 지켜본 후 이별하는  것과 계약기간이 끝나서 중간에 헤어져야만 하는 건 분명 다르다. 이런 이유로 어제 문득 기간제 교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마저 들었다.


  누군가의 단 한 번뿐인 10대 시절을 함께 한다는 건 큰 축복이다.
 우리의 10대는 영원하지 않기에.


  엊그제 한 고3 학생에게 이런 DM을 받았다. “선생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앞으로 남은 저희 애들 잘 부탁합니다.” 선뜻 알겠다는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3개월뿐인걸. 비록 너희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지만, 곧 다가올 이별에 힘없이 무너지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기간제의 길을 걷기로 한 이상, 나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건강한 이별을 준비해야겠다.


개구리 선생님의 슬기로운 교직 생활 #03



메일 : bju1313@naver.com
인스타 : @writerbj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