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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재윤 Oct 12. 2022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우리 사이엔 충분한 여백이 필요하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수업은 학생과 함께 만들어가는 수업이다. 50분의 수업시간이 주어지면 25분동안 개념 설명을 한 후 학생들이 충분히 문제를 풀 수 있도록 남은 25분의 시간을 주었다. 왜 모든 학생이 한 명의 학생의 획일화된 풀이만 보는건지 의문이 들어 모든 학생의 손 풀이를 캡쳐하여 padlet에 올리도록 지도했다. 학생들은 귀찮은 발표를 하지 않아도 되고 다양한 풀이를 볼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또 문제를 풀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어 좋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자사고에서 처음 시도한 수업이었는데 신선한 방법이라는 교감 선생님의 호평을 받을 만큼 결과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padlet을 이용하면 다양한 학생들의 풀이를 볼 수 있다.


  일반고에 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조금 넘었다. 난 아직도 아이들과 처음 만났던 장면이 생생하다. 엎드려 자는 학생부터 시작해서 이어폰을 끼고 드라마를 보는 학생까지 심지어 서로 팀을 이루어 게임을 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총 4개의 반에 수업을 들어갔는데 대개 20명 중 10~15명은 자거나 유튜브를 봤고 5명은 수업을 들었다. 일주일간은 어찌할 바 몰라 우선 나 혼자 무작정 학생들을 이끌어보기로 했다. 개념 설명부터 문제풀이까지 모두 혼자 설명하고 마무리했다. 정말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고3 어떤 학생이 담임에게 수학쌤이 수업 도중 쓰러질까 봐 늘 걱정된다는 말까지 들릴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나 혼자 아득바득 중간고사 범위까지 진도를 끝냈다.


   진도가 끝난 후에는 4점짜리 기출 문제를 숙제로 냈고 padlet에 미리 올리라고 지도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다양한 학생들의 풀이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상위권 학생들은 다양한 학생들의 풀이를 볼 수 있고 문제를 미리 고민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하위권 학생들은 여전히 드라마를 보거나 잠을 잤다.

  

  원래대로라면 조별로 나누어 함께 고민하는 작업을 했을 테다. 3~4명 정도 되는 팀이 함께 고민하고 나에게 개별적으로 발표를 하도록 말이다. 그리고 추가로 유튜브에 해설 강의를 올려 수업시간에 해결하지 못한 부분은 스스로 해결하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일반고에서는 이런 수업을 하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나름의 변명을 해보자면 학생들의 수준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 말하고 싶다. 학생들의 수준을 모두 고려한 조를 도저히 만들 수 없었다. 일반고에는 워낙 다양한 학생들이 모여 수학에 대한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업을 열심히 듣는 5명의 학생만 편하게 이끌어가려는 내 안일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쩌면 난 겁쟁이였다. 학생들이 잘 따라주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있었고 조별학습을 하면 귀찮아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나를 다시 변화시킨 건 다름 아닌 학생들이었다.


나의 변화는 다름아닌 학생 때문이었다.

  

  

  시험 기간 때문에 대략 4번 정도 자습을 주었다. 그런데 그 시간 동안 내게 질문하러 오는 학생들이 많았다. 무엇보다 정말 놀라운 건 이들은 전부 평소 수업시간에 잠을 자거나 드라마를 봤다는 것이다. 수업시간에 여백을 주자 스스로 배움을 얻고자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문득 학생들을 믿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이번 중간고사가 끝나면 자사고에서 시도했던 기존의 방법대로 천천히 시도해볼 생각이다. 수업시간의 절반을 학생들에게 한번 맡겨보기. 토론 수업을 진행해보기 등등. 물론 모든 학생이 단번에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무척 힘든 여정이 될 테지만 자습 시간에 종종 찾아와 질문을 건넸던 학생들을 통해 희망을 꿈꾼다.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라.” 국민 MC 유재석이 한 말이다. 좋은 대화란 내 말은 아끼고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수업도 마찬가지다. 학생이 자신의 이야기를 채울 수 있는 충분한 여백이 있어야 한다. 조금은 더디지만 흰 여백에 함께 채울 수 있다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개구리 선생님의 슬기로운 교직생활 #02


메일 : bju1313@naver.com
인스타 : @writerb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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