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엔 비틀비틀 짝짜꿍

쉬었음 청년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비밀은

by 배재윤

S고등학교 기간제 교사 면접에서 최종 탈락했다. 1차 서류를 통과하고 면접장에 들어섰을 때, 대기석엔 나 혼자뿐이었다. 단독 후보라는 사실에 내심 안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올라온 재공고를 보며 깨달았다. 그들은 나를 뽑을 마음이 처음부터 전혀 없었다는 것을. 차라리 쟁쟁한 경쟁자들이 많았다면 ‘내가 부족했나 보다’ 하고 멋쩍게 웃어넘겼을 텐데, 유일한 후보를 떨어뜨린 그 단호한 거절 앞에 자존심은 맥없이 무너졌다. 심지어 S고는 나의 첫 부임지였고 면접관들도 모두 아는 분들이었기에 마음의 생채기는 더 깊었다. 일상은 시원한 마침표가 아닌, 일그러진 물음표들로 가득 찼다.

생각해보면 거절은 내 삶의 오랜 단골이었다. 작가가 되기 위해 브런치에서 13번을 낙방했고 첫 출간 계약도 허무하게 불발되어 4년이 훌쩍 지나서야 <수학이 건네는 위로>가 출간되었다. 지금껏 거쳐온 학교들도 수차례의 실패 끝에 닿은 곳들이었다. 물론, 다시 도전할 기회는 충분했다. 2월 말 심지어 3월 초에도 공고는 나오기 마련이니까. 13년 차 기간제 교사 선배는 "채용의 80%는 대부분 2월 말에 결정된다"며 현실적인 위로를 건넸지만, 이상하게 이번엔 다시 일어설 에너지가 차오르지 않았다. 왜 나는 쉬어가고 싶을까.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의 늪이 나를 깊게 삼켰다.

어느 날은 두 시간 동안 음악만 들으며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예능 <하트시그널>에서 어느 출연자 한 분이 왠종일 밥도 안 먹고 음악만 듣는 장면을 보고 저럴 수 있나 싶었는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머릿속에 도무지 멈추지 않는 생각을 끄기 위한 생존법이자 현실도피였다. 그러다 이건 아니지 싶어 당장 뭐라도 해야겠며 손에 잡히는 대로 내가 쓴 책을 펼쳤다. 다리를 다친 동생의 책가방을 대신 메고 자취방을 향해 느릿느릿 걷던 23살의 내가 그곳에 있었다.


"나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의 속력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내가 어떻게 달리고 있는지 볼 수 없다. ... 이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걸까?"


당시 취업을 앞두고 불안함에 떨며 썼던 그 문장들이 7년 뒤 멈춰서기를 두려워하는 서른 살의 나를 세게 껴안는다. 이 글은 평범한 취준생을 위한 위로가 아니었다. 23살의 내가, 훗날 길을 잃고 망가져 버린 나에게 미리 보내둔 타임캡슐 같은 편지였던 셈이다. 4년 동안 계약 연장의 호재 속에 쉼 없이 달려오느라 정지 버튼을 죄책감이라 읽었던 나에게, 과거의 소년이 다가와 상처 난 아저씨의 등을 토닥여준다. 7년 전 남영동 주민센터 싸구려 카페에서 이 글을 쓰던 그 소년을 만나면 말없이 안아주고 싶어졌다. 당신이 미리 보내준 위로 덕분에 내가 다시 숨을 쉰다고.


책을 덮고 생각에 잠겼다. 쉼이란 누릴 있는 사람에게만 쥐어지는 기회이자, 누군가에겐 간절한 꿈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어느 날 본가에서 우연히 뒤척인 생활기록부 속에는 19살 소년의 잊힌 꿈이 적혀 있었다. "희망진로 : 교사, 수업코칭 전문가." EBS 다큐멘터리를 보며 슬픔뿐인 교사의 삶을 위로로 바꾸고 싶다던 그 꿈을, 나는 이미 이루고 있었다. 1급 정교사 연수도 받지 않은 신입 주제에 고려대학교와 여러 교육청을 오가며 현직 교사들에게 강의를 하던 그 찬란한 순간들. 내가 뛰어나서가 아니라 내 곁의 좋은 사람들 덕분에 기회를 잡았을 뿐이지만, 나는 이미 10대 시절의 나에게 약속했던 목적지에 어느새 도착해 있었다.

지금의 멈춤도 시간이 흐른 뒤 다르게 비춰지지 않을까. 달려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멈춰 서는 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니까. 6개월간의 실업급여와 온전한 휴식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간절히 바랐던 나를 돌볼 시간이라는 꿈의 실현이다. 180명 학생의 생기부를 쓰느라 정작 "선생님 본인을 위한 기록은 어디 있느냐."라고 되묻던 제미나이의 먹먹한 질문에 이제야 답할 수 있게 되었다. 이리저리 쌓인 문제집을 내려놓고 먼지 쌓인 책들을 꾸준히 읽는 것. 아침마다 드립 커피를 내리며 오로지 나를 위한 문장들을 써 내려가는 삶. 그것은 '쉬었음 청년'이란 이름 뒤에 숨겨진 빛나는 호재다.


책상 서랍 구석에서 26살 첫 부임지였던 S고의 명함을 발견했다. 자사고 교사라는 자부심으로 가득 찼던 그때 그 시절. 그러나 번호가 잘못 인쇄되어 한 번도 남에게 내밀지 못했던 그 명함. 아니 이걸 명함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처음엔 화가 나 쓰레기통에 던지려다 멈췄다. 어딜 가도 내밀지 못하는 이 명함이 꼭 지금의 나 같아서.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이 명함들을 읽고 싶었던 책들의 책갈피로 쓰는 거다. 내밀지 못하는 명함이 이젠 되려 '쉬어도 된다'라는 당당한 증표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S고 면접에서 혼자 가서 혼자 떨어진 그 사실조차도 이제는 멈춰 서는 법을 가르쳐준 훈장처럼 자랑스럽다.

한국 나이로 서른한 살, 만으로는 스물아홉 혹은 서른. 그냥 서른 즈음이라 하자. 24살의 대학생 시절, 책을 내겠다며 지도 교수님께 휴학을 선언하고 카페에서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 잔으로 온종일 글을 쓰던 그때와 지금의 나는 무엇이 다를까. 일단.. 6살 늙었다. 아니면 카페라떼 라지 사이즈에 오트 우유를 추가하고 까눌레 하나쯤은 고민 없이 곁들이는 '재정적 으른'이 되었다는 점일까. 어렸을 땐 서른 살이면 애도 있고 정말 멋있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고작 이런 걸 좋아하는 내가 어른은 아닌 거 같아서. 그저 으른이다, 으른.



서른 즈음의 세상은 여전히 어지럽고 자꾸만 더 빨리 달리라고 등을 떠밀지만, 비틀거리면서도 나만의 중심을 잡아본다. 23살의 소년과 서른 즈음의 내가 상처투성이 손을 맞잡고 함께 걷는다. 비틀비틀 짝짜꿍. 한로로의 노래처럼, 다시 웃음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잃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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