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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잔망 Jul 28. 2023

영화 한 편으로 결혼까지

좋은생각



영화 한 편으로 결혼까지 한 이야기, 바로 저희 부부네요. 시작은 3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우리는 양꼬치집에서 처음 소개팅을 했습니다. 여느 때처럼 기대를 안 했지만, 준수한 외모에 호감도가 상승했습니다. 그도 제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습니다. 양꼬치를 뜯으며 서로의 취미, 성격을 파악하던 중, 인생 영화 질문이 나왔습니다. “전 ‘반지의 제왕’ 이요.” 망설임 없이 말하자, 그가 놀라고는 씨익 웃었습니다. “저도 정말로 ‘반지의 제왕’이 인생 영화예요. 10번도 넘게 봤어요.” 놀라웠습니다. 저도 거의 매년 보는 영화거든요. ‘아무리 봐도 안 질리죠?’ ‘2편의 전투씬은 정말 최고지 않아요?’ ‘작은 존재가 세상을 구한다는 게 감동적이고 볼 때마다 힐링 돼요.’ 등 들떠서 감상을 나눴습니다. 영화 하나로 어색한 소개팅 분위기가 사르르 녹는 게 신기했습니다. 다른 취미와 성격도 비슷했습니다. (심지어 MBTI까지) 결이 비슷한 사람은 인생 영화도 같은 걸까요? 저는 첫 만남에 이렇게 말해버렸습니다. “우리 이 정도면 결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세 번을 만나고 사귀게 됐습니다. 어느 날 그는 소중한 보물을 데이트 때 가져왔어요. 직접 뉴질랜드 반지의 제왕 촬영장에 가서 샀던 ‘절대 반지’를 소중히 내밀었습니다. 그때 뛸 듯이 기뻐하던 제 모습에, 그는 또 결혼을 결심했다고 나중에 말하더군요.



데이트 때 가끔 같이 핸드폰으로 ‘반지의 제왕’ 영화를 보고, 자주 OST를 들었어요. 배경음악을 들으면 샤이어의 호빗처럼 마음이 편해지고 살아갈 용기가 납니다. 이때까지 영화를 혼자 즐겼었는데, 명장면을 끝도 없이 돌려볼 친구가 생겨서 행복했습니다. 그는 제 생일에 영화 대사를 인용하며 편지를 써주기도 했어요. “너는 내 ‘아르웬’이야 (엘프 여주인공) 평생 함께 늙을 거야”



우리는 또 자연스럽게 결혼 준비로 넘어갔습니다. 결혼식은 ‘반지의 제왕’ 영화 컨셉으로 하기로 했어요. 어른들이 조금 걱정하셨지만, 손님들에게 즐거운 파티와 인생 영화의 분위기를 공유하고 싶었어요. 먼저, 식장을 요정의 숲속 같은 스몰 웨딩 베뉴로 잡았습니다. 웨딩드레스도 엘프 같이 우아하고 슬림한 라인으로 골랐고요. 모든 장식들을 튀지 않고 신비로운 자연 분위기로 꾸몄습니다. 배경음악은 영화 음악으로 깔았고, 사회자도 ‘영화로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됐다’는 멘트를 해주었습니다. 2부 때는, 추첨 이벤트로 특정 ‘반지의 제왕’ 캐릭터와 MBTI가 같은 사람에게 선물을 주며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하이라이트는 청첩장이었는데요, 디자이너를 섭외해 ‘반지의 연인’ 제목과 저희의 캐릭터를 그려 넣고, 영화 속 지도처럼 식장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문구도 직접 넣었습니다.


“다른 종족이 화합한 것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감싸 안겠습니다. 모두를 구한 작은 호빗처럼,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같이 성장하겠습니다. 반지 원정대의 긴 여정을, 함께 반지를 끼고 출발하려 합니다. 귀한 걸음으로 참석하시어 축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앞으로 원정대의 길처럼 결혼 생활이 험난할 때도 있겠지만 용감한 주인공들처럼 이겨내보자고, 우리는 손을 꼭 잡습니다.




*2023년 좋은생각 4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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