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문생활
6월, 홀로 떠난 유럽여행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국 하이드파크에 혼자 앉아있는데, 같은 동양인이라고 말을 붙여온 중국남자가 있었다. 그는 내 돗자리 옆에 앉아 사심없이 영어로 대화를 이끌어 주었다. 중국에서 몇 년 전 유학 온 유학생이란다. 나는 반가워하며 내가 아는 한자를 총동원해 나름의 필사를 몇 번 나누었다. 필사라 해봤자 완성형의 문장은 아니었고, 내가 단어를 쓰면 그가 반가워하고, (외국인이 ‘안녕’, ‘사랑해’를 한국말로 했을 때 기뻐해주는 것과 비슷한 것이었으리라) 그가 쉬운 단어를 쓰면 내가 한참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겨우 끄덕이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가 내 이름을 묻자, 난 내 주민등록증을 보여줬다. 그는 한국인은 왜 이름이 한자로 이루어져 있는지 물었다. 한국인에겐 한글이 있는데, 왜 이름이 한자로 되어 있는지 예전부터 궁금했단다. 난 한국인을 대표해 한자기원 이름에 대해 설명해줄 의무감을 느껴 영어로 열심히 설명했다. ‘한자는 동아시아의 공동문어였다’는 것을.
보통 국문학의 정의 논란에서, 한글이 창제되기 전 우리 조상들이 써왔던 한문은 포함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포함시키는 걸로 학계에선 결론이 났지만. 한글은 발명품이고, 이것이 발명되기 전의 선조들의 문학 활동을 아예 국문학에 포함시키지 않으면 수많은 문학의 정수들을 잃게 되며, 사실 한자는 중국만의 것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공동문어’ 였다고 생각을 해야 한다고 배웠다.
나도 외국인 입장에서 충분히 이상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직 한자문화권에 있다는 증거가 한자로 된 이름을 쓰는 것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내 이름이 한자로 되어있다는 것은 보통 서류를 작성할 때 이름을 쓸 때 빼고는 거의 생각지 않는데, 문득 내 이름이 한자로 되어있구나 하고 새삼 느꼈다.
한자 이름에 대해 생각해보면, 순한국말로 이름을 짓는 경우는 아직까지 많진 않은 것 같다. ‘나라’, ‘다래’. ‘하늘’, ‘사랑’, ‘아름’ 등 한정되어있는 것 같다. 한자 이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다. 먼저 한국말로 발음해서 예쁜 ‘이름용’ 단어를 찾고, 그 다음 그에 맞는 한자 중에서 뜻이 좋은 걸 고른다. 그것도 이름용으로 많이 쓰이는 한자여야 하며, 이름용으로 적합하지 않은 한자면 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린 대다수가 성을 제외하고 두 글자로 이름이 이루어졌으니, 두 가지의 뜻을 가진 이름을 갖게 된다. 가령, 내 이름 ‘민정’은 ‘온화한’과 ‘조정’의 뜻을 가진다. 이 한자어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순전히 본인 몫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 같기도 하고. 운명을 최대한 좋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 내 이름 중 애매한 ‘조정’은 나라를 조정하는 관리가 되란 거시적인 뜻도 될 수 있고, 사람들 간 사이를 조정하는 미시적인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이름을 풀이하는 것도 사주풀이와 비슷한 면이 있다. 주어진 사주 글자는 같은데,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고, 운명의 흐름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 내 동생의 이름은 매우 단순하다. ‘동쪽의 물’, ‘동수’다. 동생의 경우, ‘동쪽의 물’을 어떻게 해석하고 마음에 새길 것인가가 관건이 된다. 말 그대로 ‘동쪽의 물이구나’ 생각하면 별의미없는 이름일 수 있지만, ‘동쪽=우리나라의 물’이라고 생각을 전환하면 좀더 반짝이고 엄청난 이름이 된다. ‘우리나라에 흐르는 맑은 물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라라는 것에서 벗어나면, ‘해가 뜨는 곳의 물, 오아시스 같은 희망’ 정도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에 어떤 상상력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나 자신에 대한 애정도 커진다. 한자의 장점이란, 매우 함축적인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 같다. 두 글자로 긴 의미를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뜻이 나온다는 것도 꽤 매력적이다.
*2015년 '어문생활'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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