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운 위로
<사일런스> (2017)
감독 : 마틴 스콜세지
주연 : 앤드류 가필드, 리암 니슨, 아담 드라이버
<사일런스>는 17세기 천주교가 박해 받던 일본에, 목숨 걸고 간 포르투갈 신부의 이야기를 다룬다. 비그리스도인 입장에서 봤을 때, 예수를 부정하지 않고 죽어간 자들의 희생은 이해 안 될 만큼 충격적이고 맹목적이었다. 각자 나름의 ‘믿음’에 대해 고찰해보게 하는 이 영화는 비종교인에게도 충분히 흥미롭고 몰입된다. 영화는 내내 정적이지만, 감정과 의심이 폭발하는 씬들이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가슴 졸이며 보게 된다.
영화 초반엔 부감샷이 많이 사용된다. 성당 계단을 내려가는 세 신부의 모습을 위에서 비추거나, 안개에 뒤덮힌 배와 자연들을 위에서 촬영한다. 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카메라 시선으로, 신부들의 믿음이 굳건한 초반 상태를 보여준다. 후반으로 갈수록 클로즈업 샷이 많아진다. 인간의 가까이서 그들의 고통을 나누며 함께 괴로워하는 신부들의 혼란을 뜻하는 듯.
배교했다는 스승 신부 페레이라의 소문을 믿을 수 없어 직접 일본에 도착한 로드리게스와 가루페 신부. 그들은 작은 마을 거주민들을 만난다. 그들 크리스천을 보며 자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희망이 되는 것을 본다.
신부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며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나 곧, 이노우에 수령을 비롯한 천주교 박해 세력들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믿음을 교란시킨다. 인상적이었던 건, 신체적 협박보다도, 분란의 불씨를 영리하게 심어두는 그들의 방식이다. 일본답다.. 신도와 신부를 밀고하면 돈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불안에 떨어야 한다.
수령은 순교를 자청하는 자 4명이 나오지 않는다면, 마을 사람들을 무작위로 끌고 가겠다고 한다. 형식적인 ‘예수 얼굴 밟기’ 의식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냐는 신도의 말에, 두 신부는 다른 지시를 준다. 로드리게스는 밟으라고 하고, 가루페는 밟으면 안 된다고 한다. 다른 방식이지만, 신부들이 신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같다. 나중에 로드리게스는 바다에 빠져 죽는 신도들을 보며 제발 살기 위해 배교하라고 울부짖고, 가루페는 나를 대신 죽이라며 신도들과 함께 죽기를 택한다.
로드리게스는 예수의 생애와 매우 유사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적들에게 붙잡혀 고난을 받는다.성경에 은화 30냥에 예수를 판 유다가 있다면, <사일런스>엔 은화 300냥에 로드리게스를 판 기치지로가 있다. (타지인이자 가이드였던 ‘기치지로’는 끝없이 배교와 회개를 반복하는 모습을 보이며 인간의 지질한 면을 드러낸다. 로드리게스는 이렇게 비천하고 비열한 자에게도 자비를 내려야 하는가 고민하지만, 신부로서의 숙명을 받아들이며 그를 용서한다.)
예수 또한 죽기 전에 “아버지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회의했던 것처럼 로드리게스도 신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스승이던 페레이라 조차, ‘늪 같은 일본에는 천주교가 뿌리내릴 수 없다’ 며 배교를 권유한다.
크리스천들이 죽어가는 신음 소리는 신실하던 로드리게스의 영혼을 무너뜨리고 갉아먹는다. 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가 공개적으로 배교를 해야만 저들을 살려주겠다고 협박한다. 침묵하던 예수의 목소리가 배교하기 일보직전에서야 들린다.
“나를 밟고 신도들을 살려라”
이것이 로드리게스가 배교하는 것에 대한 자신의 합리화에서 들리는 착각이었는지, 진짜로 예수의 음성인지 판단하는 건 관객의 몫이다.
로드리게스는 결국 배교를 택하여 신도들을 살린다. 이후 그의 지난한 고행 같은 세월은 압축된다. 이노우에는 로드리게스에게 남편을 잃은 아내와 아이를 붙여 같이 살게 한다. 이 때의 로드리게스는 영혼을 잃고 침묵만을 지킨다. 심지어 죽을 때조차 천주를 부르지 않았다던 로드리게스. 마지막 장면에서 로드리게스의 아내는 그가 품지 못하고 살았던 작은 십자가를 죽은 그의 손에 쥐여준다. 그는 완벽한 배교자로 평생을 위장해 살았지만, 결국 속으로는 홀로 천주를 품고 침묵을 견디며 살았음이 드러난다. 너무나 농축된 감정이 전달된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나는 침묵에게 기도하는가?’ 로 설명된다.인간은 신을 믿으면서도, 가끔은 회의에 빠진다. 신이 있다면 왜 선한 자들의 고통을 방관하고 악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가.
<사일런스>는 이에 대한 통찰이다. 그래서 비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의 중립자적 태도로 얘기를 들려준다.
기독교를 선도하려는 자의 감성과, 비기독교인(토착민)의 선교를 거부하는 논리 양 측 모두를 납득되게 그린다.
영화는 제목 <사일런스>처럼 내내 침묵을 유지한다. 배경음을 쓰지 않고 오직 말소리와 자연의 소리만 들리며,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풀소리와 파도소리만이 들린다. 침묵이 어떤 소리보다 고통스럽고 무서울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한다. 보는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영화지만 여운이 강력하고 연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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