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철컥
카메라 장착 완료
1번 기기와 카메라 연동 완료
초점, 녹화 위치 확인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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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간다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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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야 안녕! 펫시터 왔어 ❤️
낯선 일을 해야 할 때, 생소한 매뉴얼을 익혀야 할 때, 그리고 '잘 할 수 있을까' 심장이 쿵쾅댈 때 나는 내가 우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도움이 된다. "이해준. 침착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복귀하라!" 내가 내린 지시에 대차게 OK 사인을 보낸 뒤에, '나중에 우주 비행도 하려면 이 정도는 개껌이지' 같은 오만한 생각까지 더해 과몰입을 하면, 뭐라도 된 것처럼 쫙 편 가슴으로 아주 스무스하게 일을 마칠 수 있다.
펫시터 일을 처음 하는 날에도 그랬다. 책상 앞을 떠나서 하는 일이 너무 오랜만이라 걱정스러운 와중에 요새는 '실시간 영상 서비스'라는 게 있어서 장비도 잘 챙기고, 앱간 연동도 하고... 아무튼 생소하디 생소한 순서들도 익혀야 했다. 그냥 문 열고 고양이 보고 오는 것이 아니야...! 궁극의 문과 출신이 일할 때 '장비'라고 불리는 거 챙겨볼 일이 뭐가 있었을까. 나는 그저 이과 개발자들이 뼈를 갈아 만들었을 시스템에 내가 껴서 뭐 하나라도 빠뜨리고 오류가 생길까봐 떨었다. 그러니까 그때가 딱 과몰입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 ~나~는~우~주~비~행~사~
우주과학의 실용성은 진짜 어마어마하다.
사실 진짜로 우주에 가보고 싶은 마음은 1... 정도다. 실제로 가야 한다고 떠밀면 무서워서 죽을 것이고, 과몰입은 그럴 일이 없기에 마음껏 해보는 것일 뿐. 왜냐하면 똥이 변기 안으로 알아서 떨어지지 않는다든가, 뇌수가 흐르질 못해서 머리가 꽉 차 눈알을 밀어낸다든가, 가루가 눈에 들어갈 까봐 포테토칩은 못 먹는다든가, 아까 그 알아서 떨어지지 않은 똥이 허공으로 떠오를 수도 있다든가, 그 똥이... 아무튼 중력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들이 생각보다 끔찍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마음속으로 중력과 치질을 선택하였다. 그 뿐 아니다. 우주에 가려면 뇌가 터지도록 공부해야 하고, 심장이 터지도록 단련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뭐 하나 진짜로 터지면 망하는 아슬아슬하고 아찔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견딜 수 없지! 나는 피나는 노력을 안 좋아 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피 나니까....
이런 나와는 달리 우주 비행사들의 얼굴과 풍채에선 담대함을 넘어선 무모한 자신감 같은 게 가득 차서 흘러나온다. 애초에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피가 나게 된 것일까, 피가 나게 해서 그렇게 된 것일까?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만나면 조금 안 친하고 싶을 것 같다. 전부 우주로 가기 망정... "나는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식으로 꽉 찬 존재,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예, 저는 약속이 있어서... 헤헷.
우주 비행사가 우주로 나가서 일하는 것은 그의 경력 중 일 퍼센트에 불과하며 우주복을 입고 일하는 것은 다시 그 중의 일 퍼센트다. _ 메리 로치
그렇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람들의 마음 일부가 나에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게 좋아"라는 이유로 우주를 좋아하는 마음. 별 그지같은 시험도 일단 끝까지 보는 근성. 아침마다 지구인 아닌 듯이 마라톤을 하고 출근하는 텐션. 전공과는 하등에 상관 없는 것들을 배우면서 '영웅 놀이'가 아닌 '우주 생활'을 준비하는 묵직함. 급박한 위기 속에서도 '위기를 컨트롤 하느라 바빠서 겁낼 시간은 도무지 없다'고 말하는 배짱. 기다리는 임무가 몇 년 씩 늦어질 때도, 기다리던 임무가 취소 됐을 때도 무너지지 않는 단단함. 뭐, 와르르 무너졌다가도 다시 "나는 이게 좋아"라고 우주를 향하는 패기. 가만 보면 엄청나게 순수한 마음들. 내가 밑도 끝도 없이 우주인 흉내를 내는 걸 봐서 나에게도 아주 조금은 있는 것 같은데, 그 티끌 만큼을 잘 지켜내서 우주인처럼 세상을 살아가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러고 싶으니까. 앗, 하지만 이게 너무 과하면 안 친하고 싶은 사람이 되므로 조심하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인생은 또 얼마나 무한히 다채로운지! 나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에게서 본 것을 잊지 않으려 우주인이 된다는 0퍼센트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그리고 가슴에 공기를 꽉 채워 부풀린 다음, 내 생의 99%를 맞이하러 간다. 내일부턴 새로운 아르바이트...
Ground Control to Major Tom
Ground Control to Major Tom...*
오늘, 우주로 출근합니다 - 놀랍도록 유쾌한 우주비행사의 하루, 마리옹 몽테뉴 지음, 하정희 옮김, BH Balance&harmony, 2020
*Space oddity라는 노래 첫 소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