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천국으로 출근해
엄마는 매일 기도한다. 기도 목록에는 일용할 양식도 포함되어 있는데, 뭐, 없다고 하더라도 다른 걸 기도하면 자동으로 기도가 되는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러면 그게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새벽마다 배송되면 참 좋겠는데… 하느님은 꼭 나한테 일을 시킨 다음 엄마한테 갖다준다. 내가 이걸 좀 피해 보려고 파테크를 시작하고 인플레이션 대비차 상추 씨앗도 심었던 건데. 일 시킬까 봐. 하지만 안타깝게도 둘 다 망해버렸고, 망한 것이 확실해진 시점에 로션과 선크림이 한꺼번에 떨어졌고, 내 사랑하는 식물들 중에 희귀 식물은 단 한 종도 없기 때문에 당근에 팔 수도 없는 상황에서 24롤 두루마리 휴지를 신용카드로 살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 대금을 갚기 위해 일자리를 구해야만 했던 거다. 이게 내가 새로운 일을 구하게 된 경위다.
구하는 일자리의 기준은 이러했다.
1. 소속감이 적을 것 : 사람이 싫기 때문에
2. 몰입도와 긴장도가 낮을 것 : 피곤한 게 싫기 때문에
3.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남을 것 : 성우 학원에 가고 싶기 때문에
4. 일이 끝나면 더 이상 따라붙지 않을 것 : 피곤한 게 싫기 때문에
5. 월급이 200만 원은 될 것 : 빚과 살고 있기 때문에
싫은 게 많은 굉장히 수동적인 애티튜드로, 그러나 발등에 떨어진 불의 온도를 의식하면서 다급하게 구직 사이트와 당근 알바 페이지를 오갔다. 내가 봐도 이 세상에 있을법한 현실감이 없는 기준…! ‘그냥 누워서 떡 먹고 싶다는 만인의 꿈을 나도 꾸고 있는 것뿐이지 않나…?’라는 생각이 고개를 쳐들때쯤, 이 모든 기준을 만족시키는 일자리를 찾았나니, 그것은 실제로 저승 근처에 있었다. 바로 추모 공원 안내데스크 직원, 묘지기다. 묘지기 알바 한 달이 넘은 지금, 나는 이게 감히 천국의 포지션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하다 문득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색 묘지들을 바라보며 “나 지금 죽은 거 아니야?” 할 만큼 평화로운 포지션. 천국의 계단이자 꿀단지 속! 단언컨대 여기 일하는 모든 직원이 나랑 포지션 바꾸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난 바꿔주지 않지.)
집에서 버스로 20분 거리. 업무량은 다 합쳐도 출근해 있는 9시간 중 3시간이 채 안 된다. 앉아 있는 게 일이라니, 믿을 수 없다! “안뇨하세요~ 이쬬깁니다~” 가 주요 업무. (나 빼고) 다들 바쁘기 때문에 점심은 돌아가며 혼밥이고, 내 포지션은 신설된 것이므로 나만 팀도 없다. 보통은 끈적거리기 마련인 사회생활의 늪에서 ‘팀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지 다들 알 거다. 깍두기라니! 까악! 그리고 가장 중요한, 6시 정시 Karl 퇴근. 대부분의 고객은 말이 없고(RIP), 방문객들은 6시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룰 때문이다…. 고객지원실의 입구, 그러니까 사무실의 가장자리에서 깔짝대는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 있는 건지 몰랐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한때는 스스로 만든 막중한 책임감에 눌려 살았고, 또 언젠가는 ‘가만히 있다가 가마니가 되는 게 꿈’이기도 했는데 그 꿈을 지금 이룬다니… 꿈은 정말 이루어지는 것이구나! 뭐랄까… 나 죽은 건가?
고비들이 있기는 했다. 면접 날 버스에서 내리니 신호등 없는 왕복 5차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부터였다. <안치되지 않고 길 건너기> 입사 테스트였겠지? 나는 직원이 되러 온 거지 고객이 되러 온 게 아니니까, 지금은 내 때가 아니라는 마음으로 임했다. 무사히 통과하여 출근한 이후로는 열흘을 그 아무도 나에게 아는 체 하지 않았는데, 아마 이건 묘지 특성상 <Nobody 평가>였던 게 아닐까 싶다. 여긴 사람들이 칸마다 빼곡하지만 동시에 없기도 한 곳이니까. 아, 이거 참, 돌아보니 만만치 않은 평가 절차들이었다. 하지만- 예-! 할 수 있습니다. 견딜 수 있습니다. 저의 특기입니다! 아무도 일을 안 주고, 아무도 말 걸어 주지 않고, 아무도 내 이름을 묻지 않으며 자기 이름도 안 가르쳐 주고 굉장히 바빠서 내가 말 걸 틈도 없는 상태를 견디기. 누구보다 성공적으로 고비들을 넘어왔다고 자부한다. 조직 문화가 없는 게 조직 문화지만 차 없는 사람을 산 밑까지 태워다 주는 매너는 있고, 누구도 인수인계를 해주지 않아 놓고 곧 누가 새로 오면 “어~ 그거 이슬씨가 좀 알려줘요, 어?” 할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그게 꼭 여기만의 문제일까. 거슬리는 것들은 내동댕이치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이런 것도 내동댕이칠 수 있을까? 엄마가 사람들에게 나의 근황에 대해 “어, 뭐… 일하고 있어"라고 얼버무리는 것. 3년에 한 번 연락 할까 말까 한 친구에게서 온 연락과 “재취업 했어?”라는 질문에 “어, 뭐…”라고 얼버무리는 나. 면접에서 “좋은 데 다니시다 왜 여기…?”라는 질문에 “집이 가깝습니다”라고 멍청히 대답하곤 어딘지 묘했던 기분. 그렇다고 내가 갑자기 대한민국 장례문화를 선도할 것도 아니고, 거짓말로라도 그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는 데다가 결국 집이 가까운 게 가장 중요하지 않았나 싶기 때문에 후회는 없지만, 직업이라고 하면 응당 따라붙기 마련인 ‘성장 가능성' 같은 것이 담보되지 않는 일자리라는 게 보통은 인생의 낭비로 여겨진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하니 지금 보니 소망들 다 이뤘단 게 중요한 거지. 내가 일을 구하는 이유에 따라붙은 까다로운 작은 소망들은 모두 이루어졌다.
귀하다. 묘지기 배지! 수도권 외곽 알바의 탑 클라스. 창밖으로 미래가 훤히 보이는 곳!
”나의 미래, 너의 미래가 여기 경기도에 있습니다.“
나는 매일 각자의 안식이 고요한 이곳에서 안정감을 누릴 것이고, 이 안정감은 매달 28일마다 최고치를 찍을 것이다. 평화… 아, 평화. 묘지와 꽃다발, 까치와 까마귀들….
20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