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채'할 때 피읖
풍채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는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으로만 쓰여있어 사전적으로는 캐스퍼 아닌 이상에야 모두에게 풍채는 있는 것인데, “햐, 거 고놈 참 풍채가 조-ㅎ타”라고 할 땐 뭔가 어깨도 좀 있고 딴딴하고 건강한 느낌이다. 포동포동까지는 아니어도 몸집으로부터 너그러운 뭔가가 흘러나오는 느낌이랄까? 그렇다면 나는 풍채가 없다. 풍채를 갖고 싶다. 풍채를 내놔라. 풍채 좀 가져보자~! 이렇게 욕심을 단단히 품고 나서, 나는 풍채로 가는 길 위에서 체중의 앞자리를 바꾸었고! 꿈의 풍채도 머지않았다. 지금 내 통통한 배에 붙은 피읖 배지가 풍채로 가는 첫걸음이다.
저체중의 비애는 과체중의 그것과 같으며 다르다. 적정하다고 정해진 무게를 향해 가는 길이 무척 고되다는 점에서 같고, 마른 걸 좋아하는 세상에서 “살 좀 쪄라”, “넌 좀 더 먹어”, “왜 이렇게 말랐어” 같은 말을 칭찬이랍시고 입 밖에 내는 사람들을 어딜가나 만난다는 점에서 다르다. 만났을 때 내 몸과 체중 얘기를 안 하고 넘어가는 모임이 손에 꼽힌다. 내가 테이블 위에 올라간 마른오징어 비슷한 처지란 얘기다. “살 좀 빼라”, “넌 그만 좀 먹어”, “ 왜 이렇게 살이 쪘어”를 어떻게 말해도 실례이고 무례인 걸 아는 사람들도, 그 반대의 말은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가끔 대화가 좀 통할 것 같아 나의 설움을 털어놓아도 대화는 곧잘 “에이, 부러워서 그러지~”로 끝난다…. 나는 입 없는 멸치다.
아니, 경채씨*의 말마따나 “한여름에 코트를 입은 사람이 있더라도 아파서 입었을 수도 있고, 추워서 입었을 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남들이 전봇대로 이를 쑤시든 말든 신경 쓰지 말고” 사는 세상이 서로 가장 편한 건데, 현생 인류 대부분은 마른 것이 너무 좋은 미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풍채 없는 나는 항상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의 엣세이 - 이 지면은 나의 것이다. 저체중이 부러운 당신? 에라이, 그럼 저체중에 딸려 오는 푸석거림과 삐걱거림과 뼛골 쑤심과 삭신 아린 것과 여름에도 추운 것과 여기저기 삐고 아픈 것까지 가져가라. 그리고 어떻게 입어도 ‘추워 보인다’고 하는 안쓰러운 시선과 코멘트까지 다 갖구가라. 살찌려고 많이 먹으면 외계인처럼 배만 뽈록 올라오는 것도 가져가라. 애인과 포옹하면 서로 배만 닿는 Non-Romantic Situation까지 가져가라. 만성피로 가져가라. 치매 발병위험률 가져가라. 남들이 내 먹는 것 하나~하나, 메뉴 간섭하는 것까지 가져가라아~! (콜록거리며 바닥에 쓰러지듯 눕는다)
내가 사는 몸은 말랐고 아프기 때문에, 언제나 어리고 미숙하고 배우고 조언 받아야 하는 취급을 받는다. 나는 그런 몸에 살고 있다. “너무 말랐다~”하며 안쓰러워하는 시선들에는 내가 어딘가 부족한 몸으로 비치고, 누군가가 나를 그렇게 인식한다는 걸 내가 아는 것이 내 인생에 좋게 작용했을 리가 없다. 남의 시선이 내가 나에게 갖는 편견이 되기도 했다. 에너지가 없고, 말랐고, 힘없고, 체력이 달리는 게 일부 사실일지라도, 그게 결코 나의 한계를 규정지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아… 불현듯 내 몸을 사이에 두고 두어 차례 있었던 한방과 양방의 격돌이 생각난다. 1차 격돌은 내가 발목을 또각 삐었을 때. 양방에서 “침이니 부항이니 이딴 거 소용 없”댔는데, 한방에선 발목 고정용 “석고 따위 쓸모없”댔던 일…. 2차로는 한방에선 “살이 잘 안찔수밖에 없는 체질”이랬고 양방에선 “그딴 건 없고 활동량보다 많이 먹으면”무조건 찐댔던…. 거친 격돌과… 그걸 지켜보는 불안한 나… 나 누구 말을 믿어요? 둘이 합의 좀 부탁해요.
내가 풍채를 원한다고 함은 존재에 대한 것이다. ‘이렇게 생겼으면 좋겠어.’ 정도의 바람을 넘어, 누가 “어이쿠야” 하면서 내 쪽으로 넘어질 때 같이 쓰러져서 부러지지 않고, 넉넉히 받을 수 있는 단단함을 바란다. 일단은 말 그대로 ‘무게’를 원하는데, 기본적인 무게가 돼야 거기서부터 뭐라도 시작일 것 같아서다. 말라서 겪는 비애를 해소하는 건 핵심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하루의 삶을 거뜬히 받칠 수 있는 무게를 원한다. 두발로 딛고 섰을 때 파들파들 떨리거나 휘청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면을 딛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무게. 하루를 마치고 나서 지친 몸이 흩날려 날아가지 않을 정도의 무게. 가끔은 정말로 내 마른 몸이 너무 가벼워서, 바람이 세게 불기라도 하는 날엔 휠릴리 날아가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기 때문에. 땅을 디딘 내 무게가 나조차도 하찮게 느껴져서 ‘이런 종이 인형은 언제든 없는 셈 쳐도 되는 존재인건 아닌가’ 싶은 날도 있기 때문에.
무게감 있게 버티고 싶다. 밀어도 안 밀리고 싶고, 딛고 뻗어 달려 나갈 때 힘차고 싶다. 내가 이만큼의 질량을 가지고 여기 존재한다는 걸 묵직하게 느끼고 싶다. 땅에 발을 단단히 디디고 흔들리지 않고 싶다.
나는 매년 내 생일마다 풍채의 ㅜ, ㅇ, ㅊ, ㅐ 를 선물한 담에, 마흔에는 진짜 풍채 그 자체가 되겠어. 응. 에이멘.
20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