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보는 음식을 먹을 때
호기심과 경계심 사이의 균형감각이 드러난다.
미지의 것에 얼마나 마음을 여는지
볼 수 있는 리트머스지가 아닐까.
요네하라 마리, <미식견문록>
나는 낯선 음식을 접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열려 있는 상태인지 가늠해보곤 한다. 프랑스에서 살면서부터 그 전에는 먹어보지 못했던 다양한 요리를 접하게 됐다. 근사한 다이닝 레스토랑, 프렌치 비스트로에 가는 것도 행복했지만, 왠지 이민자들이 차린 식당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민자가 많은 프랑스에는 현지화되지 않은 느낌의 식당이 꽤 많고, 갈 때마다 새로운 모험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아프리카, 아랍계 이민자가 많은 만큼 그 문화권의 음식이 꽤 흔한데 웬만한 세계의 음식은 파리에서 다 만나볼 수 있다. 쌀국수가 먹고 싶을 땐 베트남인들이 하는 식당에 가면 됐고, 터키 사람들이 만드는 케밥은 술 취한 날 새벽의 흔한 야식이 된다. 가끔은 집 근처의 중국인 아저씨가 직접 빚은 만두를 사러 가기도 한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음식과 이민을 연결 지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낯선 땅에서 낯선 이의 처지가 되어 살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인도인들이 내어주는 따뜻한 커리, 레바논 사람들이 건너와 차린 식당에서 먹는 후무스 같은 것들에는 그들의 여정과 애정이 담겨 있다는 걸.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그들이 마치 내게 그들의 삶을 소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가 프랑스에 처음 와서 프랑스어에 서툴 때 가장 먼저 한 일도 친구들과 음식을 나눠먹는 거였다. 알제리안 친구와 각자 나라의 요리를 교환하기로 한 적도 있었고, 너무 매운 떡볶이를 만드는 바람에 프렌치 친구들을 본의 아니게 고문하는 경험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친구 집에 가서 갈비를 굽고 전을 부쳤다. 아마 그건 나를 소개하는 원초적인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난 이런 걸 먹고 자랐고, 우린 돼지고기를 이렇게 잘라먹고, 야채를 마늘과 양념에 절여먹고, 이런 차를 마셔. 어때 너희들은 나의 방식을, 아니,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니'라고, 그렇게 묻는 하나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이탈리아 사람인 남자친구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나를 처음으로 집에 초대하신 날, 할아버지는 직접 반죽한 딸리아뗄레에 라구 소스를 얹어 주셨다.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솔직히 먹기 전부터 맛있을 거라는 걸 알고 먹었는 데도 맛있었다. 내가 포크로 면을 말아 입으로 넣는 순간 할아버지가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순간 갑자기 내가 파스타도 제대로 먹을 줄 모르는 인간처럼 보일까 봐 조금 긴장이 됐다. 파스타가 맛있는 건 당연한 거지만 나는 늘 다른 문화권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제대로 먹고 있는 건지 은근히 신경이 쓰였다. 내가 비빔밥을 젓가락으로 께적거리는 가엾은 프렌치처럼 보일까봐 살짝 걱정이 됐던 것이다. 내 반응을 살피는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면서 떠올렸다. 가만, 저 눈빛은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저건 마치 남자 친구에게 처음 김치를 먹인 날의 내 눈빛 같은 거잖아. '제발 맛있게 먹어줘!'라고 소리치는. 그날 나는 그가 김치를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에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그가 이방의 것을 얼마나 열려 있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지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내가 자라온 문화권, 나라는 사람이 갖고 있는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이는 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내가 먹는 걸 그도 함께 맛있게 먹어주길 바랐다는 건 아마 그에게 내가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파스타를 먹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고 온갖 손짓을 동원해 맛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안심했다는 듯 식사를 하시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손수 만든 딸리아뗄레는 그냥 한 끼의 식사 대접이 아니었다. '너도 이제 우리 가족처럼 먹는 사람, 우리에게 친밀한 사람이 되는 거란다' 하는 인사였다.
음식에는 생각보다 많은 코드가 담겨 있다. 우리가 누군가를 혐오할 때도 음식에 관한 표현을 쓰는 건 흔하다. 한국인들은 미개하게 개를 먹고, 인도인들은 더러운 손으로 커리를 먹고, 중국 음식은 기름 지고 건강에 안 좋다는 편견 같은 것들도 그 문화권의 사람들을 얼마나 닫힌 마음으로 보는지에 대한 반증 같은 것이다. 세계의 많은 요리를 먹다 보면 새롭기도 하지만 의외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조금씩 방식이 다를 뿐이지 야채를 절여먹거나 고기를 야채에 싸 먹거나 하는 것도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김치를 처음 먹어 본 남자친구의 반응도 이탈리아에도 비슷한 맛의 샐러드가 있다는 거였다. 정말 먹어보니 볶음 김치 맛이 났다. 물론 파르메산 치즈가 들어 간.
그러니까 우리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고, 다르지만 생각보다 비슷하다. 나는 그 사실을 낯선 음식들이 가득한 식탁에 앉을 때마다 떠올린다. 다만 먹어보지 않으면 그 사실을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