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나 의무 교육 때문이 아닌 오로지 흥미로 배운 외국어는 프랑스어가 처음이었다. 나는 프랑스어를 대학 교양 강의로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지금처럼 프랑스에서 살 거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입시 위주, 사교육으로 범벅된 한국의 교육에 많은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던 터라 내게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순수한 호기심이 남아있다는 게 꽤 반갑게 느껴졌다.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서점에 가서 프랑스어 공부를 위한 책을 고르고, 서서히 문법과 어휘를 익히고, 프랑스인과 직접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스터디까지 찾아갔다. 그렇게 프랑스어 공부에 꽤 열심이었던 나를 보고 한 친구가 물었다. '프랑스어 공부를 왜 해? 쓸모도 없는데.' 그때는 유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딱히 그럴싸한 대답을 못 찾았다. 나는 그냥 관심이 가서 공부하는 거라고 얼버무렸지만, 사실 친구 말대로 그 시간에 영어 공부나 하는 게 나의 미래엔 훨씬 더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그 쓸모라는 게 구직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묻는 거라면 한국에선 프랑스어가 별 쓸모가 없다. 서울에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을 만나거나 같이 업무를 할 때도 영어로 대화하면 그만이다. 프랑스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 프랑스어를 배우냐는 불쾌한 질문을 듣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꼭 그런 말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쓸모를 자주 증명해야만 했다. 성적표, 대학 입시, 취직, 자격증, 시험, 나는 지금까지 그런 것들을 위해 공부해왔는데,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흥미를 가지고 뭘 하나를 배운다는 것이 그렇게 허용이 안 되는 일인 건가 싶었다. 나는 괜한 반발심이 들어서인지 더 집요하게 프랑스어를 공부했다. 해변에서 조약돌을 줍듯이 새로 배우는 단어를 열심히 머릿속의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프랑스어로 의자, 고양이, 장미 같은 단어를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갈수록 어린아이처럼 신이 났다. 세상에 바다를 부르는 수 천 가지의 말이 있다는 사실이 흥분되기도 했다. 의무감으로 영어를 공부할 땐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를 프랑스어를 배울 땐 느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에 나는 프랑스로 훌쩍 떠나오게 되었다. 마치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쓸모를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아무리 그전에 한국에서 공부를 했더라도 그 흔한 유럽 여행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내게는 모든 것이 낯설었다. 파리의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모르는 언어로 된 세상에 떨어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린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은 더 이상 신나지도 않았고, 프랑스어의 주변을 맴돌며 더듬거리는 내가 무력하게 느껴져서 운 적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만두지 않았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빠른 속도로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나는 그들이 내게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같은 언어로 말하고 표현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건 내가 모르던 세상을 내 안 쪽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었다. 몇 년 간 내가 새로 배운 말들이 나를 얼마나 멀리까지 데려다주었는지 모른다. 좋아하는 프랑스 영화나 문학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음식부터 패션까지 일상에서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프랑스엔 외국인, 이민자가 많아서 나처럼 프랑스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들과 고충을 나눌 수도 있어 외로움이 덜 했다. 내가 완벽하게 이 언어를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때로는 외국인이라는 나의 지위를 확고하게 만드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난 내가 여전히 실수를 하고 계속 배우는 중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다.
사람처럼 돌고래들은 사는 지역에 따라 언어가 달라서, 서로 먼 바다에 사는 돌고래끼리는 소통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그 중간에는 양 쪽의 언어를 모두 할 줄 아는 돌고래도 존재한다. 그 돌고래들은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더 넓게 헤엄치며 다니다가 전에는 몰랐던 다른 언어를 배우게 된 것이다. 프랑스에 산 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나는 프랑스어를 배우는 중이다. 아마 계속 부족할 것이고 평생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 쓸모없는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 왜 그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하냐고 묻는다면, 조금 더 멀리 가기 위해서, 내가 본 적이 없는 바다를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