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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Sep 29. 2022

서울은 사람을 외롭게 해



나는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평생을 서울에서 살았다. 한국의 다른 도시에서 살아본 적도 없고, 외국에 잠깐 거주할 때도 소도시나 시골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면서 그렇게 서울은 자연스럽게 내 삶의 기본이 되었다. 서울에서 살 때는 서울이 얼마나 큰 도시인지 잘 모르고 살았지만 프랑스에서 큰 규모의 도시인 파리나 마르세유만 해도 서울보다는 훨씬 작고, 유럽의 어느 도시와 비교해봐도 서울은 큰 도시다. 프랑스인 친구들이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 대해서 궁금해하면 나는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라고 대답하곤 했다. 나는 전형적인 대도시형 인간으로 자라왔다. 지하철 2호선에서 인상 찌푸리고, 사람 밀쳐놓고 사과하지 않는 사람을 속으로 저주하는 게 내 특기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과는 절대 인사하는 법이 없었으며 이웃집에 누가 사는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도시의 소음, 꺼지지 않는 불빛, 지저분한 거리와 밤늦게 술에 취한 사람들은 스트레스긴 해도 그냥 당연한 거였다. 평생을 그런 환경 속에서만 살았으니까.


나는 프랑스로 이사한 후 종종 내가 살았던 서울을 떠올렸다. 서울에 대한 내 개인적인 인상은 외로운 도시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방인으로 살면서 느끼는 외로움도 있었지만 서울에서 느끼는 외로움과는 달랐다. 서울에는 대도시만이 가진 거대한 외로움 같은 게 있었다. 어디를 봐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의 눈빛과 감상적인 공허함 같은 게 뭉쳐져서 만들어내는 공기가 있었고, 나는 가끔씩 그 공기에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나는 그 외로움이 어디서 오는 건지 파악할 사이도 없이, 아니 내가 느끼는 게 외로움인지 뭔지도 모른 채로 이리저리 떠밀렸고 그러다 보면 시간이 흘렀다.


프랑스에 도착해 1년을 파리에서 살았고 1년 정도는 소도시인 엑상 프로방스에서 지냈다. 파리에 도착해서 가장 달라진 것은 내가 도시를 바라보는 위치였다. 말 그대로, 서울에 살면 도시를 자주 내려다보게 된다. 나는 서울의 아파트에서 살았었고, 고층 건물 안에 있을 일이 잦아서 창 밖으로 도시를 내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 거리가 나와는 멀게,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높은 곳에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서 문을 나서면 또 다른 나를 장착하고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프랑스에서 살면서부터 도시를 내려다볼 일은 거의 없어졌다. 거리와 사람들은 훨씬 더 내 가까이에 있게 됐다. 인터폰과 카드키 대신 초인종과 열쇠. 6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낡은 엘리베이터와 삐그덕 거리는 계단. 테라스에서 친구들과 한 잔, 이웃집 사람들과의 저녁 모임. 이런 것들이 내 삶을 채우며 조금씩 변해 갔다.


Aix en Provence 의 aix 는 라틴어로 물이라는 뜻인데,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분수가 많다. 노란 빛이 도는 건축물과 해 지는 풍경도 좋아한다



엑상 프로방스에서의 삶은  많이 달랐다. 지하철도 없고 골목엔 차도  다닌다. 밤에   소음을 들은 적도 없다. 교통 체증 때문에  위에서 시간 낭비하는 일도 없으며, 차를 타고 조금만 나가면 계곡, 산과 바다가 있다. 그렇다고 논밭만 있는 시골도 아니다. 유명한 대학들이 있어서 젊은 사람들도 많고, 역사가 깊고, 유명한 예술가들은  거쳐갔을 정도로 프랑스에서도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히는 곳이라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모든  편리하게 갖춰져 있는 곳인데도 자기만의 특색과 매력을 간직한 소도시가 있다는  부러울 지경이었다. 난생처음 소도시에 살면서 정말 많이 걸어 다녔다. 나를 죽일 듯이 달려드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방해 없이 걸을  있다는  일상에 생각보다  해방이었다. 발길이 닿는 대로 걸으면서 나만의 거리와 장소를 만들어갈  있었다. 영화 관련 서적을 파는 작은 서점, 취향의 디저트를 파는 가게와 극장 옆의 멋진 테라스가 있는 카페, 피카소와 세잔을 잔뜩   있는 미술관, 내가 좋아하는 곳들이 멀리 가지 않아도 하루의 동선 안에 있다는  삶의 피로감을 줄여줬다.


남프랑스의 사람들은 좀 더 느긋하고 친근한 느낌이 있다. 아무한테나 말을 걸고 미소 짓고 웃음이 헤프다. 지금껏 무표정과 짜증 가득한 얼굴로 살아왔던 나는 처음엔 적응이 안 돼서 좋은 하루 되라는 인사말을 고장 난 기계처럼 버벅거리며 했던 것 같다. 또 남부에서 만난 친구들은 자연을 무척 사랑한다. 과제 같이 하자고 해놓고 '근데 오늘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라면서 그냥 바닷가에 좀 누워있자고 한다. 길을 가다 시장이 있으면 제철 과일과 야채들의 향기를 맡아보고 저녁거리를 사 간다. 좀 피곤하다 싶으면 적당히 맘에 드는 곳을 골라 낮잠을 자면 된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삶의 방식에 흡수되어갔다. 그냥 햇살이 따뜻해서 잠깐 쉬자는 친구의 말에, 바닷가에 누워 있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 행복하다. 아무것도 아닌데, 그냥 햇빛이 조금 있고 바다의 짠 내음과 파도 소리가 들려올 뿐인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내가 이렇게 별거 아닌 거에 잘 웃는 사람이었나.


몇 년 전의 서울에서의 내 얼굴이 떠올랐다. 스트레스 때문에 온갖 약을 달고 살았고 집으로 향하는 막차 안에서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눅진한 몸을 이끌고 내 방 침대에 누우면 머리 위로는 내일에 대한 걱정이 떠올랐다. 서울에서의 젊음이란 밤새 쿵쾅대는 음악에 몸을 흔들고, 왁자지껄하게 술에 취하고, 동이 터서야 집에 들어가서 시커메진 내 눈 밑을 거울 속에서 확인하는 일이었다. 단 한 번도 그 이외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는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욕망이 훨씬 더 강했던 거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서울에서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던 거다. 프랑스로 떠나올 때는 전혀 모르는 낯선 곳에 나를 떨궈 버리고 싶다는 충동도 있었다. 어쨌든 서울은 내가 선택한 도시가 아니라 처음부터 내게 주어진 도시고, 그래서 서울을 사랑하는 만큼 무척 미워하기도 했다. 서울에 살 때는 왜 그렇게 힘겨웠던 건지, 아직도 서울이 나를 떠밀어 보낸 건지 내가 서울을 떠난 건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원래 대도시 사람이고, 큰 도시에 더 익숙하고, 그 안에서 고독해하면서도 그걸 즐기는 방법까지도 아는 사람, 그게 내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잠들지 않는 네온사인과 익명성 속에 잠겨있고 싶기도 하다. 지저분하고 속물적이고 어지러운 대도시가 솔직히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여기 살면서 때로는 이웃집 사람이 내게 말 거는 게 귀찮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방식을 더 좋아하느냐를 떠나서, 사는 곳이 나를 이미 변하게 만들었다. 이번 달엔 어떤 채소가 제철인지, 시장에서 맛있는 과일 고르는 방법 따위를 배웠고, 내 책상 서랍에는 언제든 쓸 수 있는 편지지와 우표가 있다. 이제 모르는 사람과도 인사하고 안부를 묻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 전에는 등산 한 번 한 적이 없던 나였지만 이젠 산도 바다도 늘 내 가까이에 있다. 무엇보다 프렌치들은 완벽하게 뒹굴뒹굴하는 법, 아름다운 방식으로 게을러지는 법을 내게 알려주었다. 이 모든 걸 서울에선 배울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서울을 떠나지 않았다면 배우려고 하지 않았을 거다. 떠나지 않고서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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