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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나 Oct 18. 2022

남이 버린 옷 주워 입기


나는 패션을 좋아한다. 예쁜 옷을 그냥 눈으로 보는 것도 입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입은 민소매의 끈이 어떤 형태인지 내가 입은 파랑이 연한지 깊은지 회색에 가까운지 따위를, 누군가에겐  상관도 없을 그런  따지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멋진 디자이너들의 새로운 컬렉션이 가득  방에 나를 가둬놓으면 실크를 껴안은 개츠비의 데이지처럼 흐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내가 패션 산업이 환경을 망치는데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알고 나서부터는 혼란스러워졌다. 요즘엔 돈이 있어야만 멋있게 입을  있는 것도 아니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에서 쇼핑하면 얼마든지 유행에 맞춰 꾸밀  있다. 솔직히 저렴한데   입고 말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혹하게 된다. 그렇게 요즘의 옷은 엄청나게 빨리 생산되고, 빨리 소비되고, 빨리 버려진다. 농담처럼   유행하는 색을 알려면 중국 공장 지대의 강물 색깔을 보면 된다는 말도 있다.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탄소와 폐수 배출이 있고 과다하게 생산돼서 팔리지 않는 옷은 개발도상국에 버려지거나 태워지고  과정에서  오염이 발생한다.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에 돈을 주고 갖다 버리는 식민주의적 시스템과 노동 착취와도 무관할  없다. 글로벌 패션 기업들이 중국의 위구르 족을 착취해서 생산한 면을 사용한다는 것도  이슈가 됐었다.


내가 쫓는 아름다움이 내가 사는 이 아름다운 곳을 파괴하는 거라면 내 자신이 더 이상 아름다워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소비가 다른 존재를 아프게 하는데 일조한다는 게 거북해지기 시작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 순 있지만 그렇게라도 뭔가 시작하지 않으면 앞으로 영영 달라지는 건 없을 터였다. 나는 옷을 사기 전부터 이 기업이 어떤 생산 공정을 거치는지 살펴보고 더 환경을 신경 쓰는 기업에 돈을 쓰기로 했다. 조금만 시간을 들여서 찾아보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새것을 사기보다도 지금 있는 것들을 좀 더 오래 입기로 했다. 사실 그 전부터도 나는 옷을 함부로 버리지는 않았다. 엄마가 워낙 옷을 잘 관리해서 나한테 물려준 게 많았기 때문에 그런 옷들을 입고, 내가 안 입는 것들은 중고로 팔아서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한 두 번 입고 옷장에만 놔두는 옷들이 많았다. 그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의문이 들었다. 내겐 이미 이렇게 옷이 많은데 정말 더 많이 필요할까?


주말 동네에 자주 열리는 벼룩 시장. 보물찾기하듯 구경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간다.

빈티지를 주로 입는 것도 좋은 방법인데, 사실 말이 빈티지지 남이 버린 걸 주워서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는 거다. 프랑스에는 빈티지 샵이 무척 많은데 명품만 다루는 고가의 가게부터 무게를 재서 살 수 있는 저렴한 가게까지 다양하다. 골동품을 내다 파는 시장도 자주 열리는 편이다. 흔히 사람들이 갖는 프랑스에 대한 이미지가 럭셔리하다는 건데 생각보다 프렌치들은 놀랄 만큼 검소하다. 맨날 구멍 난 티셔츠에 신발 신고 다니고, 가구도 누가 길에 버린 거 주워서 쓴다. 근데 얘네가 하면 그게 또 왠지 빈티지 스타일 같고 멋있어 보이고 그렇다. 누구도 그게 빈티 난다고 뭐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걸까. 구멍 난 바지가 진정 프렌치라는 걸 알게 된 나도 이젠 예전 같으면 버렸을 낡은 옷을 환경운동가인 척하면서 입고 다닌다.


사실 살 필요도 없이 빈티지를 입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옷장을 뒤지는 거다. 나는 엄마가 물려준 옷이나 가방을 잘 착용하는데 관리하는 방법을 조금만 잘 알면 정말 오랫동안 쓸 수 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니 엄마 옷장에서 은근히 숨겨진 보물들을 찾을 수 있다. 길거리에 흔히 보이는 유행하는 옷에 비해 나만 갖고 있는 하나 뿐인 물건이니까 애착도 생기고.

낡은 옷이 '없어 보이는' 시대는 이제 점점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환경 문제는 유럽에서도 요즘 가장 많이 화제가 되는 주제고, 위기가 바로 피부로 느껴지는 세대인 만큼 프랑스에선 지금의 10, 20대가 환경에 가장 관심이 많기도 하다. 지속 가능한 패션이라는 말이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기업들도 이젠 어쩔  없이 흐름에 따라 환경 문제를 신경  수밖에 없다. 그린 워싱인 경우도 많겠지만 실제로 탄소 배출량과 재활용률을 공개하고, 모든 옷을 재활용해서 생산하는  목표로 하는 기업도  많아졌다. 사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있는 것들은 적고, 기업 차원에서 하는 것보다 효과도 적다고 생각한다. 기업에 압박을 가하고 그들이 눈치를 보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그러려면 결국은 우리가 현명한 소비를 하는  필요하다. 여전히 쇼윈도의 멋진 옷과 신발이 나를 유혹하지만 이젠  뒤에 있는 파괴까지도 같이 보인다. 앞으론 구멍  티셔츠나 보풀  니트 따위가 환경 운동하는 힙한 세대의 유행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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