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 와서 영화를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역사상 중요하다는 영화도 의무적으로 보고, 영화를 분석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그게 영화를 좀 더 잘 느끼도록 도와주진 않았다. 오히려 공부를 할수록 영화를 볼 때 점점 시큰둥해지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했다. 어떤 영화가 싫다면 왜 싫은지 고민해 보고 비판하는 것도 분명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지만, 영화를 평가하는 데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영화에 대해 공부를 할수록 더더욱 그랬다. 어떤 크기와 각도에서 인물을 찍었고, 편집이 어느 지점에서 됐고 이런 점을 세세하게 분석하는 것은 영화를 이해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그런 부분을 잘 모를 때도 나는 영화를 보며 울고 웃었고 어떤 영화들은 그냥 본능적으로, 보자마자 좋아하게 됐다.
내게 영화를 보는 행위란 시각이나 청각이 아닌 촉각에 가까웠다. 만져지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비 오는 날 딱히 갈 곳이 없을 때 혼자 영화관의 구석진 자리에 앉아 움직이는 빛을 보고 있으면 외로운 동시에 철저하게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그 빛이 나를 감싸는 느낌 때문에, 영화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내고 묵묵히 걸어가는 여자들 때문에 영화관에 갔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게 된 첫 마음은 완벽한 영화에 대한 감탄이 아니라, 영화와 나 사이에서 이루어진 연결 같은, 설명하기 힘든 그 무언가였다. 그런 연결을 처음 느꼈던 건 영화 <디 아워스>를 처음 봤던 날이었다. 더는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던 날들이 이어지던 때에 그 영화를 보고 나는 펑펑 울었다. 호텔로 도망가서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품 속에 안고 있던 로라처럼 영화를 손으로 만질 수만 있다면 이 영화를 끌어안아보고 싶었다. 세상에 나 같은 여자가 있다는 걸 이 영화는 아는구나. 그 누구도 해주지 못했던 걸 영화가 해주었기에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영화 속의 여자들과 함께 울고 걷고 나아가면서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확신할 수 있다. 영화 속의 그들은 실패하고, 격분하고, 저 바닥 속에 잠겨있다가도 다시 일어섰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지만 내 기억 속 어딘가에는 살고 있을 그들을 통해서 나는 정말로 삶의 태도나 방식 같은 것을 배웠다. 내가 영화에 대해 쓰는 글은 결국 고백이다. 평가도 분석도 해석도 아닌 나의 경험으로부터 한 영화를 사랑하게 되고, 영화가 다시 내 삶의 경험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믿는다는 고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