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도둑

완벽하지 않은 하루를 인정하면서

by 스틸앨리스

눈을 뜨자마자 오늘 하루의 계획을 그렸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며칠 전부터 구상했던 바느질 작업을 천천히 완성해 가며, 주문받은 작품도 차근차근 준비해 놓고, 수업을 들으러 온 수강생들과 밀도 있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것.


매일 아침, 그렇게 완벽한 하루를 마음속에 미리 담아두곤 한다. 그러나 삶은 늘 계획과 현실 사이에서 조금씩 흔들렸다. 예상하지 못한 일들은 꼭 내가 꿈꾸는 완벽한 하루의 틈새를 찾아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스스로를 달래곤 한다. 깨진 그릇처럼 하루의 계획이 조각나 이리저리 흩어질 때도 있으니까.


​그날도 멀리서 약속한 손님이 오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 날이면 더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를 한다.

며칠 전부터 정성스레 완성해 둔 작품을 포장하며

'설렘'이라는 스티커를 붙여놓고, 커피 기계를 미리 켜둔다. 어느 곳보다 따뜻한 공간이 되길 바라며

평소 잘 켜지 않던 노란 조명도 여기저기 밝혀 두었다.


​하지만 그런 날, 꼭 몇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손님이 있다. 예약한 수업에 늦겠다는 급한 연락이 뒤늦게 전해지기도 한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커피는 마시지도 못한 채 차갑게 식고, 설레며 켜놓은 노란 조명도 어느새 무색해진다.


"뭐야~~ 몇 시간을 기다린 건데" 휴~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져버렸다. 조명을 끄고 에어컨도 줄이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종종거리던 내 다리를 좀 쉬게 해 주기 위해 털썩 소파에 주저앉았다. '아이고~ 곡소리가 저절로 났다.


​아침 일찍 출근해 청소하고 계획해 둔 수업 시간.

약속한 시간보다 너무 늦게 오는 사람들, 가끔은 또

너무 일찍 와버려 내 시간을 제대로 쓰지 못할 때,

온전히 내 것이라 생각했던 하루의 시간이 마치 도둑맞은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마음이 삐뚤어지고 화가 나버린다. 어쩔 수 없이 나의 하루는 시작부터 삐걱거리지만 내색하지 못하고 접어둔다. 자르던 원단들은 그날따라 삐뚤빼뚤, 실들은 이색 저색 구분 없이 실바구니로 처박혀 버렸다.


​그래!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는 거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그날의 흐름을 다잡아 보았다.

제일 속상한 건 시간을 잃어버린듯한 내 기분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하니까.


그런 기분도 잠시, 늦어서 미안한 마음에 좀 더 집중해서 수업받는 수강생을 보고 오전에 들었던 화난 마음을 꺼내지 않았다. 완성하고 기뻐하며 돌아가시면 즐거운 마무리가 보상이라도 되듯 기분이 풀린다.


​그리고 문득 창밖을 내다보다가, 천천히 저물어가는 저녁 하늘을 바라보게 됐다. 완벽하게 선을 그으며 내려앉는 어둠이 아니라, 흐릿하게 번지고 엉성하게 뒤섞인 채 그저 있는 그대로의 색깔로 하루가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하루도 그런 게 아닐까 싶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닌,

조금 삐뚤어지고 조금 흔들리면서도 나만의 흐름으로 흘러가고 있었던 것.


​나는 다시 따뜻한 차를 내리고, 어질러진 천 조각들을 천천히 정리했다. 오늘도 계획한 만큼 완벽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손님을 기다리던 마음만큼은 진심이었고, 수강생을 생각하는 그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했던 것을 기억하기로 했다.


​가끔은 불안하고, 종종 화가 나고, 때로는 삐뚤어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모여 나의 하루가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나는 다시 내 마음을 다독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