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풍요는 어디서 오는가?

by 스틸앨리스

삶의 풍요는 결국 감상의 폭과 닿아 있다.

라는 박웅현 님의 책 속에서 발견했을 때 나에게도 풍요로움은 멀리 있지 않았구나 새삼 느꼈다.

요즘도 그렇지만 카톡 알림을 꺼두고 하루를 보내고 나면, 어김없이 메시지가 쌓인다. 대부분은 한 번에 삭제해도 아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데, 선미(가명)님의 톡은 다르다. 열기 전부터 기분이 좋아지는 묘한 기대가 있다.


사진 한 장, 짧은 문장.

평범한 꽃, 늘 보던 풀잎, 무심히 올려다본 하늘. 혹은 잠시 머물렀던 카페 창가. 특별한 피사체도 아닌데, 그 안에 담긴 시선 덕분인지 나는 괜히 마음이 환해진다.


선미님은 바느질을 할 때도 그렇다. 바늘이 천을 뚫고 나오는 순간마다 작은 행복을 길어 올린다. 헛되이 지나치는 게 없다. 과정 자체를 사랑한다는 건 아마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함께 있으면 나도 덩달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이건 이래서 예쁘다, 저건 저래서 귀엽다.”

그렇게 주고받다 보면, 평범한 순간에도 아름다움이 스며든다.


'예전에 물건을 사기만 할 때는 몰랐어요" 선생님

제가 직접 만들어보니 이런 감각이 숨어 있었고 요런 기술이 필요했었군요. 감탄하고 감동하는 그 모습에 나 또한 짜릿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삶의 풍요로움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감상이란 결국 시선을 잠시 멈추어 주는 습관에서 이루어진다. 보는 법을 익히면 세상은 더 넓어진다. 가만히 앉아 시간을 허락하면, 사소한 것에도 이야기가 붙는다. 그러고 보면 선미님의 사진 한 장은 내 하루에 조용히 스며드는 작은 시 같다.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을 접어 잠시 숨을 고르게 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바느질을 하며 깨닫는다. 삶은 잘려 나간 천 조각 같다. 감상은 그것들을 이어 붙이는 바늘땀이다. 번듯한 무늬가 없어도, 그 땀마다 마음이 닿으면 작업은 작품으로 연결돼서 따뜻해진다. 풍요는 크기에서 오는 게 아니다. 감상의 넓이에서 자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속으로 다짐한다. 하루에 한 번쯤은, 시처럼 보자고. 누군가에게 사진 한 장, 문장 한 줄을 건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그 다정한 시선은 곧 나도 모르게 퍼져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덮어줄 테니까.


삶을 구원하는 건 거창한 사건이 아니다. 잠시 멈추어 듣는 숨, 서랍 속에 접어 두는 오후의 빛, ‘예쁘다’ 하고 건네는 짧은 말. 그 느린 기술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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