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벤치 위의 그림자
퇴근 후, 주차를 위해 늘 찾는 야외 공간.
그곳에서 내 시선에 자주 들어오는 분이 있다.
할머니라 하기엔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또래라 하기엔 세월이 묻어난,
어쩌면 이모님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
그분은 늘 꽃화단 옆 모퉁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왠지 모를 외로움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듯 보였다.
가끔은 아침 출근길에도 눈에 띄었고,
언제나 혼자였다.
낡은 벤치에 앉은 노인,
손끝엔 아무것도 쥐어 있지 않고
시선은 구름 따라 흘러간다.
그 손끝에 머무는 무료함은
외로움일까, 고요일까.
아니면 이름조차 필요 없는,
그분만의 오래된 일상일까.
나는 마음속으로 섣부른 추측을 했다.
가족이 없으신 건 아닐까,
홀로 사는 분이시라면 시간의 여유가 많겠지
취미도, 바쁜 일상도 없으니
그렇게 무료해 보일 수밖에. ‘뭐라도 하시지…’라는
안쓰러움 섞인 참견을 속으로 흘리곤 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을 자주 보면서
그냥 그 모습이 왠지 허무해 보였고
지루해 보였을 뿐인데 이 생각은
내 생각인 거지 그분의 진짜 모습도 마음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 손끝에도
꿈을 내려놓은 흔적이 남고. 생각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이 많을 수도 있겠다. 뭔가 행동으로 손으로 시간을 보내던 지금과 다르게 머릿속으로 굴리는 시간들...
외로워 보였던 그림자 속 그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무료해 보이는 모습에도 , 삶이 건네는
또 다른 얼굴이 있을 수 있을 거라는 것을
그분의 침묵은 단순한 공허가 아니라,
오랜 세월을 살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요한 힘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벤치 위에 비치는 그림자는
쓸쓸함의 흔적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마저 품어내는
그분만의 긴 호흡이었던 건 아닐지
무료해 보였던 시간은
누군가에겐 성찰일 수 있고
외로워 보이던 자리는
누군가에겐 안식의 장소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그분을 통해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본 것은 그분의 외로움이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더 이상 손끝으로 무언가를 만들지 못하고,
머릿속으로만 오래된 기억을 굴리며 하루를 보내는 날들.
그 시간은 안쓰러움과 외로움이 섞인 삶의 얼굴이라
단정 짓지 말아야 한다.
시간을 채우고, 마음을 채우고, 손끝을 채워야만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믿는 내 생각들을 비우며.
섣부른 참견은 버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