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덕후로 살기로 했다.

by 스틸앨리스

어쩌면 나는 좋아지는 일에 흠뻑 빠져드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손바느질이 좋아 10년을 넘게 퀼트를 하고

오래된 물건에 빠져 빈티지 마니아가 됐다.

아마도 책상 위에 처음 올려둔 책 한 권도 사실 책이라기보다 작은 장식품에 가까웠다. 눈에 익은 표지와 얇은 두께는, 그저 공간을 채우는 오브제처럼 무심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옆에 또 다른 책이 자리했고, 그다음 날에는 세 권, 네 권이 세워졌다. 그렇게 책상은 조금씩 책꽂이가 놓였고, 나의 하루 또한 천천히 다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뒤늦게 읽게 된 한 권의 책이 주는 설렘은 오래된 집의 창문을 처음 열었을 때 훅 들어오는 바람과도 같았다. 차갑고도 신선하며, 동시에 낯선 향기를 실은 그 바람은 내 마음 깊숙한 곳을 흔들었다. 늦은 나이에 ‘책 덕후’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도, 어쩌면 새로운 놀잇감을 찾아낸 아이 같았으니 그만한 멋진 이름이 어디 있겠는가~

책장을 넘기는 일상이 어느새 내 하루의 가장 들뜬 순간이 되었고, 때로는 나만의 취향으로 가득한 서재를 하루 종일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곤 했으니 말이다.


책은 늘 새롭지만 동시에 낯익다. 한때는 지나쳐버린 문장이, 지금의 나를 향해 다정히 손짓한다. 글자들이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들이 이어져 사유가 될 때, 나는 그동안 스스로를 가두어왔던 작은 틀을 벗어나고 있음을 분명히 느낀다. 그 해방감은 자유이자 기쁨이고, 무엇보다 내가 여전히 변할 수 있다는 증거 같았다.

분명히 그럴만한 나에게 터닝 포인트가 있었겠지.

살다 보면 나답다고 느낄 때가 있었는데 나답지 않음을 느끼는 요즘도 꽤 마음에 든다. 그 이유는

책 속에서 발견한 세계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세상을 비추는 또 하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 거울은 내 안의 그림자와 빛을 동시에 드러내며,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도록 이끈다. 어쩌면 책을 읽는다는 건, 세상을 배운다기보다 나 자신을 더 투명하게 마주하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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