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이야기

길을 잃는다는 건 나를 발견하는 것

by 스틸앨리스

무작정 버스에 올라탔다. 어딘지 모를 여행이 시작됐다고 믿고 싶었다.

버스는 서울로 향하는 줄만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풍경이 달라졌다. 도로 옆의 건물들이 점점 사라지고, 대신 바람 냄새가 진해졌다.

나는 창문을 열었다. 짠내가 코끝을 스치는 바다였다.

어?'이상하다.’

가야 할 길을 버스가 잘못 들어선 건지, 아니면 내가 진짜 엉뚱한 버스에 올라탄 건지 알 수 없었다.

창밖에는 파도가 무겁게 부서지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건 내가 가야 할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벨을 눌렀다.


버스가 멈추자마자 밖으로 뛰쳐나왔다.

눈에 펼쳐진 그곳은 바닷가 마을이었다.

낡은 간판이 덜컥거렸고, 한쪽에는 바다 비린내가 감도는 오래된 포구가 있었다.

어딘가에서 갈매기가 울었다.

그 울음이 이상하게도 오래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목소리와 겹쳐졌다. 어릴 적 외가인 서산 앞바다에 온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길을 잃을 때마다 하늘을 봐라. 길은 위에도 있으니까.” 무슨 소리야~ 쓸데없는 말 같은 게

내 마음속 진동으로 울리면서 머리와 마음이

분리되듯 불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지나갔지만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내가 말을 걸어도 그들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혹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곳에 없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이곳은 어디일까.’

입 안에서 말이 몇 번이고 맴돌았다.


그러다 마주친 아이들이 있었다.

작은 손에 불투명한 구슬을 쥐고 있는 아이들.

나는 숨을 고르고 물었다.

“얘들아, 여기가 어디니?”

아이들은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마치 오래전부터 대답을 준비해 둔 사람처럼 동시에 말했다.

“향도요.”

그 말과 함께 바람이 스쳐갔다.

그리고 아이들은 물속으로 녹듯 사라졌다.


눈을 떴다. 방 안은 아직 어둠으로 가득했고

창밖에서 빗소리로 커튼 사이로 제법 쌀쌀한 바람이 스며들고 있었다.

꿈이었다. 그러나 너무 생생했다.

나는 서랍 위의 메모지를 꺼내 단어 하나를 썼다.

향도. 처음 듣는 단어였다.


그 뜻을 찾아보았다.

길을 안내하다.

길을 인도하는 사람.


문득 마음이 서늘해졌다.

요즘의 나는 길을 잃은 사람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고, 무엇을 믿어야 할지도 모르는 채 하루를 반복했다.

그런데 꿈은 그 불안을 비추는 거울 같았다.

길을 잃은 자에게, ‘향도’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같은

꿈.


나는 생각했다.

길을 안내하는 사람은, 어쩌면 외부의 누군가가 아닐 텐데. 그건 내 안의 낡은 기억, 혹은 아주 오래전 나를 이끌던 ‘삶의 본능’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참을 생가게 빠져들었다.


세상은 언제나 사람을 길에서 밀어내지만,

결국 다시 길 위로 세우는 건 나 자신이라는 걸

그 새벽, 아주 천천히, 느끼고 어루만져본다.



“길을 잃는다는 건, 나를 다시 발견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지 길은 바깥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을.”


그날 이후로 며칠 동안, 나는 계속 그 바다를 떠올렸다.

꿈에서 본 마을, 바람, 그리고 ‘향도’라는 이름.

낯선 향기가 자꾸 기억을 건드렸다.

그건 분명 처음 가보는 곳이었지만, 어쩐지 오래전에 한 번쯤 다녀온 기시감이 들었다.


“길을 잃은 사람은, 사실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요 며칠간의 혼란이, 설명되지 않는 평온으로 녹아내렸다. 그 생경한 경험이 꿈이지만 너무 선명해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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