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ug 25. 2015

#101 사행습인운(思行習人運), 습관이 운명을 바꾼다

400년 간 읽혀온 개운(改運)의 비결, 요범사훈(了凡四訓)

원료범은 중국 명나라의 관료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왔던 명나라 원군의 총대장이 이여송이었는데, 원료범은 그 이여송을 보좌하여 조선 땅을 밟은 적도 있는 인물이다. 


그의 본명은 원황(袁黃)이고,  '요범(了凡)'은 호다. 스스로 지었다.  옛사람들은 호를 지을 때 그 안에 깊은 의미를 담았다.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의 모든 모습을 호에 집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범(了凡)은 '마칠 료'에 '보통 범' 자를 쓴다. 보통 사람의 삶은 끝내겠다는 뜻이다. 왜 원료범은 자신의 호를 그렇게 지었을까. 


그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꾼 사람이다. 



원황이 청년이던 시절, 공선생이란 용한 점쟁이가 그의 미래를 예측한 일이 있다. 과거에 언제 합격할 것이며, 몇 등으로 합격할 것이고, 몇 살에 봉급은 얼마에 이를 것이며, 승진은 어디까지 할 것이며 인생에 부족함이 없으나 다만 슬하에 자식이 없겠다는 등 아주 세세한 예언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그 모든 것이 전부 맞아 떨어졌다. 몇 년째 자신의 인생이 점쟁이의 혀끝에서 벗어남이 없자 원황은 모든 욕심을 버린 사람이 되었다. 


'어차피, 운명대로 가기 마련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묵은 절에서 우연히 스님을 한 분 만나게 된다. 운곡선사. 당대의 이름 높은 고승이었다. 


운곡선사는 젊은 청년의 초탈한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리고 어떻게 젊은 나이에 그토록 빨리 마음을 비운 경지에 이르렀는지를 물었다. 원황은 차분하게 자신이 살아온 내력을 이야기했다. 


'모든 것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가는 것이니 아등바등 애 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자 운곡선사는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이라면서 크게 화를 내고 돌아 앉는다. 화들짝 놀란 원황이 무슨 말씀이신지, 하며 가르침을 청했다. 운곡선사는 

'운명이란 것이 있고 그것을 바꿀 수 없다면 선인(先人)들이 평생 수행 정진할 까닭이 없지 않은가!' 

라며 원황에게 '운명을 고치는 법'을 가르친다. 그날 밤 원황은 큰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요범(了凡)으로 고쳐 '운명에 끌려가는 보통 사람의 삶을 끝내버리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다짐은 이루어졌다. 그는 공선생이 말한 승진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어 높은 관직에 올랐고, 부와 명예에 부족함이 없었다. 대를 잇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 역시 힘을 잃어 뒤늦게 귀한 아들 하나를 얻었다. 못 얻을 것이라 생각했던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쁘겠는가. 원료범은 자신이 알고 있는 운명에 대한 모든 가르침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여 아들에게 남긴다. 


원료범이 지은 네 가지 교훈, 요범사훈(了凡四訓)이다.

임진왜란 이후 지금까지 400년 동안 이 땅에서 운명을 고치는 책, 즉 개운서(改運書)로 널리 읽혀온 명저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습관에 대한 책들이 종종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습관의 중요성을 재삼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존 드라이든의 말처럼 한 번 우리가 습관을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부터는 습관이 우리를 만들기 때문이다. 습관을 왜 고치려 하는가. 사행습인운(思行習人運), 결국 운명을 바꾸기 위함이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인생이 바뀌고
인생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하여, 여기서 나는 스스로 운명을 바꿔낸 원료범 선생의 가르침, '습관을 고치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가 운명을 바꾼 비결도 결국은 전력을 다해 일상의 습관을 바꾼 것이었다. 


재미있는 점이 있다. 원료범 선생은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습관을 바꾸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근기'란 원래 불가(佛家)의 말이다. '뿌리 근(根)' 자에 '그릇 기(器)'나 '베틀 기(機)'자를 쓴다. 뿌리가 되는 그릇, 혹은 뿌리의 작용이라고 직역할 수 있는데, 쉽게 쓰이는 말로 '사람의 그릇' 정도 이해하면 된다.


사람마다 이해력, 습득력, 포용력, 실행력 등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배워도 그 활용함은 가지각색. 그릇이 큰 사람은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백을 실행해내기도 하지만, 그릇이 작은 사람은 백을 가르치면 열 가지 잡생각을 품고, 한 가지를 겨우 실천할까 말 까다.


따라서 배우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각각 다른 교수법이 필요하다. 그 세 가지 수준을 일러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라 한다. 운명을 바꾸는 책, <요범사훈>에서 근기에 따라 설명한 '습관을 고치는 방법'이다. 



첫째,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켜라. 


이것은 하근기를 위한 방법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지극히 보통 사람들을 위한 방책이라는 이야기다. 우선은 고치고 싶은 습관의 목록을 종이와 펜으로 '실제' 적어넣는 행동이 중요하다. 


저녁 8시 이후에는 야식을 하지 않겠다.

소주 1병 이상 마시지 않겠다. 

하루에 시 한 편을 외우겠다.

새벽 다섯 시에 기상하겠다.

매일 3km를 달리겠다.


그런 것들이다. 고치고 싶은 습관의 목록을 적고, 지키면 된다. 스스로 계(戒)를 만들고, 스스로 그 계를 받는다.

한 번 적어넣은 리스트는 반드시 지킨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그저 지켜야 하는  것뿐이라면 특별히 비결이라 부를만한 것이 없으되, 이 방법이 신통력을 갖는 부분은 '그 목록을 글로 적는다'는데 있다. 


'살을 빼야지.'라는 머리 속의 생각을 "OOkg까지 체중을 감량한다."고 글로 적으면 보다 강한 에너지가 깃들기 시작한다.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이 '목표를 글로 써라.'라고 가르치는 데는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심리학 책 역시 문제를 글로 적는 행동만으로 잠재의식 속에서 그 문제에 대한 인지가 향상된다고 말한다. 


론다 번의 <시크릿>에는 "Though become thing"이란 깔끔한 말이 나온다.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은 생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가 현실화되어 결과물로 나타남을 의미한다. 맨 처음 Thought로 존재하는 것들이 여러 단계를 거쳐 Thing이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할 첫 단계의 Thing은 종이에 적은 글인 것이다. 


자세히  적을수록 좋다. 신은 디테일함 속에 깃든다고, 명문화한 리스트는 작은 것일수록 구속성이 강하다. "야식을 하지 않는다."보다 "저녁 8시 이후에는 물을 제외한 일체의 음식을 먹지 않는다."가 더 효과적이다. "매일 30분 운동을 한다."도 좋지만, "매일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맨손 스쿼트와 조깅을 30분 한다."가 더 강력하며, "윗몸 일으키기 100개, 팔 굽혀 펴기 100개, 스쿼트 100개, 신림역까지 뛰어갔다 온다."라고 썼을 때 더 열심히 실행하게 될 것이다.


고치고 싶은 습관 명세서를 자세하게 작성해보자. 미켈란젤로라도 도끼로는 다빈치 상을 조각할 수 없고, 타이거 우즈라도 드라이버로는 퍼팅할 수 없다. 



둘째, 인과를 깊이 생각해보라.


이것은 중근기를 위한 방법이다. 나쁜 습관을 그대로 유지했을 때 어떤 인과가 따를 것인지, 힘써서 이 습관을 고친다면 어떤 이익이 있을 것인지를 곰곰이 따져보라는 가르침이다.


몸무게가 100kg 가까이 나가는 남자가 있다고 하자. 체중을 줄이고 싶어서 가만히 살펴보니, 자신이 항상 밤에 폭식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업의 특성상 야근과 회식이 많은데, 그럴 때마다 안주를 배가 꽉 차도록 먹었다. 회식 때마다 그러니 어쩌다가 일찍 귀가한 날도 밤 시간만 되면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야식을 시켜 먹었다. 그래서 체중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야식 습관을 끊기로 결심했다. 


이 남자에게 원료범은 야식의 인과를 깊이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야식을 이어간다면, 몸무게는 100kg이 넘어갈 것이다. 뒤룩뒤룩 살이 찐 몸으로는 지금처럼 40인치짜리 펑퍼짐한 정장 바지만 입어야 할 테고, 발목이 드러나는 댄디한 스타일 같은 것은 평생 불가능이다. 100kg이 넘는 가을 알래스카 곰 같은 자기를 좋아할 여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살이 찐 이후 몇 년간은 제대로 연애를 못해 보았다. 직장 동료나 거래처 여직원들은 계단만 올라가도 증기 기관차처럼 가뿐 숨을 내쉬는 내게 한심한 눈길을 보낸다. 소개팅은 어떨까. 이 몸으로는 아무래도 답이 없다. 그렇다면 평생 이런 식으로 쓸쓸하게 치킨이나 시켜 먹으면서 뚱뚱한 돼지로 늙어갈 도리밖에 없다. 


이것이 원료범이 권한 인과 관계에 대한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다짐'이나 '반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반드시 살을 빼야지."라고 결의에 찬 중얼거림을 반복하거나 프레파라트처럼 약한 멘탈을 통렬히 반성하는 일도 의미가 있지만, 가르침의 핵심은 그저 다큐멘터리를 보듯 인과 관계를 담담하게, 그리고 깊이 관찰하는 것이다.


습관이 가져오는 과보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공부를 안 하면 대학에 떨어지는 과보가 따를 텐데, 대학에 떨어진 내년의 내 모습은 어떨 것인지 말이다. 노량진의 재수종합반에서 열 시간 수업을 듣고, 슬리퍼 차림으로 학원 골목길에서 2500원짜리 컵밥을 먹는 모습을 말하는 거다. 


애써 억지로 경각심을 불러 일으킬 필요도 없다. 제대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깨달음을 얻는 여덟 가지 바른 길, 팔정도(八正道)에서 첫 번째는 정견(正見). 바르게 보기다. 


셋째, 마음을 태양처럼 밝게 하라. 


이것은 상근기를 위한 방법이다. 옛사람들은 마음을 태양처럼 밝게 하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本心本太陽昻明" - 천부경). 마음만 밝은 빛으로 가득하다면 잡다한 문제들은 모조리 사라진다.


겨울철 여기저기 쌓여있는 낡고 지저분한 눈 무더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의 신발 자국에 흙탕물과 쓰레기가 뒤섞여 그야말로 보기 싫은 시커먼 눈 무더기다. 치우려 해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꽝꽝 얼어 떼어 내기도  힘들뿐더러, 이쪽 눈을 치운다 해도 겨우 저쪽에 옮겨놓을 뿐이다. 하나씩 하나씩 제거하는 일이 불가능에 가깝다. 아직 겨울인 동안은 말이다. 


이 눈이 바로 습관이다. 하나하나 제거하기 힘들 만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나쁜 습관들이다. 이 습관들을 단박에 제거하고 싶다면, 그리고 혹여 자신이 상근기에 속한다는 뿌리 깊은 자부심이 있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마음을 태양빛으로 가득 채워보자. 눈은, 나쁜 습관은 빛을 비추면 어둠이 사라지듯 저절로 없어져 버릴 테니 말이다. 


태양의 비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마다 해석은 다를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괴테와 코엘료의 저 멋진 말들이 우리의 가슴을 꽉 채운 상태와 비슷하지 않겠느냐고. 


"시작과 창조의 모든 행동에는 한 가지 기본적인 진리가 있다. 그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순간  그때부터 하늘도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자아의 신화를 사는 자는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하나,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

세 가지 방법을 말했다. 


리스트를 작성하고 지켜라.

인과를 깊이 생각해보라.

마음을 태양처럼 밝게 하라. 


사람이란 비슷한 존재인가 보다. 명나라 시대의 가르침이, 400년이 지난 지금도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다. 유효하다. 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은 가득하지만,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바꾸어 낸 사람은 별로 없다.


원료범은 자기 자신을 바꾼 사람이다. 그의 뜻대로 운명에 끌려다니는 보통 사람의 삶을 끝냈고, 역사에도 이름을 남겼으며, <요범사훈>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변화시켰다. 


400년 동안 내려온 그의 가르침에서 우리 모두 '요범'의 길을 찾아보면 어떨까.

작가의 이전글 #100 최고의 학생이 무의식적으로 택하는 학습의 유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