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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26. 2015

#102 롤러코스터를 맛있게 타는 요령에 대하여

두려움에 놀이 기구를 멀리해온 당신이라면 지금 바로 클릭

3주간의 미국 출장에서 확실하게 얻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스킬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술'이다. 영어회화 능력도 아니요, 글로벌 감각도 아니며, 하다못해 미국으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도 아닌 중에 기껏해야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술'을 배워왔다니, 사람들이 들으면 '미국 다녀왔다면서 고작...' 하며 자못 혀를 끌끌 찰 노릇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어찌하랴. 삶의 진실에는 이런 것도 있는 게다.


400만 원짜리 영어캠프는 롤러코스터 타는 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여기서 그 이야기를 풀어보자.


어찌된 영문이냐  궁금해하시는 분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별 것 아니다. 자주 갔기 때문이다. 캠프 숙소 인근에 'Six Flag Magic  Mountain'이라고 최정상급의 하드코어 익스트림 놀이공원이 있었다. 집에서 단 15분 거리. 강남에서 잠실 롯데월드 갈 거리도 안 되는 셈이다. 숙소도 가깝겠다, 아이들은 놀이공원이라면 사족을 못쓰겠다, 1인당 몇 만원만 더 내면 1회 입장권에서 1년 시즌권으로 업그레이드도 할 수 있겠다, 하여 현지의 원장 선생님이 통 크게 결심을 하셨다.


"너희들 말 잘 들으면 시즌권을 끊어서 저녁 시간 일정 없는 날마다 데려가 주마."


그 이름도 찬란한 시즌권이 눈 앞에서 번쩍거렸다. 아이들은 얼쑤덜쑤 환호작약하여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고, SNS로 이 소식을 접한 학생 어머님들은 "아이들 계 탔네요!"라고 기뻐했으며, 원장 선생님은 캠프 참여자들의 만족도 올라가는 소리에 예정이 없던 초과 지출에도 싱글벙글하셨다.


오직 나뿐이었다. 울고 싶은 마음이면서도 표정만은 '참 잘됐네!' 하며 웃어야 했던 이는. 


나는 사실 롤러코스터 앞에 새앙쥐처럼 쪼그라드는 남자였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단체로 롯데월드를 간 적이 있다. 운이 좋게도 그 날은 평일이었고, 대박 운이 좋게도 우리 말고 아무도 없었다. 나는 날갯짓을 갓 익힌 새처럼 행복하게 이런저런 놀이기구를 점령하고 다녔다. 


그 시절 '자이로드롭'이라고, 높이 치솟았다가 수직으로 자유 낙하하는 기구가 폭발적인 인기였다.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에 우리는 출구와 입구를 뱀이 제 꼬리를 물듯 왕복하며 그 자리에서 내리 세 번을 탔다. 하늘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석촌 호수는 한 폭의 그림 같았고, 나는 당대 최고의 놀이 기구 앞에서 싸나이로 우뚝 섰었다.


그때 이후 놀이공원에 발을 끊은지 무려 10년이 지났다. 고시생 형편에 놀이공원이  사치기도했고, 여자친구가 없으니 구태여 갈 이유가 없기도 했다. 아무튼 워터파크니 테마파크니 철따라 북새통을 이룬다는 판타스틱한 장소들은 강산이 바뀌는 동안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으로서 저는 저대로 나는 나대로 나이를 먹어갔다.


서른세 살 즈음이었다. 지인을 통해 서울랜드 빅 4 이용권을 염가로 구했다. 아마 어차피 텅텅 빌 시즌이라 싸게 나온 물건이었을게다. 테마 파크가 아니라 동네 파크에 마실 나가는 비용 밖에 되지 않았기에 큰 고민 없이 '질렀다.' 


10년 만에, 놀이 공원 입장권을 말이다.



신체 나이에 대한 오판이었을까? 

스스로를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으로 착각한 걸까?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 이상 놀이 기구는 나를 싸나이로 만들어주는 행복한 물건이 아니었다. 차라리 유격훈련장에서 본 통나무 장애물이 안락하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그것은 놀이 기구의 고전, 바이킹에 올라 안전 바를 허벅지 위에 고정시키는 순간 급발진 사고처럼 들이 닥친 깨달음이었다.


아, 이게 아닌데.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허벅지는 말근육마냥 단단하게 긴장했다. 위이잉- 하고 도르래가 움직여, 부우웅- 하고 내 몸이 솟구칠 때마다 "잘못  탔다."라고 생각했다. 바이킹의 궤적 그 어디에도 설렘이나 즐거움은 없었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랫배 언저리에 고압 전류가 흐르는 듯한 쩌릿 거림과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후회뿐. 나는 하늘 높이 올라서 저 아래에 손 흔드는 인파를 바라볼 때마다 맷돌을 으깨듯 어금니를 다물고 울먹거렸다.


"이 딴 거 다시는 타나 봐라."



곰곰이 생각하건대, 고통의 상당 부분은 '후회'라는 일련의 감정이었다. 


여기서 안전바가 풀리면 나는 떨어진다. 떨어지면 두말 않고 죽는다. 이까짓 것을 타다가 죽게 될 줄이야. 이런 가정법 미래 시제 상상이 내 머릿속에서 프리웨이를 달리는 레이싱카처럼 고속 질주했다. 그 상상이 육체적인 고통을 증폭시키는 효과는 대단했다. 나는 비명만 지르지 않았지, 이미 공황 비슷한 상태였다.


그때 결론 내린 바는 이랬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놀이 기구가 주는 자극은 우리 신체에 설렘이 아니라 고통으로 작용하는 거라고. 그래서 다른 많은 것들이 그러하듯 놀이 기구 역시 탈 수 있을 나이에 많이 타야 하며 비록 내가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확인함이 서글픈 일이기는 하나, 앞으로 절대 다시는 이런 녀석들을 타지 않을 거라고. 그것이 불과 2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서른다섯의 내가 젠장할 Six Flag 빌어먹을 Magic Mountain 앞에 서게 될 줄이야. 물론 안 타면 되지 않느냐고 하실 분도 계실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타는 동안 인솔자는 짐이나 지키고 있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맞다. 그럴 수도 있다. 

내가 데리고 간 아이들이 순하고 여린 초등학교 여학생들 뿐이었다면.


그러나 '선생님도 당연히 같이 타겠지. 후후후' 하고 하이에나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중학교 남학생들. 남자들의 세계에 원래 존재했는지는 알 수 없다만, 이번 캠프에는 확실히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야 남자지 남자.


그러니 인솔자인 내가 '선생님은 좀 쉴게. 호호호' 하고 빠지면 금세 눈치를 채고 "선생님 무서워서 빠져요?" 하고 돌직구가 날아올 것은 당연지사. 그러니 나는 적어도 '아이들이 타는 만큼은' '아이들이 즐기는 정도로' 즐겨야 할 미션이 있는 셈이었다.



The First Day of Magic Mountain


첫째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해가 슬금슬금 기어들어갈 무렵에 놀이 공원을 향했다. 원장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이르기를, 시간이 충분하니 난이도가 낮은 롤러코스터부터 차례대로 인도할 예정이며, 무서우면 언제든 타지 않아도 좋다고 하셨다. 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만, 나에게는 나만의 미션이 있는 것을.


하여 정말 쉬운 것부터 탔다. 회전 목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했던 것 같다. "우- 우- 요즘 회전목마 누가 타요?" 하고 손을 내젓는 아이들을, 원장 선생님은 "너네들 디즈니 랜드에서는 이것도 한 시간 기다려야 타!" 라며 등을 떠밀어 보냈다. 나는 가슴을 쓸며 "얘들아 얼른 타자!" 하고 의기양양하게 백마의 말갈기를 움켜쥐었다. 하필 위아래로도 움직이지 않는 고정된 백마 녀석이긴 했지만.


그리고 바이킹. 다행스럽게도 그곳의 바이킹은 꽤나 작았다. "얘들아 이건 롯데월드 절반 크기도 안되네." 라며 한껏 여유를 부린 나는 사진을 찍는다는 핑계로 배의 정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선생님! 거긴 재미 하나도  없어요!"라고 애써 가르쳐주는 아이들의 친절한 조언이 비수마냥 뒤통수에 박혔다. 그래도 바이킹은 바이킹. 여전히 아랫배 언저리에 전류가  찌르르했지만, 품위를 잃지 않고 그럭저럭 견뎌냈다.


"얘들아 우리 시원한 물 타러 가자!" 


카약 같은 보트를 타고 물 위를 둥게 둥게 다니는 Jet Stream은 만만해 보였다. 마지막에 살짝 떨어지는 클라이맥스가 있긴 했지만, 그래 봤자 보트다. 안전 바도 없는데 떨어져봤자 얼마나 떨어지랴. 속셈도 모르는 아이들은 '시원한 물'에 그저 좋다고 환호했다. 섭씨 38도의 더운 날씨가 천군만마였다.


'운이 좋게도' 거기는 대기 줄이 길었다. 더우니까 그런 거라고, 시원한 물을 타니 얼마나 좋겠느냐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어가며 줄을 지켰다. 줄은 민달팽이마냥 느리게 전진하고, 이것만 타고 나면 "선생님은 힘드니까 좀 쉴게." 할 수도 있을 거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리고 탑승 직전, 기적적으로 놀이기구가 고장 나서 멈춰버렸다. 아이들은 억울해 발을 동동 굴렀고, 나는 억울하지만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첫 날은 그렇게 무사히 지나갔다.



The Second Day of Magic Mountain


역시 수업을 마친 저녁 무렵이었다.  지난번에 가장 쉬운 놀이 기구 몇 개는 마스터했으니 이번에는 바로 그것보다 상위의 롤러코스터로 진입했다.


1970년대에 나왔다는 매직 마운틴 최초의 롤러코스터, Gold Rusher를 탔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궤도를 가리키면서 "와, 진짜 작게 돈다."는 둥 "옛날 롤러코스터라 느리게 달리나 봐."는 둥 저 정도 놀이기구를 타는 일은 풍선껌의 단물만 빼먹는 일보다 쉬운 거라는 뉘앙스의 말을 계속 쏟아냈다. 하지만 막상 앉아보니 웬걸. 타고 나서 깨달았다.


롤러코스터는 롤러코스터요, 360도는 아무리 작더라도 360도다. 젠장.


출구를  나오자마자 Gold Rusher보다 한 단계 위의 롤러코스터로 바로 이동했다. Revolution인지 뭔지 그랬던 것 같다. 눈물 나게도 평일 저녁이라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다음에 또 한 단계 위의 롤러코스터가 있었다. 이제는 그깟 이름 따위는 조금도 중요하지 않았다. 매번 깨닫노니 롤러코스터는 롤러코스터요, 360도는 아무리 작더라도 360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은 "응응 재미있어 보여." 하며 흥분상태인 아이들에게 맞장구를 쳐주다가, 철컹철컹 롤러코스터가 움직이는 순간 안전 바를 힘껏 끌어안고 "여기서 안전바가 풀리면 나는 떨어진다. 떨어지면 두말 않고 죽는다. 이까짓 것을 타다가 죽게 될 줄이야." 하고 고통스러운 후회를 시작하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진짜 고난이도의 롤러코스터를 마주할 시간이 왔다. 

Riddler's Revenge.


이런 녀석이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상상한 적 없는 그런 류의 롤러코스터였다. 다름 아닌, '서서 타는' 롤러코스터. 초록색 열차 위에 사람들이 4열 종대로 촘촘하게 섰다. 꼭 미이라의 행렬 같았다. 그 상태로 철컹철컹 궤도를 올라가 급강하 으악에, 360도 으아악에, 트위스트 으아아아악에, 혼을 쏙 빼놓은 채로 사람들을 돌려 보냈다.


원장 선생님은 Riddler's Revenge의 입구에서 "다 데리고 타고 오세요." 라며 내게 아이들을 맡겼다. 속 모르는 아이들은 참새처럼 포르르 뛰어 갔고, 나는 그 뒤를 슬금슬금 기어 갔다. 내가 저걸 탈 수 있을까. 아무리 봐도 힘들 것 같았다. 거꾸로 매달리면 심장에 무리도 오겠지. 안전 사고가 아니어도 내 장기에 문제가 생길 거야. 똥 마려운 푸들처럼 쭈뼛거리던 나는 맨 뒤에 서있는 아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선생님은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서서 타면 핸드폰이 주머니에서 빠질 것 같아."



The Last Day of Magic Mountain


비겁한 변명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드디어 마지막 매직 마운틴 등반일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아침 개장 시간부터 문 닫을 때 까지. 하루 종일 이곳에 머물기로 원래 계획된 날이기 때문이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섭씨 40도가 넘는 날씨 탓인지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한껏 기다려봤자 2,30분 안팎. 태양은 창공에서 눈부시게 빛났고, 눈부신 결전의 순간도 시시각각 다가왔다. 그동안 미루어 왔던 온갖 놀이 기구들과 조우할 시간.


15초 만에 아파트 40층, 120m의 높이로 수직 상승하는 Super Man.


앉는 것이 아니라 엎드려서 날아가는 Tatsu(たつ, 일어서다).


터미네이터 영화에도 나온 '나무' 롤러코스터 Apocalypse(묵시록).


어마어마하게 높이 올라가 어마어마하게 오래 떨어진다는 Goliath(골리앗).


올해 2015년에 갓 선보인 최신 기술의 하이브리드 롤러코스터 Colossus(콜로서스).


그리고 세계에서 360도 회전 반경이 가장 크다는 Full Throttle(최고 속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두 가지다.


첫째, 나는 끝내 저 기구들을 모두 타고야 말았다.
둘째, 그 와중에 두려움 없이 롤러코스터 타는 요령을 익혔다.


자아, 롤러코스터는 어떻게 타야 할까?


물론 롤러코스터를 즐기는 노하우는 그것을 타는 사람 수만큼 다양할게다. 여기서 '나의 방법이  최고다'라고 말하고 싶은 의도는, 대관람차 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개미 등짝만큼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아직 롤러코스터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 두려움과 설렘이 한 그릇에 부어버린 짜장과 짬뽕처럼 뒤섞여 공황에 빠지신 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 싶은 마음이 심장을 간질간질 간지럽혀 견딜 수 없는 분들에게 혹여 도움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에 노하우를 전하는  것뿐이다.


한계는 있다.


'롤러코스터 타는 기술'은 자전거 타는 법이나 스마트 기기 친화 능력과 같이 암묵지(暗默知)에 속하는 영역이라 몸으로 체득은 할 수 있되 드러내어 전해줄 수는 없다. 내가 여기서 이 암묵지를 형식지(形式知)화 하여 매뉴얼로서 전달해준다 하여도 습득은 오로지 여러분 독자들의 몫인 것이다. 몇 번이나 타면 익숙해지느냐, 어떤 롤러코스터에 적용되느냐, 누구나 가능한 이야기냐, 네가 책임질 수 있느냐 등등의 날 선 질문과 비난에도 일체의 애프터 서비스를 해줄 수 없는 점 양해하여 주시길. 나는 롤러코스터 전문가가 아니라 롤러코스터 앞에서 혈압 수치를 헤어려야 하는 배 나온  서른다섯 아저씨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이라는 높고도 확고한 대리석 연단 위에 두 다리로 굳게 서서 말씀드리노니, 혹여 롤러코스터 타실 일이 있거든 기억해두었다가 적용해 보시라. 혹시 모르지 않는가. 나중에 LA 지역에 영어캠프 인솔자로 가게 될 일이 있을지.



Level 1. 일단 눈부터 질끈 감자! 모드


이건 사람의 본능이다. 공이 날아오건, 귀신의 집에 들어가건, 비상 사태와 맞딱뜨리면 무책임한 시신경계는 일단 현실을 회피하려 한다. 눈을 질끈 감는 것이다. 롤러코스터도 그렇다. 나 역시 마지막 날의 첫 번째 놀이기구 슈퍼맨을 탈 때, 120m 높이에서 아래를 보는 순간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저절로 그리 된게다. 대부분의 놀이기구라야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는 것이니 '눈 깜짝할 사이'에 차라리 '눈을 깜고'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심적으로는 공황 상태에 발을 디뎠다가 빠져나온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거나 외관상 놀이기구는 무사히 클리어 한 셈이다. 딱 한 가지 부족한 점만 빼고.


그럴 거면 놀이기구를 왜 타느냐.


분명히 이야기할 수 있는데, 우리는 눈을 뜰 때 놀이 기구에서 훨씬 멋진 경험을 얻는다. 많은 사람들이 해 뜨는 모습을 제대로 보기 위해 새벽 산에 오르고, 탁 트인 경관을 누리기 위해 수십억짜리 펜트하우스를 사며, 좀 더 빠른 스피드를 느껴보고 싶어서 과속 카메라를 감수하고도 엑셀레이터를 밟지 않는가. 롤러코스터도 똑같다. 설계자들은 애초에 놀이기구를 만들 때, 탑승자들이 "보기에  좋으시더라"라는 말을 하기를 기대한다. 눈을 감고 타는 것이 낫다면 깜깜한 실내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전동의자를 설치하는 것이 더 싸게 먹힐게다.


그러니 지금까지 늘 눈을 감고 타셨다면, 한 번 굳게 마음을 먹고 다음 레벨로 올라가 보시기를 권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Level 2. 즐기자 즐겨! 모드


원장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얘들아, 즐기도록 노력해 봐." 


그래서 나도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나부터 즐겨보는 거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는 심리학 연구 결과처럼, 나 역시 애써 즐기기로 마음을 먹고 콜로서스에 올랐다. 즐기도록 노력하는 방법은 별 것이 없다. 록 콘서트에 간 극성팬처럼 계속 환호하고 열정적으로 소리 지르는  것뿐.


오 예!
꺄아아아!
와아!! 간다 간다!!


나는 온갖 소리를 질러 댔다.  환호성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기합과 비슷했는데, 다들  정신없으니 그 차이를 눈치챌 리는 만무. 떨어지고, 꺾고, 360도 돌 때마다, 그러니까 원래는 무서워서 눈을 감아야 할 딱 그 순간마다 의도적으로 기합을 냈다. 롤러코스터의 포인트마다 조건 반사하는 강아지처럼 꽥꽥거리다 보니 롤러코스터는 금세 끝났다. '이렇게 하니  아무것도 아니군' 하고 씨익 웃었다. 출구를 나오면서 다들 나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선생님 엄청 좋아하시네요."


아이구 세상에. 그럴 리가.


그래도 확실한 점은 눈을 감는 것보다는 나았다는 사실. 눈을 감고 타는 사람은 비록 몇 번을 타더라도 '이제 저건 하나도 안  무서워'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즐기자 즐겨' 모드로 놀이기구를 클리어 하니 또 타라면 탈 수는 있겠구나 싶었다. 다만 타고 나더라도 뭐랄까, 군대에서 유격 코스를 끝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두려움은 없다. 하지만 재미도 없었다.



the Final Level. 명상 모드


Tatsu를 탈 때였다.


다른 롤러코스터처럼 앉은 상태에서 시작하되, 바로 엉덩이 부분이 뒤로 들리면서 엎드린 자세가 되는 놀이기구였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기분을 느끼라고 만들었을 것이다. 말은 안 했지만 사실 이것은 내가 극도로 싫어하는 자세였다. 


안전 바에 의지해 공중을 날아다닌다? 말이야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몇십 미터 상공에 엎드린 채로 매달린 격 아닌가. "여기서 안전 바가 풀리면 나는 떨어진다. 떨어지면 두말 않고..." 하는 후회를 하기에 더할 나위없이 적합한 상황이다. 만에 하나 '툭'하고 안전 바가 끊기면 엎드린 그대로 으아아아...


방법이 없었다. 혹시 사고가 생겼을 때 두 팔로 안전 바를 꽉 끌어안는다 해도 내 몸무게를 버틸 수 있는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종의 '포기'를 했다. 


그래, 여기서는 어차피 살 수 없어. 하여 안전 바를 잡은 두 손을 놓았다. 다리의 힘도 풀었다. '그냥 어떻게 되나 잘 보기나 하지 뭐.' 애써 후회를 버렸다. 철컹철컹. 롤러코스터가 나를 매달고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Tatsu에서 나는 젓가락 끄트머리로 천국의 맛을 콩알만큼 찍어먹었던 것이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지만, 하늘을 부우웅 날던 어디쯤에서 '공군 사관학교 나온 파일럿들이 이런 느낌이려나' 하고 차분하게 혼잣말을 했다. 이상한 경험이었다. 물론 우리는 평소에 셀 수없이 많은 혼잣말을 한다. 그러나 롤러코스터 탑승자의 뇌는 일반적으로 공포와 감정을 관장하는 변연계가 장악하기 마련이다. 그 틈을 비집고 '이성적 사고'를 하는 대뇌피질이 아주 잠깐 제 목소리를 낸 순간이니 특별한 느낌이 들  수밖에.


신기하네.

그 순간을 곱씹으면서 다음 롤러코스터로 이동했다.



Goliath의 차례였다. 일반적으로 롤러코스터에서 경험하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출발과 동시에 철컹철컹 언덕을 올라갔다가 내리막으로 급강하를 하는 부분이다. 다들 그 지점을 100m 달리기 스타트라인에 선 육상선수처럼 긴장하며 기다리기 마련이다. 정점에서 잠시 멈추는  듯하다가 곧장 '슈아아악-' 하는 것이 롤러코스터의 핵심 아닌가. 사람들은 동시에 '으아아악-'을 외치고 말이다. 그런데 Goliath을 먼저 타 본 아이들이 이렇게 말했다.


"골리앗은요, 으아아악- 했는데 떨어지는 게 안 끝나요."


어마어마하게 오래 떨어진다는 Goliath이었다. 비명을 다 내질러서 이미 양쪽 허파 안에 남은 숨이 없는데도 계속 떨어진단다. 겪어보지 않고는 모른다며 한 번 타 본 녀석들이 떠들어대는 통에, 처음 타는 아이들은 소아과 병동의 손님처럼  불안해했다. 나는 그 불안감을 부처님 미소로 감추었지만 말이다.


우리 차례였다. 안전바에 고정된 몸을 이끌고 열차가 철컹철컹 올라가고 있었다. Six Flag Magic Mountain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일 정도가 되었는데도 열차는 여전히 철컹철컹 이었다. 꽤나 높게 올라가네. 나는 혼잣말을 했다. 맞다. 혼잣말. 정점을 향해 움직이면서 생각했다. 아까처럼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  온몸의 힘을 풀고, 어떻게 되나 잘 보자.


드디어 정점이었다. 

열차는 멈췄다. 

1, 2, 3... 슈아아악-.



2분쯤 뒤 우리가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왔을 때, 흥분으로 왁자지껄 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코스모스의 꽃잎을 매만지는 가느다란 가을 바람처럼, 아주 엷은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긴 내리막길도 오래 느껴지지 않았고, 용틀임처럼 거대한 회전에도 겁먹지 않았다. 그저 고급 스포츠카 조수석에 앉은 듯이 안정감 속에서 또렷함과 상쾌함만 있을 뿐이었다. 


이완과 집중. 내가 오늘, 무언가 알아낸 것 같았다.


요컨대 이런 요령이었다.


1.  온몸을 이완한다 - 주사를 맞을 때도 힘을 주면 아프다
2. 눈을 잘 뜨고 본다 - 시각에 집중하면, 변연계(공포)가 멈춘다
3. 몸은 진행 방향을 향하듯 하며  - 자전거를 타는 요령과 같다
4. 입을 다물고 호흡은 편안하게 -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처럼, 현재의 감각에 집중할 것.


그랬다. 


명상을 하는 느낌이랄까.


힘을 빼고 잘 보는 것이 핵심이었다. 소리를 지를 필요도, 안전 바를 움켜쥘 필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하여 급강하할 때 아랫배에 고압 전류가 흐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느낌은 여전했다. 그러나 그 뿐. 정말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고 금세 사라졌다. 그보다는 높은 곳에 올라간 상쾌함, 스피드를 맛보는 시원함, 그리고 '회전할 때 덜컹거려서 귀찮구먼' 같은 여유로운 혼잣말이  궤도 위의 시간을 차지했다.


나는 더 이상 롤러코스터가 두렵지 않았다.


롤러코스터를 명상하듯 타 보시라. 어쩌면 여러분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실 수도 있을게다. 운이 좋으면 롤러코스터의 공포를 뚝 떼어낼 수도 있고,  업그레이드된 자신 만의 롤러코스터 노하우를 개척할지도 모른다. 나의 경험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는 쓸모 있는 조언이 될 것이다.


그 뒤로 어찌 되었느냐고. 
맞다.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자.



The Last Day of Magic Mountain에서 마지막으로 탑승한 놀이 기구는 Full Throttle이었다. 충전된 자석의 힘을 이용하는 녀석이라 철컹철컹 올라가는 단계 없이 정지 상태에서 단박에 '빵!' 하고  급발진하는 롤러코스터. 출발하자마자 몇 초 내에 세계에서 회전 반경이 제일 큰 360도 궤도 위에서 완벽한 원을 그리고 내려오는 놀이 기구였다. 


밤이었다.


놀이 공원은 이미 문을 닫았고, 문 닫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줄을 선 사람들까지만 기구를 운행하고 있었다. 학생 한 명이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줄 안에 겨우 들어온 우리들은 가장 마지막 열차의 탑승객이었다. Full Throttle은 특이하게도 백발의 MC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고 수다를 떨며 사람들을 출발 버튼을 눌렀다. 장난기 가득한 할아버지는 '빵!' 하는 급발진을 십분 활용해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중이었다.


"레이디스 앤 젠틀맨. 기구를 타는 동안 다음 세 가지 안전 규칙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첫째, 두 팔을 열차 밖으로 내밀지 마세요. 둘째, 빵!"
"오늘은 아름다운 밤입니다. 저 역시 여러분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빵!"



마지막 열차가 들어왔다. 우리 차례였다.


유쾌한 할아버지도 좋았고, 저물어 가는 3주간의 영어 캠프도 좋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놀이 공원의 미션도 좋았다. 나는 우리 집 안방 벽에 기대 앉듯 마지막 열차에 편안히 앉아 '빵!' 하는 소리를 들었다. 다른 사람들의 꺄아아 소리와, 캄캄한 LA 밤하늘에 구슬처럼 박혀있는 또렷한 별들과, 360도 정점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열차의 애교를 하나 하나 바라보며, '아, 정말 좋다.' 하고 나지막이 읊조렸다.


지금 이 밤, 롤러코스터의 안전 바를 몇 번쯤 더 차고 싶었다. 이제 내일 모레면 한국으로 돌아가는구나.


열차가 출발점으로 귀환했다. 무사히 돌아온 마지막 탑승객을 향해 모든 스태프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우리들도 손뼉을 치며 화답했다. Thank you! Thank you for joining us  today!


철컥. 치이이-.

열차가 섰다.


이제 안전바를 풀어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았다.
스태프들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나도 옆 자리의 아이에게 "네 거는 풀리니?" 하고 물었다. 
그때 MC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았다.


"Again?"


와아아아!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OK. If you want, 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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