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다음 날 새벽, 평소처럼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이큐가 얼마냐는 질문을 몇 번인가 받았다.
학교 성적이 괜찮다 보니 남들이 궁금했나 보다. 그때마다 대개는 "잘 몰라요."라고 답했던 것 같다. 나도 내 아이큐가 얼마인지 정확하게는 모른다. 담임선생님이 웃으며 중상위는 된다고 하셔서, 그렇거니 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 아이큐가 얼마인지 별로 관심이 없다. 아마도 초시계의 째깍거림이 엉덩이를 쿡쿡 찌르는 거운데, 눈에 불을 켜고 무슨무슨 연구소에서 만든 아이큐 검사 문제지를 푸는 것과 '훌륭한 인생'은 별 상관관계가 없다는 느낌을 그때도 받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유였다.
첫째로 아이큐 점수는 토익처럼 단기간에 끌어올릴 수 있다는 성질의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슷한 말-반대 말 찾기 같은 언어 문제, 이것 저것 계산하는 수학 문제, 테트리스 게임 비슷한 도형 문제를 줄자 삼아 '사람의 지능'이라는 에베레스트 산의 재어 보겠다는 것이 아이큐 검사다. 그런데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습하면 점수쯤이야 얼마든지 팍팍 높일 수 있지 않을까.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간단한 덧셈 뺄셈을 자꾸 실수하는 중2 학생에게 기탄수학을 사다가 죽어라 문제만 풀게 한 적이 있었다.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그 학생의 숫자 계산은 눈에 띄게 좋아졌었다. 아이큐 검사 중 수리 영역도 비슷할 것 같다. 하루에 30분씩만 테트리스 게임을 해도 실력이 팍팍 는다. 동물 이름들 사이에 섞여 있는 식물 이름 고르는 것도, 단지 지식의 문제다(ex. 다음 중 성질이 다른 한 가지는? 1. 코뿔소 2. 코알라 3. 코카인 4. 코요테). 만약 '아이큐 모의고사 문제집'을 판매하는 서점이 있어 수능 시험 공부하듯 공부한다면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이럴 수가 내가 천재였다니!" 하고 놀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멘사 클럽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런 의문이었다. 약간의 훈련으로도 달라질 수 있는 아이큐 점수가 '사람 머리'의 절대적 척도라고 하기 어려울진대, 하물며 '훌륭한 인생'의 힌트로 참고할만한 자격이 있겠느냐 하는 점이다. 즉, 숫자 계산을 더 잘하면, 닮은 도형을 더 빨리 찾아내면, 의성어 중에서 의태어 하나를 잘 골라내면, 더 훌륭한 삶을, 하다못해 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구 선수'로 꼽히는 마이클 조던이 테트리스 문제를 잘 맞출 것 같지는 않았다. '다음 지문을 읽고 주어진 문제에 답하'는 연습이 선동렬의 끝내주는 슬라이더에 도움을 주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국수(國手) 조훈현이 비슷한 말- 반대 말을 많이 알아서 대마를 기막히게 잡아내는 것은 아닐 거다.
아이큐로 대표되는 지능 검사의 역사는 100년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의 머리를 재서 키나 몸무게처럼 눈에 보이는 숫자로 계량화하고 싶은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는 욕구였을 것 같다. 우리가 하는 게임들도, 모두 수치화된 능력치를 게이지로 보여주지 않나. 레벨이라던지, 지력/무력/매력 점수라던지 말이다.
1906년 프랑스의 심리학자 비네는 공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 아이들을 선별하기 위해 최초로 지능지수 검사를 고안해냈다고 한다. 프랑스의 교육기관 체계화 사업의 일환이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창안된 지능 검사가 세계적으로 확산된 계기는 세계대전이다. 엄청난 인원이 전쟁터에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 했는데, 이 친구에게 총과 화약을 손에 쥐어주어도 괜찮은지 최소한의 선별기준이 필요했다. 여기에 활용된 것이 지능 검사, 즉 아이큐 점수다.
하지만 아이큐 점수가 그 사람의 사회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요, 행복한 인생으로 인도하는 것도 아니며, 적성을 찾도록 도와주는 일과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학자들은 인생의 스코어가 새겨져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에베레스트의 다른 봉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사회 지능, 윤리 지능, 감정 지능에 이어 영성 지능까지 우후죽순 새로운 수치화가 시도되었다. 지금도 심리학 연구실 어딘가에서는 아직 심산유곡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한 봉우리를 이 잡듯 뒤지고 있을 것이다.
우뚝 솟은 대표적인 봉우리 중에서 나는 한 때 '다중 지능'에 관심을 가졌었다. 학교 중앙도서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우연히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 지능>을 발견했던 것이다. 서울시 교육감을 역임했던 문용린 교수가 번역한 책이다.
<다중 지능>은 주장했다.
사람의 지능이란 한 가지가 아니며 영역별로 다양하다.
따라서 자기가 상대적으로 어떤 지능이 발달되었는지를 알아내면
적성에 맞는 진로를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듀이 이후 최고의 교육심리학자로 꼽힌다는 하워드 가드너가 30년간 연구하여 찾아낸 봉우리다. 마이클 조던과 스티븐 킹, 조훈현과 조용필을 같은 줄자로 잰다는 사실이 가뜩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내게는, 사람 개개인마다 오르기 좋은 봉우리는 모두 다르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손에 책을 잡은 그 자리에서 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에 꽂혀 자리를 떠나지 않는 사람처럼 말이다.
가드너는 대체로 여덟 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말한다. 각각의 봉우리에는 음악/ 신체운동/ 논리수학/ 언어/ 공간/ 인간친화/ 자연친화/ 자기성찰 지능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한 사람에게 단 하나의 봉우리만 허락된 것은 물론 아니다. 천재라 불릴 자격을 갖춘 사람은 대개 여러 개의 꼭대기에 자리를 깔아놓기도 한다.
자신의 다중 지능을 간략하게 테스트해볼 수 있는 문항도 있었다. 나는 스팸 통조림 뜯는 소리에 달려드는 강아지 같은 스피드로 잽싸게 테스트를 풀었다. 고시공부를 하는 법대생으로서, 논리수학 지능과(고등학교 때 제일 점수가 높았던 과목은 수학이었으니까) 언어지능이 높게 나올 것을 예상(혹시 내가 음악 신동임을 이제야 깨닫는다면 어떡하지)했는데, 의외로 1위가 자기성찰 지능, 그 다음이 언어 지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최적의 직업은 종교인). 나 자신과 제법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줄자를 만난 것일까. <다중 지능>에 맞추어 우리가 앉을 자리를 선택하면 될까.
우리는 종종 생각하기를, '해외 토픽에 나오는 초대형 호박'같은 특출 난 재능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똥별처럼 아주 우연히, 아주 아주 소수의 사람들에게 깃들었을 거라 여긴다. 압도적인 성과를 내놓은 천재들을 보면, 지레 '저 사람은 타고 났을 거야.'라고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평범하게 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이건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불닭처럼 매서운 분노건, 불편한 감정을 쏟아냄과 동시에 봉우리의 더 높은 자리, 경치 좋은 곳을 스스로 포기한다.
과연 다중지능 평가에서 어느 정도로 높은 지능이 있다고 밝혀지면 그 분야에 모든 것을 걸 수 있을까. 20:80의 사회, 상위 20%가 80%를 차지하는 시대니, 상위 20%쯤에 속하면 될까. 수능 1등급 컷이 4%에서 잘리니, 4%쯤 나온다면 '이게 내길이다'라고 마음 놓고 달려갈 수 있을까.
물론 공부라면 그럴 수도 있다. 전문직이나 글로벌 대기업에 취직할 직장인이 목표라면 그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체육이라면 다르다. 체육은 winner takes all. 승자독식 사회다.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게다가 생활체육 발달이 요원하고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가 사막에 내릴 빗줄기처럼 가느다란 우리나라에서는 신체 지능이 안나푸르나처럼 높아야, 엄청난 결단과 용기를 품고 그 길에 올인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깜짝 놀랐다.
김연아.
더 이상의 수식어가 필요 없는, "피겨 역사는 종말을 고했으며, 연아 이후에는 쇠락만이 남았을 뿐"(진중권)이란 표현마저 가능한 그녀. 상위 0.0001%의 재능이라 해도 부족한 그녀(그렇게 해도 1000만 명 중에 1000명은 된다). 그런 그녀의 다중 지능은 얼마나 될까.
놀라지 말 것.
김연아의 신체 지능은 상위 10.5%라고 한다.
당신 주변에 10명이 있다면 그중 한 명 정도는 김연아가 될 수도 있었고, 이 글을 읽는 100명 중에서 10명은 트리플 악셀을 하기에 그녀보다 나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다. 김연아가 가진 재능은 체육인 치고는 평범하다고 볼 수도 있는 재능 아닌가.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엄청난 연습량이다. 뉴스에 김연아를 가르친 신혜숙 코치가 나와 이렇게 말했다.
평창 스페셜 올림픽 폐막식을 마치고 김연아는 새벽 한 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이미 김연아는 평소처럼 얼음 위에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세계 신기록 228.56점의 비결은 '타고 난' 긴 팔다리가 아니라 오로지 '수 만 번 찧었다는' 엉덩이에 있다. 그녀는 '평범한 신체 지능'과 '비범한 노력'으로 '세계 최정상'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재능이 없어서.
머리가 별로라서.
타고난 게 이래서.
'당신이 저지르지 않은 무언가'가 지금의 당신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집 나온 아이처럼 웅크리고 있는가. 중요한 것은 지능 지수가 아니다. 당신에게 보다 쉬운 등반코스는 있을 수 있지만, 최종 결정권은 오로지 당신에게 있다.
선택할 수 있는 봉우리는 하나도 아님을 기억하라.
오를 수 있는 높이에도 한계가 없음을 깨달아라.
당신에게 허락된 하늘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오로지 당신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