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숙대 앞에 낸 조그만 가게 때문이었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하던 즈음이 생각난다.
나를 아는 꽤 몇 명의 지인으로부터 '블로그 같은 거 해봐'라는 말을 듣기는 했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나니까 분명 재미있게 할 거라고 말이다. 그때는 파워블로거라는 말도 잘 없을 때였다. 나 역시 블로그의 1인 미디어 기능이라던가 마케팅 활용 가능성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었기에, 블로그를 그저 조금 더 분량이 많은 싸이월드 미니홈피겠거니 여겼다. 그래서 그저 이왕 여기저기 글 끄적이는 일을 할 바에 한 군데 모으는 것도 괜찮겠군, 정도의 생각만 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문학 소년에 가까웠다거나 빠짐없이 독서 일기를 쓰거나 하는 스타일도 아니었는데 그 친구들은 어떤 연유로 내가 블로그와 잘 맞을 것이라 생각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 블로그 괜찮을 것 같아."
나는 늘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정작 시작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동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물로부터 고작 물 한 바가지를 퍼올리려 해도 마중물이 필요하다. 20대가 저물어가는 고시생이 처음 블로그 계정을 만들 마중물 따위는 고시촌과 법전 그 어디에도 없었다.
블로그를 덜컥 시작하게 된 것은 숙명여대 앞에 조그만 커피 점포를 낸 이후였다.
나이는 이미 서른이 지났고 발바닥에는 군대에서 박힌 굳은살이 단단하게 자리한 뒤였다. 가게를 홍보하려면 블로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에, 영하 10도는 예사로 떨어지는 1.2평 카페 공간에 웅크리고 앉아 전기 난로를 끌어안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할 수 있을까' 라거나 '하기 쉬울까' 같은 잡념 자체가 없었다. 군인 정신 비슷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 가게의 생명줄이 이 블로그에 달려있다고 여겼는데, 돌아보면 반쯤은 맞고 반쯤은 엉터리인 생각이었던 것 같다. 결국 가게는 사라지고 블로그만 남았으니까. 4년 반이 지난 지금 이따금 나는 그 가게가 블로그를 위한 마중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마중물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나서, 조용히 자신의 인연이 다해 눈을 감았다고 말이다.
가게 문을 닫을 꽤 몇 달 동안 나는 블로그의 문도 닫았었다.
특별히 공지문을 올린 것도, 그렇다고 모든 게시판을 비공개 상태로 돌려 명명백백히 '블로그를 닫습니다'라고 알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숲 속의 잠자는 공주' 이야기처럼 마지막 포스팅 그대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다. 늘 오던 이웃들이 한 번씩 들러 '무슨 일이냐'고 물었고, 가게를 종종 찾아주던 단골들은 '그립다'며 담벼락에 글을 써놓고 가곤 했다.
나는 며칠에 한 번씩, 아니 혹여 술이라도 마신 날이면 하루 밤에도 몇 번씩 블로그를 매만지며 게시판과 안부글을 쓰다듬었다. 다만 자식 집에 다녀간 줄 모르게 다녀간 옛 부모처럼 아무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면목없었기' 때문이었다. 가게 잘 되시라고, 공정무역이며 1대 1 기부며 좋은 뜻을 활짝 꽃피우라고 진심으로 응원해준 단골 분들 앞에 별 일 없는 듯 나타날 자신이 없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저 아무 거나 쓰고 싶었다. 공정무역이 아니더라도, 카페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스토리들을 주섬주섬 풀어놓고 싶어 졌다. 여전히 면목없는 블로그 주인장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무언가를 쓰고, 쓴 것을 드림으로써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날 내가 끄적거린 글을 퍽 짧았다.
#1 힘은 사소한 것에서 나온다
서귀포에 사는 김창기 옹은 85세에 한자자격시험의 최고 등급인 '사범'에 합격했다.
김 옹이 한자 시험에 처음 도전한 것은 72세 때.
기억력 훈련을 할까 하여 손을 댄 한자 공부가 '사범'에 이르렀다.
대구의 김복례 할머니는 69세에 중학교에 들어갔다.
못다 한 공부를 마칠까 입학한 것인데, 뒤늦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2년 후 고등학교를 진학하더니, 73세에는 대학 신입생이 되어 화제를 뿌렸다.
대단한 것을 이뤄낸 사람들 모두 출발할 때부터 청사진을 그린 것은 아니다.
발을 내딛고, 재미를 느끼고, 한 걸음씩 전진하다 보니
어느새 높은 산, 험한 고개를 어렵지 않게 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면,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라.
트라이애슬론 완주자가 대단해 보이는가.
동네 학교 운동장부터 달리기 시작하라.
글로벌 비즈니스맨이 부러운가.
먼지 쌓인 제2외국어 교과서를 꺼내봐라.
포털 사이트 1면에 뜨는 몸짱 아줌마에 넋을 잃고 있다면
당장 컴퓨터에서 내려와라.
윗몸을 일으켜서 복근과 오랜만에 인사나 나누어라.
사소한 것을 시작하면, 반드시 그 이상의 것을 하고 싶어 질 것이다.
시작할 때부터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목이 아파할 필요가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사소한 것을 타깃으로 삼아라.
그리고 해내라.
당신은 이미 그 다음 목표를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벌써 2년 하고도 절반이 지났다.
늦깎이 신입 사원으로서 매일 열심히 출근하는 동안, 블로그에는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한다는 특별한 목적 의식 없이 뭐가 되었든 중얼중얼 써왔다. 어디에 닿을 수 있게 될지,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물론 지금의 내가 어딘가에 보란 듯이 닿았다는 말이 아니다. 2년 전의 나는 아예 '어디로 향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조차 없었다는 의미다.
어찌되었건 꾸역꾸역 블로그를 채우면서, 한 권의 책이 나왔고, 한 차례 신춘문예의 최종심에 올랐으며, 열 손가락으로 세기 힘들 만큼 많이 공모전에서 떨어졌다. 글 덕분에 인생이 180도 바뀐 것도 아니고, 돈으로 따지면 과외교습비는커녕 편의점 알바 시급만큼 벌었을 지도 의문이긴 하나 불만은 없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이렇게 블로그에 무언가를 끄적이는 중이기 때문이다.
글 쓰는 일이 어디가 좋냐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간혹 물어보시는 분들도 있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한 편의 글을 매듭지을 때, 퍼즐에 딱 맞는 듯한 마지막 문장을 끼워 넣는 순간의 즐거움은 분명 있다. 그 글이 길건 짧건 간에 말이다.
또 이런 것도 있다.
지난 금요일이었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올라오는데 인근 부서 직원들이 입을 모아 말하길 "영어 캠프 참가자 학부모가 선물을 보냈다."고 했다. 며칠 전 인솔자로 다녀온 영어 캠프였다.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자리에 오니 바이킹 함선만큼 커다란 과일 바구니가 책상에 놓여 있었다. 한 손으로 들기도 무거웠다. 노란 편지 봉투가 끼워져 있어 읽었다. 영어 캠프는 무슨. 블로그 글을 정성껏 읽어주시는, 독자 선생님 한 분이 보내주신 과일 바구니였다.
'한국의 하루키가 되어주시기 바랍니다.'
글쎄. 내가 그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편지의 글을 보자마자 단박에 이런 생각은 들었다. 그저 부지런히 읽고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중물을 넘어, 인연을 넘어, 그리고 즐거움을 넘어. 내가 쓰는 글에서 즐거움을 찾고 감동을 얻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읽고 쓰는 것은 글 쓰는 이의 의무기도하다고 말이다.
하여, 부지런히 읽고 꾸준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