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내는 방법
퇴근 길에 신림역의 알라딘 중고서점을 들러 '시간관리'에 대한 책을 사왔다.
충동적으로 말이다. 물론 회사 다이어리에 미래전략실이라는 명함을 넣고 다닌지 3년이 지난 내가 시간 관리 기술에 대해 문외한일리는 없다. 피터 드러커를 여기저기 뒤적거린 적도 있으니 지식 노동자의 자기 관리 개념 역시 어느 정도는 친숙한 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자기 계발서를, 그것도 '시간 관리'에 대해 집어와 후다닥 펼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버스터 포지(Buster Posey).
메이저리그 현역 선수 중 '최고의 포수'라 불리는 사나이 때문이다.
인터넷을 산책하다가 포지에 대한 기사를 접했다. 나는 사실 그 기사를 읽기 전에는 포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만약 그가 알라딘 중고서점의 계산대에서 내가 고른 책의 바코드를 찍었다 해도 몰라 보았을 것이다. 기사를 읽기 전에는 말이다.
포지는 그야말로 '최고의 포수'다.
2010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자마자 SF 자이언츠의 주전 포수 자리와 신인왕을 단숨에 거머쥐었다. 그 이듬해인 2011년, 수비 도중 발목이 부러지고 인대가 파열되는 대형 부상을 입었으나 2012년에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아니, 고작 '재기'라는 말로는 부족하겠다. 행크 아론 상, 실버 슬러거 상, 내셔널리그 타격왕과 MVP를 싹쓸이했는데, 수비 부담이 큰 포수 포지션으로서 타격왕을 차지한 것은 무려 70년 만의 일이었다. 벌써 세 개의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를 차지한 그는 9년짜리 '크고 아름다운' 초대형 계약에도 성공했다. 연봉은 무려 1,100만 달러(2014년 기준). 이와 같이 이미 빛나는 왕좌 위에 우뚝 선 포지의 나이는, 놀라지 마시라. 겨우 28세(1987년 생)다.
야구 천재거니, 하고 넘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아, 그렇군' 하고 무심하게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려 했으니까. 그 다음에 이어진 바로 이 한 줄의 문장이 나를 온몸으로 끌어다 주저 앉혔다.
"포지는 대학시절 Finance를 전공했다.
운동을 했지만, 그는 GPA 4.0이라는 아주 높은 성적을 받았다.
야구와 공부를 모두 잘하고 싶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이럴 수가.
소름이 돋았다. 야구에서 그가 거둔 성취만 해도 '레전드'니 '역대급'이니 하는 수식어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그는 이미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는 밤하늘에서 새하얀 보름달처럼 압도적인 존재다. 그런 포지의 전공은 재무학이었다. 그것도 평균 평점 4.0. 출석하는 시늉만으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학점이다. 내가 아는 한, 적어도 Finance에서는 그렇다.
포지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모두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늘 빠듯했지요. 빠듯함을 없애기 위해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고, 이는 메이저리그 시즌을 치르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시간 관리 능력만 있다면 바쁨에 쫓기지 않아도 되지요."
그 한 줄 때문이었다. 운동과 공부. 야구와 재무학. 말도 안 되는 그 두 가지를 잡는 일도 가능하다고 포지는 증언하고 있었다. 시간 관리만 제대로 한다면. 그래서 나는 퇴근하자마자 '시간 관리' 책을 구하러 달려갔다. 이미 아는 내용이라도 좋다. 그리고, 단 한 가지라도 좋다. 그동안 하지 않은 원칙을 하나라도 건져내 습관으로 만들 수 있다면 나의 일상이 맹물에 녹말가루를 푼 듯 보다 밀도 높게 변하리라.
그래서 선택한 것이 <성공하는 시간관리와 인생 관리를 위한 10가지 자연법칙>이라는 긴 제목의 책이었다. 다소 유행이 지나는 표지 디자인이긴 했지만, 저자의 내공은 확실했다. 저 유명한 '프랭클린 플래너'를 만든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몇 년 전쯤 베스트셀러 목록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책인 듯 싶었다. 중고서점에 흘러 넘치는 재고가 인상적이었다.
집에 돌아와 100여 페이지를 안구가 뻑뻑해지도록 쉬지 않고 넘겼다. 이미 알고 있는, 다소 뻔한, 그래서 '아, 역시 그저...'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 즈음이었다. 다음의 이야기가 눈 앞에 펼쳐졌다.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찰스 슈워브(Charles Schwab) 사장이 경영 컨설턴트인 아이비 리(Ivy Lee)에게 조언을 구했다.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 더 많이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주시오. 그러면 타당한 한도 내에서 얼마든지 상담료를 드리리다."
아이비 리는 종이 한 장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내일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들을 적어 보십시오. 그리고 거기에 중요한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십시오. 내일 아침 출근한 다음에 1번 일을 시작하되 그 일을 끝낼 때까지는 다른 일에는 손도 대지 마십시오. 일단 1번 일을 다 끝내고 나면 우선 순위를 재검토한 다음에 두 번째 일을 시작하십시오. 일을 전부 다 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어차피 모든 일을 다 처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해보시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만큼 상담료를 수표로 보내주십시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났다. 슈워브 사장은 그 아이디어를 실험해 보았고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아이비 리에게 수표를 보냈는데 거기는 2만 5천 달러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이것은 1930년대 이야기다.
나는 거기까지 읽고 책을 덮었다.
그것 하나로 충분했다.
간단했다.
그것이 일주일 전 일이다. 매일 아침 나는 메모지 위에 끄적거린다. 1,2,3.. 비싼 플래너가 아니어도 좋다. 볼품없는 뭉툭한 연필이라도 상관없다. 1번 일부터 시작하되, 그 일이 끝나기 전까지 다른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 간단했다. 간단하기에 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누군가에게는 2만 5천 달러가 아깝지 않은 조언이었다.
나에게는 얼마짜리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