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12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인생에서 넘어진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by 한재우
달포쯤 지난 일이다. 20년 지기 친구가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서로 사회를 보아주자고 약속을 했었다. 점심 도시락을 까먹고 난 뒤, 복도 끝 창가에 기대 나누었던 이야기다. 어느새 20년이 흘렀고, 약속은 콜라 캔처럼 그대로였고, 내가 먼저 마이크를 잡게 되었다.


"세월 참 빠르다."


각자 출장이다, 사업이다 바쁜 탓에 우리는 식 올리기 전에 얼굴 볼 자리를 만들지 못했다. 하루 앞두고 전화 너머로 목소리를 들었다.


"그래 준비는 다 마쳤냐?"
"이제 막 끝났어. 뭐 그렇게 일이 많은지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너는 벌써 집도 있겠다, 그저 식만 올리면 되는데도 그리 바쁘더나?"
"나중에 해보면 알 거야.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야."


녀석은 체크리스트와 비용 내역을 메일로 주겠다며 가지고 있다가 참고하라 했다.

"그래. 살림을 하나 꾸리는 건데 그게 어디 쉽겠냐. 준비하느라 고생했겠다."
"그러게 말이다. 근데 있잖아. 결혼식은 아무것도 아니랜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고?"


"우리보다 먼저 간 애들. 걔네들이 하나같이 하는 이야기가, 식 올리는 거야 어찌어찌하고 나면 괜찮다는 거야. 어차피 지나가는 거니까."
"그런데 왜? 같이 살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불편한 게 있다고?"


건너편에서 녀석이 마른 수건처럼 허허, 웃었다.
"아니이. 신혼 때야 살만 하대. 뭐 싸우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알콩달콩하는 게 있잖냐. 그러다가 아이를 낳잖아? 그러면 딱 안대.


아, 이게 결혼이구나. 이제 진짜구나."


Hero-Image-LifeSciences-General.jpg?type=w2


우리 둘 다 어느덧 서른다섯. 아직 막차 운운할 나이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조조할인은 끝난지 오래다. 저 멀리 일찍 스타트를 끊은 친구들 중에는 내일 모레 학부형이 되는 아이들도 여럿 있다. 한 명도 예외 없이 그렇게 이야기했단다. 결혼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이부터 진짜다.


허허, 그렇구먼.
나도 메마른 웃음을 넘겨받았다.


회사의 어느 동료분이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가들이란 '신혼 부부'를 '엄마 아빠'로 거듭나게 하려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극한의 인내심을 끝도 없이 요구하는 그런 존재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두 시간에 한 번씩은 울어대는 통에 잠을 잘 수 없음은 물론이요, 빨래에 소독에 쓰레기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늘어난다고. 1년 정도 아이 옆에 딱풀처럼 붙어살다가 천금 같은 자유 시간이 생겨 혼자 영화관에 갔는데 어찌나 여유가 그리웠는지 눈물이 주루룩 나더라고.


"그래. 그렇다더라. 나도 들었다. 그런데..."
"응? 뭐?"


한 마디를 덧붙일까 하다가 그만 두었다. 아니야, 준비하는 거 마무리 잘 하라고. 무조건 축하한다 친구야. 나는 이불 바느질을 하듯 주섬주섬 꼬리를 더듬으며 통화를 마쳤다.


문득 떠올랐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어느 팀장님이 했던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갓난아기일 때는 괜찮아요. 그때는 내 마음대로 하니까. 조금 크잖아요? 그러면 말을 안 들어요. 속상해 죽겠어. 오죽했으면 미운 일곱 살이라 하겠어요."


그리고 또 있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는 어르신 한 분의 말이다.
"어릴 때는 그나마 나아. 돈이 별로 안 들잖아. 중학교 넘어가면 사교육비가 장난이 아니야. 그렇다고 안 시킬 수는 없고. 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끝이 아니다.
내가 과외를 가르쳤던 학생 어머님의 이야기다.
"선생님, 저도 이렇게 과외를 시키지만요. 그래도 이건 견딜 만해요. 하지만 대학 들어가면 말로 할 수가 없어요. 등록금 내면 집이 휘청거리는 거 있죠."


휴우...


"그때는 괜찮았지, 이제부터 진짜." 그것은 아마 영원히 이어질 한숨 소리가 아닐까. 대학 들어가면 취직 걱정이요, 취직하면 결혼시킬 걱정이요, 큰 일 다 치르면 은퇴에 노후 걱정이요, 그리고 나면 매일 약봉지를 달고 살 나이가 되겠지. 그러니 '이제부터 진짜'가 사라질 리 없다. 앞으로는 말이다. 내가 덧붙이려 했던 말, 하지만 구태여 꽃가마를 탄 친구의 등 뒤에 짐을 더 얹을 필요는 없겠다 싶어 집어 삼킨 말은 그것이었다.


'그래. 사는 게 원래 그런 건가 봐.'


life.jpg?type=w2


절에서 대중 법회를 많이 하셨던 스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붓다는 2600년 전 가르치기를 '인생은 고苦'라고 했다. 불교의 기본 교리, 삼법인三法印 중 하나인 일체개고一切皆苦다. 그런데 일체개고를 젊은이들에게 설명하려면 무척이나 힘이 드신단다. '인생이 고통'이라는 말을 도통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시험 못 보아서 야단 맞은 기억, 짝사랑에게 차여 울먹였던 기억을 애써 예로 들어보아도 "그러면 내 인생이 고통이란 말이냐?" 하고 인상을 찡그린 채 삐딱하게 듣는다고. 젊은이들이 그러하니 어린이 법회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꿈과 사랑으로 꽉 채운 풍선처럼, 가만있어도 훨훨 날아가는 나이니까.


하지만 연세가 드신 분들은 다르다.
"부처님이 가르치시길 인생은 고(苦)라 했습니다."
한 마디로 충분하다. 여기 저기서 끄덕끄덕. 부연 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하여 모든 분들이 턱을 당기고 귀를 세우신단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나요?'라고 온몸으로 가르침을 청한다.


'그래. 사는 게 원래 그런 건가 봐.'


집어삼킨 말을 곱씹어본다. 서른다섯이다. 인생에서 넘어진 적도, 몇 번인가 무릎을 까진 일도 있다. 그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한다. 앞으로도 이런저런 일들로 흉터가 늘어갈 일이 있겠지,라고.


이제 조금씩 고(苦)를 깨닫기 시작하는 나이가 된 걸까. 소주에서 가끔씩은 단맛이 나고, 아무리 웃긴 프로를 보아도 미소가 고작이고, 어디서든 혈압계를 만나면 슬그머니 팔뚝을 넣어본다. 지금의 나는 '이제부터 진짜'인 것 같은데, 내일의 나는 '어제는 괜찮았지'라고 말할 것만 같다. 이따금 턱을 당기고 온 몸을 기울여 묻고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래.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o-GERMANY-DAILY-LIFE-900.jpg?type=w2


"까똑"


신혼 여행을 다녀왔노라고 새신랑에게 연락이 왔다. 고맙다고, 사회 잘 봐주어서 어르신들이 좋아하셨다고, 껄껄 웃었다.


물었다.
"그래 고생했다. 좋더냐?"


녀석이 답했다.
"그럼. 좋지. 너도 얼른 가라."


허허.

이번엔 마른 걸레가 아니로군.


그래.
좋았다가 나빴다가.
사는 게 원래 그런 거지.


'내일부터 진짜'면 좀 어떠랴.
살다 보니 오늘 껄껄 웃을 일도 생기는 것을.
사는 게 원래 그런 것이라면, 그렇게 살도록 애쓸 수밖에.


"삼계개고三界皆苦이니 아당안지我當安之라.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니, 내 마땅히 그것들을 평안하게 해야 할지라)"
- 붓다 탄생게誕生偈 중에서


life-long-quotes1.jpg?type=w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