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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Sep 02. 2015

#106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이유

나도 800미터를 전력으로 질주하고 싶다

스탠퍼드대 교수 앨버트 밴두라(Albert Bandura)는 유명한 심리학자였다. 


그의 무수한 연구 업적 중에 재미있는 것이 뱀 공포증에 대한 치료다. 세상에는 뱀을 유달리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증상을 뱀 공포증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얼마나 뱀을 무서워했는가 하면 단지 유리벽 반대편에 뱀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포에 질릴 정도였다고. 


밴두라는 이런 뱀 공포증을 치료하는데 탁월한 성과를 보였다. 그가 치료를 위해 사용한 방법은 '유도 숙달'. 설명하자면 이런 식이다. 


뱀 공포증 환자를 데려다가 뱀이 있는 옆 방에 위치시킨다. 물론 문은 닫은 채로 말이다. 환자가 그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괜찮아지면,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환자는 일순간 두려움에 떨 수도 있지만 역시 시간이 지나면 안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로 환자에게 밴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도록 지시한다. 즉, 환자는 전문가의 통제 아래 한 걸음 한 걸음 '유도'됨으로써 뱀에게 '숙달'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마침내 환자는 뱀의 미끈한 몸뚱이에 손을 대기에 이르는데, 신기하게도 바로 그 순간 그의 뱀 공포증은 마법이라도 부린 듯이 깨끗하게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평생 동안 환자를 괴롭혀 온 뿌리 깊은 심리적 장애가 단시간에 해결된 셈이다. 


뱀 공포증 환자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밴두라는 유도 숙달을 통한 뱀 공포증 치료 전문가로 명성을 쌓아 간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부터다. 환자들과의 사후 인터뷰를 진행하던 밴두라는 기이한 사실을 발견했다. 뱀 공포증에서 해방된 환자들 중 많은 수가 승마나 춤, 세계 여행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도전해, 예전의 자신으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활기차고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뱀 공포증 한 가지에서 풀려남과 동시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인생의 다른 모든 족쇄들을 일제히 벗어버리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밴두라는 인터뷰 결과 그 사람들 모두 공통적으로 '나는 할 수 있다'는 뚜렷한 자신감을 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래서 그는 이러한 자신감을 일러 '자기 효능감 self-efficacy'이라고 이름 붙였다. 



자기 효능감은 '어떤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일반적인 자신감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특별한 영역에 국한된 느낌이다. 예를 들어 수학적 감각이나 구기 종목에 대한 자신감처럼 말이다. 


이런 자기 효능감이 학습과 행동, 문제 해결에 있어서 상당히 유리한 '내적 비밀 무기'로 작용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자기 효능감이 높은 사람들은 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보다 끈질기게 문제에 매달리며, 보다 효과적으로 과제를 수행했다. 반대로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의 역량을 벗어나는 과제를 피하려 했고, 자료에 대한 탐색에도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끙끙대고 노력하기 마련이며, 해봐도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금세 포기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기 효능감이 낮은 사람은 사이드 브레이크를 잡은 채 자동차를 모는 운전사나 다름이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중요한 자기 효능감을 어떻게 해야 높일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힌트를 앨버트 밴두라에게서 얻을 수 있다. 


몇 년, 길게는 수십 년 씩, 도저히 떼어낼 수 없을 거라고 여겨지던 마음의 장애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한 사람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극복할 수 없을 거라 여겨 왔다면 그것이 불과 단 한 개의 벽일지라도, 그 한 개의 벽을 성공적으로 넘는 순간 인생의 다른 모든 영역에 있어서 만리장성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형성된 자기 효능감은 우리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어준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다. 


우리가 품은 뱀 공포증을 찾아내 그것을 극복하는 것.



앨버트 밴두라의 자기 효능감에 대해 읽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가 오랜 세월 안고 살아온 문제는 무엇일까.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을 거라 여긴 나의 장벽은 무엇일까. 

앞으로 영원히 떼어내지 못할 것이라 체념했던 나의 뱀 공포증은 무엇일까.


문득 두둑한 아랫배를 쓰다듬어 본다. 


스무 살 이후 체중계의 숫자를 되짚어보면 나는 늘 과체중과 비만 사이를 오갔다. 맷 데이먼은 언젠가 '본 시리즈'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800미터를 전력으로 질주할 수도 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멋있어서 '언젠가 나도 800미터를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지금의 나는 맷  데이먼은커녕 출퇴근 길 지하철에 부대끼고, 회식 자리에서 부지런히 소맥을 말며, 올라가 봐야 소용도 없는 체중계에 발을 디딘 후 쩝쩝 못마땅함을 곱씹는 서른 중반의 직장인이다. 800미터는 고사하고 100미터조차 무사히 전력으로  질주할 수 있을지 의심되는 그런 아저씨라는 말이다. 게다가 몸무게는 굼벵이처럼 느릴지라도 변명의 여지없이 상승 곡선을 그리는 중이다. 띄엄띄엄하는 운동과 이따금씩 결심하는 소식으로는 체중 증가의 대세적 흐름을 막지 못하는 거다. 이런 식으로는  머지않아 매일 아침 팔뚝을 묶고 혈압을 재는 배 나온 중년이 되겠지.


하여 나는 이제부터 나만의 문제를 떨쳐내야겠다. 거의 평생도록  함께했던, 그래서 앞으로도 영원히 떼어내지 못할 거라 내심 체념했던 나의 골칫덩이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미끈한 보아뱀 이듯, 나에게는 너무 많이 돌아간 체중계 바늘이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여기서 이겨보려 한다. 


내가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유다. 



86.0kg 

변명할 여지 없는 뚱뚱이가 여기 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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