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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Oct 15. 2015

#137 왜 어떤 이는 다시 일어서는가

역경을 이겨내는 힘, 브리콜라주Bricolage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다이앤 쿠투(DIANE L. COUTU) 편집장은 '역경에 부딪혀도 극복하고 일어나는 힘', 즉 복원력의 비밀을 세 가지에서 찾았다. 


첫째, 냉정한 현실 직시. 

둘째, 의미 창출. 

셋째, 브리콜라주Bricolage


위 세 가지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아니, 질문을 바꾸어보자. 위 세 가지 중에서 어떤 것이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 당장, 그리고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기에 답은 세번째. '브리콜라주bricolage'다.


다이앤쿠투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브리콜라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복원력의 세번째 구성 요소는 수중에 있는 그 무엇을 활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이다. 심리학자들은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이 같은 기술을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따라했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의 뿌리는 복원력의 개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 '다시 반등한다'는 뜻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브리콜라주는 적절한 도구나 재료 없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즉석에서 고안하는 능력인 일정의 발명으로 정의된다. 브리콜라주를 하는 사람, 즉 브리콜레어Bricoleurs는 언제나 집안 물건을 만지작 거리며 라디오를 만들거나 자신의 차를 수리한다." -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자기 경영> 중에서


요컨대 브리콜라주란 없으면 없는대로, 우리 속담처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역경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해 온 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가 역경이다. 역경에 부딪히면 당연하게 여겼던 자원, 자금, 인맥 등 여러 인프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당황하는 이유다. 하지만 고장난 리모컨을 반복하여 누른다고 텔레비전이 켜지지 않듯, 역경 앞에서 기존과 똑같은 움직임은 효과가 별로 없다. 이에 사람들은 낙심하고 의기소침해진다. 무기력과 침체에 빠져드는 수순이다.


바로 이 때 힘을 주는 개념이 바로 브리콜라주다. '없으면 없는대로'. 대단하지 않아도 좋으니 무언가를 해내는 것. 완성되지 못해도 괜찮으니 한 걸음이라도 내딛는 것. 어차피 단박에 해결이 불가능하기에 역경이라 부르는 것 아닌가. 다만 브리콜라주로 시작하는 거다. 어떤 식으로든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리의 에너지가 바뀐다. 일이 성사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찾아온다. 운명의 바퀴가 방향을 바꾸는 지점이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멋진 브리콜라주의 예는 일본의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가 <학문의 즐거움>에서 언급한 자기 아버지의 일화다.


헤이스케의 아버지는 원래 도매상과 공장을 운영하는 사업가였다. 그는 일본이 만주를 침공했을 즈음 제품을 대만이나 중국 본토에 수출하면서 큰 돈을 모았다. 3500평의 농토를 가진 대지주로서 '주인 나리'라는 말을 듣고 살 정도였다. 그런데 전쟁이 끝날 무렵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하더니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고 공장은 부도가 났다. 전후 인플레와 농지 개혁이 겹쳐 토지와 저택도 헐값에 팔아버리고 보잘 것 없는 작은 집만 남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주인 나리'에서 실직자 신세가 된 것이다.


이 드라마틱한 역경 앞에 그는 어떻게 대처했을까.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말했다.


"아버지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고 그처럼 사방이 막힌 상태에서도 아버지 특유의 방식으로 대처하셨다. 행상을 시작하신 것이다. 전에는 걸치지 않던 허름한 옷을 입고, 반찬도 형편없는 도시락을 싸들고, 매일 아침 일찍 자전거에 직물을 싣고서 가까운 동네나 시골로 행상을 다니셨다. (중략) 그렇지만 아버지는 태연하셨다. 이전과 다름없이 '나를 보아라' 하는 듯한 자신만만함을 보여 주면서 생활력이 가득 찬 자세를 유지하셨다."--<학문의 즐거움> 중에서


회사에서 쫓겨나고, 시험에서 낙방하고, 애인과 헤어지고. 역경을 만난 사람들은 역경이 내지른 강펀치를 맞고 휘청거린다. 며칠은 고사하고 몇 달이 지나도록 비탄과 상실감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아니, 아예 단 한 번의 시련 앞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아버지는 시간을 헛되게 낭비하지 않았다. 상황이 바뀌었으면 바뀐 대로, 손에 쥔 자전거와 남은 천 쪼가리를 가지고 그대로 생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이다.


그가 다시 가계를 일으켜 결국 '9회말의 역전승'을 거두었는지는 책에 나오지 않는다. 다만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삶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노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늦깎이 학자로서 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상을 최고령으로 수상하는 업적을 남겼다.


자신의 삶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면, 막상 닥친 현실이 오랫동안 꿈꾸어온 로망과 거리가 멀다면, 그리고 왠지 이번 시험, 이번 프로젝트, 이번 기회는 망친 듯 싶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만 싶다면, 브리콜라주를 기억하길.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힘은 '없으면 없는대로' 무언가를 해내는 데서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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