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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an 19. 2016

#147 사랑의 얼굴

그 분은 연세가 많은 노스님이었다.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인도로 성지 순례를 다녀온 뒤에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인도 시골의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데 문득 절집에 두고 온 누렁이 생각이 나시더란다. 분명 지금쯤 그 놈은 툇마루 아래 엎드린 채로 산등성이로 느릿느릿 넘어가는 해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겠지. 노란 햇살의 끄트머리를 까만 눈동자로 따라가며 빗자루처럼 두툼한 꼬리를 굼실굼실 흔들게지. 밥은 남기지 않고 잘 먹고 있으려나.


그렇게 누렁이를 떠올리다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어쩌면 그 녀석도 지금쯤 나를 보고 싶어 하겠구나. 매일 밥을 주던 이 노인네는 어디로 갔을까. 언제 돌아오려나. 비록 한 존재는 사람으로서, 다른 존재는 개로서, 또한 지구 반대편 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렇게 서로를 그려보고 있으리라 여기니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당신은 평생 수행자로 혼자 살아왔지만, 어쩌면 속세에서 짝을 만나 서로서로 보고 싶어하면서 사는 삶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롤랑 바르트는 이렇게 썼다.


"나는 사랑하고 있는걸까? - 그래,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사람, 그 사람은 결코 기다리지 않는다. 때로 나는 기다리지 않는 그 사람의 역할을 해보고 싶어한다. 다른 일 때문에 바빠 늦게 도착하려고 애써본다. 그러나 이 내기에서 나는 항상 패자이다. 무슨 일을 하든간에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며, 정확하며, 일찍 도착하기조차 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인 정체는 기다리는 사람, 바로 그것이다.   - <사랑의 단상> 중


가끔씩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어볼 때가 있다. 누군가를 처음 만난다. 세상을 블랙아웃시킬 만큼의 불꽃이 튄다. 그 또는 그녀와 특별한 관계 맺음을 약속한다. 그 약속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다. 아마도 그런 모습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리고 소망하는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그런 사랑의 모습이 잘못되었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사랑이 단지 그런 일련의 과정에 국한된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이 '그렇게 되어야 할' 사랑의 관계라 한정짓는다면, 우리의 사랑은 필연적으로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고, 그 빈 자리를 다툼과 걱정과 집착이 차지하게 될게다. 


사랑은 보다 많은 얼굴을 가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만남으로써 사랑할 수 있고, 기뻐함으로써 사랑할 수 있고, 그리움과 잇닿은 기다림으로써 사랑할 수 있다. 요컨대 우리에게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할 더 많은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 모든 것을 사랑의 얼굴이라 깨닫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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