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의 내용을 기억하려면 이제부터 에버노트
1. 기억의 한계 : 도대체 어디서 보았더라?
책 읽는 습관은 책 읽는 사람마다 다르다. 색색가지 형광펜으로 무지개빛 하이라이트 선을 긋는 이도, 여백을 삥 둘러 빼곡하게 메모를 남기는 이도 있다. 대학 노트에 정성스럽게 요약 정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마치 서점에서 갓 사온 책마냥 손 댄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하게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책을 읽던 간에 그들 모두의 공통된 희망은 이거다. 바로 '읽은 내용을 기억하고 싶다'는 것.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대뇌피질 아래 해마(hippocampus)의 문턱에서 장기기억으로 미처 넘어가지 못한 정보들은, 우리 안으로 들어온 적이 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진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읽은 책이건만 무슨 내용이었는지 까마득하다. 주인공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숫제 책 이름조차 낯선 일도 비일비재하다. 못난 기억력을 탓하다가 지칠 정도다.
그런데 아예 읽었는지조차 모를 때에는 그나마 낫다. 도리어 답답한 것은 분명히 읽은 내용인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것이 확실한데, 이것이 도대체 종이책의 어느 구석에서 접했던 부분인지 찾을 수 없을 때다. 겨우 떠올린 키워드 한 두개를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구글에서 헤쳐봤자 오리무중. 게다가 마침 그것이 보고서나 과제물에 들어갈 문장이라도 된다면 답답함은 비단 답답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불이익으로 변한다.
이런 슬픈 사례를 가능한 방지하고자 많은 독서가들이 자기만의 습관화된 독서 기술을 활용한다. 밑줄 치기, 메모, 필사, 요약 정리, 마인드맵 작성 등이 그런 활동이다. 그런 독후 활동을 하면 눈으로만 읽는 것보다는 당연히 기억에 남을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완전한 해결책은 못된다. 15cm 플라스틱 자를 대고 정성껏 밑줄을 친 부분도 시간이 흐르면 '도대체 어디서 보았더라'의 저주를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확신하는 이유는 나 역시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느 편인가 하면 나는 밑줄을 치며 읽는 사람에 속한다. 책꽂이에 있는 수두룩하게 많은 책들이, 연필의 발자취를 수두룩하게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출처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우는 정말이지 수두룩하다.
설사 독서 노트를 비롯하여 보다 시간이 많이 들어가는 다른 방법을 쓰더라도 관리가 안된다는 문제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내가 대학 시절 한글 파일로 저장해 둔 독서 요약 자료들은 하드 디스크 고장이라는 불운으로 깨끗하게 사라졌다. 대학 노트에 일기장처럼 쓴 글들은 이미 먼지가 가득 앉아 읽어보려면 대청소부터 해야할 지경이다. 요약하자면 이런 이야기다. 독서에 있어서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금까지의 노력들은 모두 지극히 불완전했다.
하지만 IT기기의 발달로 정보처리능력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 눈부시게 발전한 지금(Thanks Jobs!), 드디오 우리에게도 희망이 생겼다. 비록 100% 완전하지는 못하더라도, 기존의 문제점들을 상당히 해결할만한 프로그램이 나타난 것이다.
어디서나(Ever) 쓸 수 있는(Note) 노트. 바로 에버노트(EVERNOTE)다.
2. 에버노트란 무엇인가.
이미 에버노트를 알고 사용하시는 분들은 이 글을 읽을 필요가 없다. 에버노트를 독서 노트로 활용할 수 있구나! 라는 사실만 캐치하시고 바로 적용하면 그 뿐이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PC를 쓰면서(거의 대부분이시겠지만), 아직 에버노트를 쓰지 않은 분들은 이 내용이 적지 않은 도움이 되실 것이라 생각한다.
에버노트는 메모 도구로 기능하는 어플리케이션이다. 초록색 정사각형 안에 검은 코끼리의 옆 얼굴이 그려진 로고가 한 번 보면 잊기 힘들 정도로 인상적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에버노트를 찾으면 다음과 같은 정보가 나온다.
"에버노트(Evernote)는 2008년 출시된 메모용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다. 구글 크롬, 모질라 파이어폭스, 아이폰, 안드로이드, 윈도우 폰, 윈도우, OS X와 같은 다양한 플랫폼에서 실행된다. 한 기기에서 메모를 작성할 경우, 다른 플랫폼끼리 메모 동기화가 가능하다. 녹음, 파일 첨부, 사진 저장, 저장한 메모에 대한 위치 정보 추가, 태그에 따른 메모 분류, 키워드에 따른 메모 검색, 텍스트, 이미지 및 링크를 포함하여 웹 페이지의 일부 또는 전체를 스크랩하는 클리핑 기능을 제공한다. 에버노트는 무료(베이직) 사용자에게 매 달 최대 60MB의 용량을, 플러스 사용자에게 1GB, 프리미엄 사용자에게 10GB를 제공한다. 노트 애플리케이션 분야 세계 점유율 1위를 점하고 있으며, 2014년 5월 에버노트사는 자사의 블로그를 통해 1억명의 사용자를 돌파했다고 발표했다." - 출처 : 위키피디아
그리고 에버노트 회사는 그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보다 간명하게 소개하고 있다.
"Evernote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시티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립적인 민간 기업입니다. Evernote는 휴대폰, 태블릿, 컴퓨터를 넘나들며 작업할 수 있는 하나의 업무 공간으로서, 방해 없이 글을 쓰고, 정보를 모으고, 필요한 자료를 찾고, 아이디어를 세상에 보여줄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요컨대 에버노트를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스마트폰, 태블릿 PC, 일반 PC 등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기에서 활용이 가능한 공짜 메모장.
3. WHY? 그리고 HOW?
왜 에버노트를 사용해야 할까.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의 에버노트 예찬론 한 조각을 빌려온다. 그는 "창조는 편집이다"는 슬로건으로 많은 반향을 일으킨 저서 <에디톨로지>에서 자신의 데이터베이스 관리 노하우로 단연 에버노트의 사용을 꼽았다.
"여타 포털 사이트의 메모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앱이 있지만 내 경험으로는 에버노트가 최고다. 에버노트는 내가 사용하는 모든 IT기기에서 동기화시켜 사용할 수 있다. 남의 컴퓨터에 들어가 사용할 수도 있다. 급할 때 최고다. 웬만한 텍스트 작업도 큰 불편 없이 할 수 있다."
"글 쓸 아이디어가 부족할 때면 이런 저런 검색 놀이로 시간을 보낸다. 내 에버노트에는 현재 수천 개의 노트가 저장되어 있다. 이어령 선생과 대화하다보니 선생의 에버노트에는 1만 4000개의 노트가 저장되어 있단다. 팔십 노인의 데이터베이스다. 정말 많이 부끄러웠다."
독서 활동에 촛점을 맞추어 생각해보자. 독서에 있어 기억의 한계란 '도대체 어디서 보았더라'의 문제다.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의 정보, 인용할 만한 문장, 특정 사례나 특별한 에피소드들을 한 군데에 고스란히 모아 두었다가 필요할 때 간단한 검색으로 탁탁 끄집어 낼 수 있으면 그런 문제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결국 요구되는 것은 두 가지 작업이다.
첫째, 책의 내용을 쉽게 옮길 수 있을 것.
둘째, 검색을 통해 필요한 내용을 쉽게 찾아낼 것.
에버노트는 모든 기기에서 구동되고, 즉시 동기화가 되며, 로그인만 하면 남의 기기에서도 텍스트 작업이 가능하다. 즉, 책의 문구나 아이디어를 언제 어디서든 옮겨 적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자체 검색 기능이 있어서 단어 하나를 입력해도 그 단어가 삽입된 모든 파일(에버노트에서는 '노트'라 부른다)을 즉시 찾아준다. 노트로 만들어 둔 적이 아예 없으면 모르되, 한 번 만들어놓은 노트의 내용을 까맣게 잃어버릴 일은 거의 없다.
다시 말하면, 책에서 밑줄친 부분을 키보드를 두드려 에버노트에 옮겨넣는 수고만 부지런히 들인다면 언제든 그것을 손쉽게 찾아낼 수 있다는 의미다. 이런 저런 밑줄들을 틈틈이 동네 마실 다니듯 구경할 수 있는 것은 덤. 이 정도면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도구로 에버노트를 쓸만하지 않은가. 독서 습관의 유용성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다.
그렇다면 에버노트를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 좋을까.
시중에는 에버노트 전문가들이 내놓은 '에버노트 활용법' 책들이 여러 종 있다. 단번에 고급 수준의 에버노트 유저가 되려면 그런 책을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블로그나 유튜브처럼 무료 컨텐츠를 찾더라도 평범한 독서가들이 에버노트를 활용하는데 필요한 사용법 정도는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아니, 에버노트의 초록색 로고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지 말고 일단 다운로드를 받아보자. 아이폰 이후 IT 기기와 프로그램들은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갖추는데 많은 공을 들였다(Thanks Jobs, Again!). 글씨가 빼곡한 사용설명서를 정독하지 않더라도 놀이하듯 쿡쿡 여기저리를 찔러봄으로써 사용법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에버노트를 처음 시작하는 유저들을 위해 에버노트 회사에서 제공한 사용법 팁 정도만 따라해보아도 충분히 즐거운 에버노트 유저가 될 수 있다. 사용법 팁은 에버노트를 다운로드 받아 처음 실행하면 등장한다.
다만 독서와 관련하여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은 이런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열심히 책을 읽는다. 밑줄을 치고, 여백에 깨달음을 메모한다. 그 작업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책을 다 읽은 후에 밑줄 친 부분과 메모를 에버노트에 옮긴다. 노트의 제목으로 책 제목을 달면 충분하다. 이렇게 하면 노트 하나 하나가 한 권 책의 요약서 내지는 인용구 모음집이 된다. 나중에 그 책의 내용을 전반적으로 훑어보고 싶을 때는 다시 먼지 쌓인 책을 들춰볼 필요 없이 에버노트의 노트를 읽으면 된다. 또한 노트들의 묶음을 노트북이라고 부른다. 윈도우의 폴더와 비슷한 개념이다. 이 노트북에 이름을 붙이고(이를테면 '세계 문학') 그 하위에 해당되는 노트를 넣으면(예를 들어 <레미제라블>, <어린 왕자>, <달과 6펜스> 등) 아주 간단한 카테고리 분류법이다.
에버노트를 충실히 사용하면 자신만의 독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데이터베이스 구축의 가장 큰 장점은 필요한 인용구가 있을 때 쉽게 검색하여 발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최근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의 머스트 리드(must read) 시리즈 중에서 <자기 경영>을 읽고 인상적인 내용과 중요 문장을 에버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 중 복원력에 관한 인용구가 있었는데, 이번에 복원력에 관한 글을 쓰면서 그 인용구 중 일부를 에버노트에서 찾아 그대로 옮겼다
"다이앤쿠투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에 기고한 글에서 브리콜라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복원력의 세번째 구성 요소는 수중에 있는 그 무엇을 활용해 무언가를 만드는 능력이다. 심리학자들은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이 같은 기술을 '브리콜라주bricolage'라고 부르기 시작하자 따라했다. 흥미롭게도 이 단어의 뿌리는 복원력의 개념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이는 문자 그대로 '다시 반등한다'는 뜻이다. 현대적 의미에서 브리콜라주는 적절한 도구나 재료 없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즉석에서 고안하는 능력인 일정의 발명으로 정의된다. 브리콜라주를 하는 사람, 즉 브리콜레어bricoleurs는 언제나 집안 물건을 만지작 거리며 라디오를 만들거나 자신의 차를 수리한다.'"
4. 주의할 점
독서 노트를 기록함에 있어 에버노트의 유용함은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다. 다만 실제 내가 여기서 이야기한 방법을 적용하려 한다면 단 한가지는 주의하여야 한다. 바로 '옮겨적는 문장은 독서 당시에 독자의 마음을 울렸던 부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은 독서가 문제다. 정성들인 정독과 깊은 사유가 있은 다음에야 중요한 부분을 고르고, 애써 수고를 들여 밑줄을 그어야 한다. 그렇게 밑줄 그어진 내용이어야 독자의 기억에 남는다.
에버노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보면 주객이 뒤바뀌기 쉽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다짜고짜 '좋아보이는' 모든 문장을 에버노트에 옮겨적는 습관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다. 더 많은 내용을 에버노트라는 '나만의 보물창고'에 쌓아두고 싶은 마음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불행하게도 그렇게 작성한 노트는 거의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도대체 어디서 보았더라?' 이전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독과 사유가 전제되지 않은 수천 수만 개의 노트는, 사놓기는 하고 읽지는 않은 세계문학전집이나 마찬가지다. '거기에 그것이 있다'고 하여 내 것이라 착각해서는 안된다.
에버노트는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지만, 어디까지나 '도대체 어디서 보았더라?'는 생각은 자기 자신의 뇌 안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