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출근 길
몸이 아픈 날은 글이 잘 써진다.
비가 내리는 날은 글이 잘 써진다.
오늘은 아프고 비가 내리니 글이 잘 써질게다.
사랑니에 문제가 생긴 것은 지난 주말이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분이 상을 당했다. 셔츠가 흠뻑 젖어 슈트를 벗기 민망할 정도로 볕이 뜨거운 날이었다. 나는 친구 결혼식이 있어 마치는 대로 장례식장으로 가겠노라 했다. 결혼식과 장례식을 한 날에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예정에 있던 결혼식과 예정에 없던 장례식이다. 살 때는 예정이 있지만 갈 때는 예정이 없다. 남아있는 자들은 예정과 예정 아닌 것들을 부지런히 오가며 예정 아닌 일을 향해 꾸물꾸물 살아간다.
조의금을 넣고, 절을 하고, 어쩌다 이런 일이... 하며 안타까움을 표하고, 먼 길 와주셔서 고맙다는 상주를 돌려보낸 후에 식당에 앉았다. 전, 무침, 떡, 밑반찬, 그리고 육개장. 우리가 아는 장례식장의 상.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새우젓 종지를 보며, '이건 전 찍어먹는 건가' 하고 혼잣말을 하는데, 일손을 도와주시는 분이 말했다.
"아차, 수육이 빠졌네."
캔 맥주를 땄다. 미지근해서였는지 치이이익 소리가 길게 났다. 밥을 한 술 떼어 고추기름이 시늉처럼 떠있는 육개장에 말았다. 갓 나온 수육에는 오도독뼈가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젓가락 끄트머리로 젓갈이 된 새우 두어 마리를 집어 함께 입에 넣는데,
우지끈.
무언가를 먹을 때 가장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났다. 오도독뼈를 하필 사랑니로 씹었던 게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는 모두 네 개의 사랑니가 있었다. 십 년쯤 전인가 치과에서 말하길 그중 세 개는 방향이 틀어져 뽑지 않으면 위험하다 했다. 대신 가장 큰 녀석 하나는 그대로 둬도 괜찮다고. 그렇게 내버려둔 사랑니였다. 살짝 흔들리는 느낌도 나고, 이가 뽑힌 듯 얼얼하기도 했다. 이 방 저 방에서 곡소리가 들리는데 이 한쪽 아프다고 나 죽네 할 수도 없어 묵묵히 국 말은 밥을 마저 씹었다.
오늘 아침이었다.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출근하는 지하철에는 사람이 많았다. 장마가 지면 개미들이 흙 밖으로 나온다는데 사람도 마찬가지일까. 개미들이 우리를 보면 그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지하철에 모인다고. 뽑아내지 않고 가라앉히려 기다리는 사랑니가 좀처럼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밥은 여전히 한쪽으로 우물우물. 내일 모레까지 이러면 하는 수 없이 뽑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성수, 성수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치통처럼 꽉 찬 지하철이었다. 어차피 비 오는 날의 출근 시간. 기다린다고 나아질 리 없기에 좁은 틈새로 사랑니마냥 몸을 끼워 넣었다. 미처 타지 못한 이들을 다음에 맡겨두고 지하철은 힘겹게 문을 닫았다. 폐문을 마친 지하철이 푸우... 하고 한숨을 쉬었다.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열차는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내가 타는 신림역은 출입문이 왼쪽이다. 승강장에서 바로 반대 방향 지하철로 환승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직장이 있는 영등포구청역은 출입문이 반대. 내리려면 사람들의 등과 어깨를 비집고 나아가야 했다. 왼쪽 문에서 오른쪽 문으로. 끝에서 끝으로. 신대방을 지나, 대림을 지나, 문래를 지나도 사람은 여전히 줄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시계를 보았다. 여유는 있었다. 나는 보통 출근 시간 30분 전에 회사에 들어가곤 했다. 비도 내리고, 이도 아프고, 사람들의 등과 어깨를 뚫고 나가기도 싫고. 그냥 이대로 있자. 몇 정거장 더 가서 왼쪽 문이 열리면, 그때 내려서 돌아오면 되지. 그래도 아홉 시 정각에 들어가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눈을 감았다.
왼쪽 문에 몸을 기댔다.
비 오는 날도 투쟁처럼 30분 일찍 출근한다 해서 누가 알아줄 것도 아니었다.
이는 아프고, 비는 내리고, 지하철에 사람들은 이토록 많았다.
나는 홍대입구에서 내려 텅 빈 승강장에 앉아 반대편 열차를 기다렸다.
치통처럼 꽉 찬 지하철 안에, 늘 가던 곳을 향해 오늘도 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날은 글이 잘 써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닷새 전, 우리 회사가 전격 매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