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찾는 이 없는 주말 한낮의 막막함을 뚝 잘라내, 단번에 끝간데 없는 먹먹함으로 뒤바꾸어 놓은 것은 소설가 이문열의 인터뷰 한 쪽이었다.
"최근 들어서 나한테도 이제 무한한 세월이 없다는 것이 이제 명백해졌고. 잘 써야 뭐 한 5년 정도가 제대로 제정신으로 쓰는 거. 그것도 70까지 써야 그래야 한 정서인데. 그것 쓰는 게 양이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다가는 정말 쓰고 싶을 얘기는 못 쓰는데. 정말 쓰고 싶은 얘기 중 하나가 80년대를 정리하는 것. (중략)
그다음에 문학 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근데 이제는 그걸 참 꿈꾸는 것 조차도 어색해졌어요. 그전에는 내가 사실 내가 다 쓰고 시간이 남으면 정말 참 좋은 시나리오를 한번 쓰고 싶었는데. 그냥 많이는 아니더라도 한 서너 편 정도만 괜찮은. 그걸 누가 가서 영화를 만들어도 뭐 괜찮아지게 되는 그래서 다시 또 어떤 사람이 또 만들고 또 만들고 할 수 있는 영화. 난 제대로 한 번 썼으면 싶은데 지금 틀리지 않았나 싶어요. 이것 막 이거 하면 아마 한 3~4년 걸릴 텐데 그거 끝나면 그럼 70세 넘어가지고 뭐 시나리오를 쓴다는 게 그게 자신이 없어지네요."
예전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앞으로 내놓을 작품의 양을 물리적인 시간으로 계산하는 것을 읽은 일이 있다. 장편 소설을 한 권 완성하는데 3~4년이 걸리는데, 그렇다면 자신이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소설이란 기껏해야 몇 권 정도일 겁니다, 라는 식이었다. 그 글을 읽은 것은 벌써 몇 년 전 이야기인지라 그 때의 나는 '흐음 그럴 수도 있겠군' 하고 받아들인 것이 고작이었다. 아마도 그 사이에 나는 확실히 나이를 먹었던가 보다. 같은 이야기인데 이번에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훨씬 가깝게 가슴에 와닿는다. 슬펐다.
처음에는 슬프다, 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역류하는 수도관처럼 슬픔이 솟구쳤다. 토요일이고, 한낮이고, 창 밖 어딘가에서는 고구마니 감자니 호박이니를 파는 야채 트럭의 확성기 소리가 들리고, 정말 아무것도 없고, 그저 차갑고 환하기만 할 뿐인데도 이문열쯤 되는 작가가 '무한한 세월이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고', '잘 써야 한 5년 정도'이며, '꿈꾸는 것조차 어색해질 정도'로 자신이 없어졌다는 고백에, 귓가에서 찌잉 - 소리가 나고, 마치 손가락 끝이 내 것이 아닌 양 어지러웠다. 나는 기실 굉장히 슬프구나, 하고 빙빙도는 천정을 보며 생각했다.
나의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양이 계산 가능한 것이며, 내가 만날 수 있는 사람과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인연과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일상들에 반드시 다함이 있는 것이어서, 언젠가 하나씩 하나씩 멀어져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삶에서 만날 개개의 이별들이 유성우처럼 한꺼번에 쏟아져왔다. 그리고 언젠가 내뱉게 될 나 자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쓰고픈 이야기가 있고, 쓸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쓸 시간이 남아있지 않네요, 라고.
견디기 힘들어, 옷걸이에 주렁거리는 셔츠며 츄리닝이며 패딩이며를 손에 잡히는대로 걸치고 운동화 끈을 묶었다. 영하 13도의 냉기가 와락 얼굴로 쏟아졌다. 다리가 허락하는 한 끝간데 없이 달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