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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Jan 26. 2016

#153 네 번의 불합격, 한 번의 합격

누가 풀죽은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저는 어릴 때 둔한 편이었어요. 시작이 늦었는데 잘 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미야자키 마사히로(宮崎正裕)를 아느냐, 고. 


미야자키 마사히로는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1969년 동네 검도장에서 처음으로 죽도를 손에 잡았다. 그의 성취는 퍽 더뎠다. 6년이 지난 중학교 1학년 때 초단(初段) 심사에 응시했지만 네 번을 연속으로 떨어졌다. 승단 심사는 실기 시험 후 그 자리에서 합격과 불합격을 통보받는다. 미야자키가 불합격 소리를 듣고 나올 때마다 그의 스승은 아무 말없이 그를 데려가 우동을 사주었다. 결국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다섯 번째 응시에서 간신히 취득한 초단. 검도장 동기들 중에서 가장 늦은 승단이었다. 


중학교 때 검도부에 들어갔지만 그곳은 인원 미달로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학교 측은 체육관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미야자키는 교실에서 연습을 했다. 고등학교 때는 매일 4시간씩 수련을 했다. 학교가 편도로만 2시간씩 걸리는 먼 거리에 있었지만, 그는 3년간 검도 연습을 개근했다. 다른 사람의 동작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노트에 빽빽하게 기록하는 등, 연구하는 자세가 열심인 학생이었다. 


그가 노력의 방향에 있어서 강조한 점은 다음과 같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가능한, 자신의 좋은 점을 발견하는 것."


일본에서 검도는 유도와 더불어 국기(國技)이다. 전일본검도대회가 개최되면 일본 전역의 관심이 쏠리며, 내부적으로는 세계선수권대회보다 전일본검도대회의 위상을 더 높게 쳐준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 양궁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 대회의 본선 무대 진출을 꿈으로 꾸는 일본의 검도인은 무수히 많다. 본선 참가 자체를 영광으로 여길 정도니, 대회 입상은 과연 얼마나 커다란 일일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자, 이제 미야자키 마사히로가 누구인지 말할 때가 온 듯하다. 


미야자키 마사히로(宮崎正裕)

1990년부터 2001년까지 12년 연속 전일본검도대회 본선 출장. 여섯 차례 우승과 두 차례 준우승. 
그 중 2연패가 2회 있었으며 1996년부터 2000년까지 5년 동안은 연속으로 결승전에 올랐다. 
세계검도선수권대회의 단체 우승 네 번과 개인 우승 한 번. 
그리고 7단 선수권 대회 우승 다섯 번, 준우승 세 번. 


미야자키의 너무나도 거대한 성취, 따를 자가 없고 비할 자가 없으며, 어쩌면 거의 영구할지도 모를 그 기록에 대해 어떤 검도인은 이렇게 평했다. 
"미야자키 전에 미야자키 없고, 미야자키 뒤에 미야자키 없다."


2009년. 미야자키는 도장에 처음으로 발바닥을 디딘지 40년 만에, 검도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인 8단(段) 심사에 응시한다. 8단 심사의 응시 자격은 '7단 취득 후 10년이 경과할 것, 나이 46세 이상인 자'. 2007년에는 이 자격을 갖춘 1459명의 수험생이 도전했는데 그 중 시험을 통과한 사람은 18명이었다. 합격률은 1% 안팎. NHK 방송에서는 이 8단 심사를 일러 '사법시험보다 확률이 낮은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고 설명했다. 


1963년 생인 미야자키는 그 8단 심사를 단 한번에 통과했다. 46세. 최연소 8단이었다. 다시 말하면, 가장 쉬운 초단 심사에서 네 번 불합격한 그는 40년 뒤 가장 어려운 8단 심사를 한 번에 합격한 것이다. 


풀죽은 표정으로 나에게 '너무 둔하다, 시작이 늦었다'고 말하는 이에게, 나는 나즈막히 미야자키 마사히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냥 우동 한 그릇이나 함께 하자고, 그렇게 대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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