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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Feb 15. 2016

#157 어떤 사람의 공부 방법

성공은 흔적을 남긴다고 했다.


먼저 살아간 이들의 발자취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우리가 내딛을 걸음 걸음에 지침으로 삼는 이유이다. 여기 어떤 분의 자서전에 실린 걸음의 흔적이 있다. 학창 시절의 이야기므로 퍽 익숙한 모습니다. 공부 비결이라고 할 수도 있고 노력의 과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우선은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작가로서 사회사업가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분' 정도로 이야기해두자. 그리고 먼저 다음과 같은 노력의 과정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우리 자신의 그것과 비교해보자. 




# 언어 공부에 대하여 


- 이전까지의 공부는 사실 체계적인 것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하고 싶은 것을 시간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들쭉날쭉 산만하게 했을 뿐이다. 프랑스어를 약간이지만 알았고 머릿속에서 그것으로 짧은 글을 짓거나 새로 익힌 단어를 활용해 다른 문장들로 만들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어떤 규칙이나 교수법도 없었다. 그저 하나의 놀이였을 뿐이다. 라퐁텐의 <우화>, 몰리에르의 <할 수없이 의사가 되어> 그리고 라신의 <아탈리>의 몇 구절을 기쁘게 읽는데는 문제가 없을만큼의 실력은 갖추었다. 


- 나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어 무리지어 놓은 가기 다른 크기의 구슬들을 큰 거 두 개, 그보다 작은 걸로 세 개 하는 순서로 꿰고 있었다. 나는 자꾸 틀렸고 선생님은 그럴 때마다 친절하게 잘못을 바로잡아주셨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어디서 자꾸 틀리는지 알게 됐고 작업에 정신을 집중하게 됐으며 어떻게 해야 틀리지 않겠는지 생각하게 됐다. 그러자 선생님은 내 이마에 대고 '생각하다'라고 결정적인 한 단어를 쓰셨다. 바로 그 때 나는 내 머릿속에서 계속되던 일련의 과정을 가리키는 바로 그 단어를 섬광과도 같이 깨우쳤다. 추상적인 개념을 최초로 이해한 순간이었다.


- 솔직히 처음에는 라틴어 문법은 배우기가 싫었다.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단어인데도 그게 명사고 소유격이며 단수인 데다 여성명사다, 하는 식의 낱말 분석에 들이는 시간이 어리석게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라틴어를 그런 식으로 자꾸 분석하다 보니 차츰 흥미도 생기고 언어가 지닌 아름다움이 새록새록 기쁨을 불러왔다. 내가 아는 낱말에 주목해 그 의미를 이해하려고 들이는 노력들 모두가 참 좋았다. 


- (고등학교) 1학년이 배워야 할 과목은 영국사, 영문학, 독일어, 라틴어, 수학 그리고 라틴어 작문과 영작문이었다. 나는 프랑스어에서만큼은 이미 좋은 출발을 한 셈이었고 라틴어라면 6개월간 지도받은 적이 있었다. 게다가 독일어로 말할 것 같으면 가장 친숙한 과목이었다. 


- 나는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초급 및 고급 독일어를 비롯해서 프랑스어, 라틴어, 영어,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 과목으로 모두 아홉 시간 동안 치러졌다. 모두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어와 영어에선 우수한 성적을 받기까지 했다. 


# 독서에 대하여 


- 정말로 진지하게 독서에 입문한 건 보스턴에 갔을 때였다. 날마다 일정 시간 학교 도서관을 이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이 서가에서 저 서가로 종횡무진하며 손에 닿는 책을 마음껏 꺼내 읽었다. 가령 열에 하나밖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또는 한 면 전체에서 두 낱말 정도밖에 이해할 수 없더라도 그래도 계속 읽었다. 낱말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 책을 사랑하게 된 이후 나는 셰익스피어를 사랑하지 않은 적이 한 순간도 없다. <맥베스>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한 번 읽었을 뿐인데도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고스란히 기억날 뿐만 아니라 잊혀지지 않았다. 오래도록 유령과 마녀가 쫓아오는 꿈을 꾸었다. 나는 너무도 선명하게 맥베스 부인의 희고 작은 손과 피 묻은 비수를 볼 수 있었다. 


- 시 다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건 역사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역사책이란 역사책은 모조리 구해 읽었다. 존 리처드 그린의 <영국 사람들의 역사>, 에드워드 오거스트 프리먼의 <유럽사>에서 이프라임 에머튼의 <중세>에 이르기까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 대학에 들어와선 독일어와 프랑스어 문학을 가까이할 기회가 많아졌다. 독일인은 삶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아름다움보다는 힘을, 인습보다는 진리를 더 윗자리에 두었다. 그들 삶과 문학에선 살아 꿈틀대는 열정이, 쇠망치로 내리치는 것 같은 힘이 느껴진다. 프랑스 작가 중에선 몰리에르와 라신이 좋다. 발자크와 메리에의 작품에는 마음을 강타하는 매력이 있다. 나는 또한 빅토르 위고를 흠모한다. 그는 천재다. 위고와 괴테 그리고 실러뿐 아니라 위대한 모든 나라의 위대한 모든 시인이야 말로 영원을 통역해주는 이야기꾼들이다. 


# 학교 공부에 대하여 


- 나는 수학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었다. 이보다 더 나은 표현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실이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하학의 도형들은 정말이지 질색이었다. 철사를 구부리고 모서리를 뾰족하게 만드는 등 아무리 입체적으로 그 모양을 전달하려 했다 하더라도 나는 도형을 이루는 각기 다른 부분들이 서로 어떤 관계에 놓여있는지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고등학교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필요하다면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데 한 5년이 걸리더라도 뭐 어떻겠나 생각했었다. 그러나 1학년 말 내 시험 성적을 보신 선생님들은 2년 남짓 준비하면 충분하겠다고 판단하고 생각을 바꾸셨다. 


- 대학생활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 내게 대학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보니 낭만이 다 무엇이더냐. 낭만이 현실로 곤두박질치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실지로 해보려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많은 것을 배웠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내라는 값진 학문이다. 


- 아는 것이 힘이다. 아니, 아는 것이야 말로 행복이다. 


# 글쓰기에 대하여 


- 글을 쓰려고 애쓰는 것은 마치 직소퍼즐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과 같다. 우리는 마음속에 이런 걸 표현하고 싶다고 미리 그려놓은 게 있다. 그런데 막상 옮기려고 하면 마치 퍼즐 판의 크기와 그림에 딱 들어맞는 퍼즐 조각을 찾기 힘든 것처럼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에 딱 들어맞는 낱말이 쉬 떠오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는 딱 들어맞는 표현을 찾아 헤매기를 멈추지 않는데 그건 이미 성공한 사람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며 우리 역시 조만간 그 대열에 합류하리라 기대하기에 실패를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까닭이다. 


# 그 밖의 활동에 대하여 


- 내가 전원생활, 그것도 야외활동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는 앞에서도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한참이나 어린 나이에 노젓기와 수영을 배웠다. 매사추세츠에서 여름을 날 때면 보트에서 살다시피 했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그들을 배에 태우고 힘껏 노를 저었다. 


- 나는 카누타기도 즐겼는데 내가 특히 달밤에 그윽한 달빛 아래서 카누타기를 좋아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웃을 것이다. 때로 어린 물고기가 내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대담한 행동을 해보이기도 하고 연꽃이 부끄러운 듯 내 손을 꾹 누르기도 한다. 좁고 후미진 곳에 있다가 배를 저어 빠져나올 때 갑자기 주변이 확 트이는 걸 공기의 움직임으로 알 수 있다. 


- 박물관과 미술관 역시 기쁨과 영감을 주는 곳이다. 위대한 예술작품을 만져봄으로써 참 기쁨을 얻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손가락 끝으로 조각의 굴곡을 더듬어 조각가가 나타내려고 한 생각과 그의 감정을 발견한다. 


- 내 공부방 벽에는 호메로스의 메달이 걸려 있다. 아무때나 만져보고 싶을 때 쉽게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좀 낮게 걸어뒀으므로 원할 때면 늘 나는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아름답고 슬픔에 찬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위엄있는 이마 위 주름살 하나에 이르기까지 그의 얼굴 구석구석 삶이 남긴 흔적과 그 투쟁의 고단함이 그리고 슬픔이 가득 담긴 그의 얼굴이 이제는 얼마나 낯익은지 모른다. 




옮겨적어놓고 보니 제법 많은 양이 되어버렸다. 가능한 짧게 축약하고자 했는데도 그렇다. 원체 책에 밑줄 그은 부분이, 포스트잇을 붙여놓은 부분이 빼곡하게 다닥다닥 많기 때문이다. 


대개가 학창 시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익숙하게 읽힐 것이다. 수학에서 골탕을 먹었고, 문법 공부를 싫어하기도 했지만, 결국 몇몇 과목에서 두각을 나타내어 좋은 대학에 입학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똑똑한 사람의 스토리겠거니 하고 읽으면, 별반 대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 맞다. 공부가, 노력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꾸역꾸역 두꺼운 책을 읽어내고 여러 개의 외국어를 습득하다. 우리가 더듬어볼 가치가 있는 성공의 흔적이 흔하기에, 우리는 그 흔적들 앞에 둔감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 가지 이야기만 하자. 그리고 다시 한 번 저 사람이 걸어온 흔적을, 공부에 기울인 노력의 과정을, 그의 입장에서 읽어보았으면 한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고, 작가로서 사회사업가로서 대단한 성공을 거둔' 그의 이름은. 



헬렌 켈러.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그녀는 한쪽 손을 수도 펌프 아래 대고 '보지 못하는' 물줄기를 맞아가며 'WATER'라는 한 단어를 배웠고, 선생님의 입술과 뺨을 손으로 만져서 발음하는 법을 익혔다. 철사를 구부려 만든 삼각형을 손으로 만지며 기하 문제를 '이해'했으며, 점자 책과 수화를 사용하면서도 몇 개나 되는 외국어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일 백년 전, 그녀는 '내가 만일 사흘 동안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면'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내일 갑자기 장님이 될 사람처럼 여러분의 눈을 사용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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