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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Feb 11. 2016

#155 이렇게 사람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기자 한 분과 인터뷰를 하던 중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질문의 표현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간 탓이다. 대강 이런 실루엣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하면 된다, 저렇게 하면 된다, 라고 많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정작 듣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다면 답답하지 않습니까?"


나는 그다지 주저하지 않았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 뿐입니다. 바뀌고 바뀌지 아니하고는 제가 감당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재차 이렇게 물었다. 
"그래도 글을 쓰고 팟캐스트를 한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가 아닙니까?"


그 분은 어떤 답을 기대했던 것일까. 네, 물론입니다,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다, 처럼 확신에 가득한 답변을 했다면 보다 모양새가 좋은 기사가 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런 경우에는 조금 더 '당찬 포부'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이 보다 일반적인 인터뷰이의 태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어떤 팟캐스터는 앞으로의 목표를 물었을 때, '우선 종편에 진출하고 그 다음은 공중파에 나가는 것입니다' 라고 똑부러지게 대답했다니까 말이다. 


놀라운 일이다. 그런 식의 똑부러진 이야기를, 나로서는 대놓고 말하는 성격이 못 된다. 사람의 생김이 그러한게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칼로 무언가를 베는 일과 칼에 무언가가 닿아 베어지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오륜서>에서 가르쳤는데, 일부러 택해야한다면 나는 억지로 날을 집어넣어 베는 쪽보다 자연히 닿아 베어지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는 편을 훨씬 좋아한다. 


아무튼 나는 저 '영향력'의 질문에 대해 소설가 김연수의 이야기로 대신했다. 


언젠가 김연수씨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역시 흐릿한 실루엣에 불과하지만 이야기의 요지는 다름이 없을게다. 


"방글라데시에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산모들을 위한 국제구호 단체의 프로그램이다. 그곳의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서 피임을 잘 못하기 때문에 대략 15년 정도 쉬지않고 아이를 낳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구호단체에서는 피임 키트를 주고 사용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구호단체의 사람들이 주는 도움이란 어쩌면 미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 키트는 개당 2달러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 결과는 작지 않았다. 2달러짜리 키트 하나로 그들은 삶에 대한 선택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주는 사람은 작은 도움이지만, 받는 사람에게는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바꾸는 일은 사실 굉장히 힘들다. 사람의 습이란 것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의외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나는 큰 노력을 기울인 것이 아닌데, 상대방은 그것에 의해 인생이 바뀌는 경우가 더러 있다. 소설이 그랬다. 나는 꾸역꾸역 무언가를 써내려가는 것 뿐인데, 어떤 이들은 그 소설에서 영향을 받고, 도움을 얻고, 어쩌면 인생이 바뀌기도 한다. 


그 반대의 이야기도 가능하다. 그 분들이 한 권씩 사주는 내 책, 그리고 간간히 주시는 작은 피드백들에 의해 나는 이렇게 계속 고통을 이겨내면서 글을 쓸 힘을 얻는다. 이렇게 사람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력을 미치면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나로서는 굉장히 좋아하는 이야기이고, 제법 만족스럽게 답변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후 나온 기사를 보니 이 내용은 없었다. 아마, 내 목소리가 아니라서 싣지 않은 것이려니, 싶었다. 



# 기사는 아래에 있습니다. 제 사진은 없어요 ^^;


http://star.mbn.co.kr/view.php?no=107629&year=2016&refer=po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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