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출근길이다. 아파트 공사 현장을 가로질렀다. 이 시간에 이런 길을 지날 일이 없었으므로, 아파트를 짓는 사람들을 가까이서 볼 일 또한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공사장의 이미지는 대개 시끄럽고, 위험하고, 먼지가 날리는 곳이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종종 걸음으로 후다닥 지나가는 곳.
그런데 오늘 느릿느릿 걸으며 사람들을 보니 한 가지가 더 있었다. 활력이었다. 여전히 시끄럽고, 위험하고, 먼지는 날렸지만, 이른 아침 윙윙 돌아가는 기계 소음과 그 소음을 뚫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인부들의 모습에는 활력이 있었다. 포크레인을 움직이고, 안전봉을 잡고, 부지런히 삽을 놀리는 각자의 활력 속에서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었다.
2. 어제는 법의학자가 쓴 책을 읽었다. 생후 11개월된 아이가 머리를 다쳐 사망했다. 스무살이 갓 넘은 부모는 잠깐 못본 사이에 아이가 넘어져서 이렇게 되었다며 울었다. 사망진단서를 작성하던 의사는 멈칫했다. 넘어져서 머리를 다치기에는 아이의 키가 너무 작았다. 고민 끝에 의사는 ‘외인사(外因死)’라고 적었다. 자살, 타살, 사고사로 분류되는 외인사 처리 절차에 따라 경찰이 찾아왔다. 부모는 아이 잃은 사람에게 조사가 무슨 짓이냐며 오열했다. 경찰은 사고사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의사는 괜한 짓을 했나 싶어 후회했다.
그렇게 매듭을 지어가던 사건의 방향이 바뀐 것은 검찰청에서였다. 서류에서 이상을 느낀 검사가 부검을 지시했다. 부모는 당연히 펄쩍 뛰었다. 아이 시신에 칼을 대다니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극렬하게 저항했다. 하지만 검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예민한 사건인지라 신중하게 부검에 임했던 법의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팔과 손목의 멍 자국으로 봐서 아이에게는 살아 있을 때 생긴 손상이 있습니다. 추락 또는 벽에 머리를 세게 부딪힌 경우로 보이지만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기에는 다른 상처가 없습니다. 그러니 다시 잘 조사해 보십시오.”
다시 조사를 시작한 경찰은 결국 엄마의 자백을 받아냈다. 계속 아이가 울자 화가 치밀어 벽을 향해 아이를 던졌는데 갑자기 조용해졌다고 했다. 찜찜해 하면서도 사망진단서를 작성한 의사와 꿈쩍않고 부검을 지시했던 검사, 그리고 직업적인 확신을 가지고 진실까지 끌고 간 경찰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일을 한 덕분이었다.
3. 새로운 자리로 출근을 했다. 커피가 있고 음악이 흐른다. 두런거리는 대화 소리도, 창밖으로부터 쏟아져들어오는 햇살도 있다. 30대를 고스란히 보낸 회사를 나오면서 각자 있어야 할 자기 자리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옛사람들의 책에서 내가 행복을 얻고, 그 행복을 글과 말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으면 이제 절반쯤 남아있을 내 삶을 집중하기에 충분히 의미있는 자리일 것 같았다. 퇴사 인사를 전하면서 받은 응원과 격려, 그리고 감사의 메시지들이 그 걸음에 많은 힘을 주었다. 활력을 가지고, 꿈쩍하지 않고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 회사 사무실의 책상보다 훨씬 작아도, 지금 여기 온전한 내 자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