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재우 Aug 03. 2015

#32 미래 인재의 핵심 <새로운 미래가 온다>

당신은 다니엘 핑크가 말하는 여섯 가지 조건을 갖추었습니까

학교 동기 중에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스마트'한 친구가 있었다. 


수능 성적으로 내로라 하는 학생들이 모인 자리니 '똑똑'한 친구도, '공부를 잘 하는' 친구도 많은 곳임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스마트 친구는 약간 그 색깔이 달랐다. 표현을 해도, 예시를 들어도, 무언가를 상상해도,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무언가가 있었다. 물론 스마트 친구도 일반적인 의미에서 '똑똑'했고, '공부를 잘' 했다. 수능시험에서 두 갠가 세 갠가를 틀렸고, 공인 영어 텝스 성적은 거의 원어민 수준이었다. 


하지만 '다른 색깔'이라 함은, 그런 점수나 등급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의미했다. 아니, '장점'이나 '특기'라고 콕 집어서 말하기도 애매한 것이었다. 우리는 주위의 누군가가 똑똑하다고 할 때, 이를테면 '숫자 계산이 빠르다'거나 '아는 것이 많다'거나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쓴다'라는 식으로 똑똑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즉, 어느 정도는 '똑똑한 분야'를 확정지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분명 남들과 다른데, 분명 다른 사람들이 어림도 못하는 것을 생각해내는 힘이 있는데, 그게 무엇이라고 정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작은 티스푼으로 하나 정도 아주 약간의 과장을 섞어 비유하자면, 공자가 노자를 만난 후에 노자에 대해 남긴 평가를 연상케 하는 그런 친구라고나 할까. 


"달리는 들짐승은 그물로 잡을 수 있고 헤엄치는 물고기는 낚시로 낚을 수 있으며 나는 새는 화살로 잡을 수가 있다. 그러나 용은 구름과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용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구나. 오늘 내가 노자를 만나보니 그는 마치 용과 같은 사람이었다" - <사기열전> 중에서


스마트 친구와 친해진 뒤에 알게 된 것은, 그 친구가 굉장히 많은 재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피아노를 잘 쳤고(서점에서 클래식 악보를 펼치더니 고개를 끄덕거리며 '읽고 있었다'), 영화를 좋아했으며(영화 감독이 되려 작정하고 영화를 봤다고), 운동을 잘 했고(나보다 달리기가 빨랐는데, 알고보니 지자체 대표 수영 선수였던 적이 있다 했다), 그 밖에도 바이올린이니 중국어니, 춤이니, 하여간 스무 살의 나이를 살코기 참치 캔처럼 꽉 채워 살아온 듯, 할 줄 아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친구였다. 




서른이 넘어서였다. 그 친구가 가진 '스마트'의 비밀이 이런거였구나, 하고 아주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은 말이다. 무려 십 년이 지나서의 일이었다. 루트번스타인 부부가 지은 <생각의 탄생>을 읽는데, 구름 사이에 숨어있는 용의 꼬리가 희미하게 보이는 듯 했다. 


<생각의 탄생>은 인간이 창의적인 생각을 빚어내는 대표적인 루트 열 세가지를 소개한 책이다. 진정한 '관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몸으로 생각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패턴을 인식하고 패턴을 형성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등등, 기발한 사람들의 기발한 생각 방법이 탄탄한 학문적 근거를 가지고 설명되어 있었다. '생각'이란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고, 암기하는 것'이 대부분인줄 알았던 '눈 뜬 장님'인 나의 대뇌를 몽둥이로 멋지게 후려갈긴 책이었다. 


내가 스마트 친구의 스마트함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스마트 친구는 악기를 연주하고, 영화를 보고, 물살을 가르면서 내가 해 온 '생각'과는 다른 종류의 '생각'을 단련시켜왔던 것이다. 자전거를 타 본 적 없는 사람이 자전거 타는 법을 이야기해줄 수는 없고, 동굴 밖을 나가본 적 없는 사람이 무지개의 일곱가지 빛깔을 상상할 수는 없다. 동굴 안에 살면서 자전거를 본 적도 없는 내가, 그 친구가 가진 '다른 색깔'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데 최근 나는 눈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를 들었다. <생각의 탄생>에서 한 발짝 더 나간 이야기다. '똑똑함'과 '공부 잘 함'은 '스마트함'에 밀려날 것이며, 바로 그 '다른 색깔'이야말로 '미래 인재에게 필요한 핵심적인 능력'이라는 주장이다. 


바로 다니엘 핑크의 <새로운 미래가 온다>에 대한 이야기다. 



다니엘 핑크가 말하는 '과거-현재-새로운 미래'는 심플한 도식으로 정리할 수 있다. 


과거(농경시대, 산업시대)에는 육체적인 힘이 핵심 능력이었다. 현재(정보화시대)에는 좌뇌의 힘이 핵심 능력이다. 경영학의 구루 피터 드러커가 평생동안 강조한 '지식 근로자'의 능력 말이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어떻게 되는가. 정보가 넘치고, 물질적 풍요가 확산되며, 네트워크로 전 세계가 실시간으로 묶이는 미래에는. 핑크는 이렇게 예상한다. 


'컨셉과 감성'이 중요한 시대.
즉, 우뇌의 힘이 핵심 능력이 되는 세상이 도래한다고. 


<새로운 미래가 온다>가 설득력을 가지는 근거는 명확하다.


첫째, 세상은 대체로 풍요로와지고 있다. 핸드폰과 자동차가 얼마나 흔한 물건이 되었는지 잠깐만 떠올려보면 된다. 둘째, 아시아에서 무수한 지식 근로자가 양산되고 있다. 이 부분은 서구 영미의 시각이긴 하나, 엄청난 숫자의 인도 IT 프로그래머는 우리나라에도 중요한 문제다. 셋째, 자동화로 인하여 '안정적인 전문직'이 사라졌다. 2,30년 전 우리 사회에서 회계, 법률, 의학 지식이 보장하던 높은 소득과 단단한 미래가 지금은 어떤 신세가 되었는지 신문만 뒤져보아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는 다른 물건, 다른 서비스가 각광을 받는 '새로운 미래가 온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미래'란 무엇인가. 핑크에 따르면 '하이 컨셉'과 '하이 터치'의 시대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이렇다. 


하이 컨셉 :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능력

하이 터치 :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




'하이 컨셉', 단순한 기능을 뛰어넘어 예술적, 감성적 아름다움이 성과와 연결된다.


세상이 아이팟과 아이폰에 환호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뛰어난 디자인 때문이었다. 에디슨 이래 이 세상 거의 대부분의 어둠을 전등이 책임지고 있지만, 아직도 미국의 양초 시장 규모는 연간 30억 달러에 이른다. 프로포즈처럼 중요한 순간에 사람들은 LED등 대신 은은한 촛불을 찾기 때문이다. 어떤 베이커리는 유명 디자이너가 고안한 물병에 생수를 담아 팔고, 우리는 단지 피츠제랄드나 니체의 이름이 박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책 값과 맞먹는 돈을 주고 책보다 얇은 '공책'을 산다. 


'하이 터치', 즉 다른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성과와 직결되는 시대다.


오프라 윈프리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은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는 그녀의 탁월한 능력 덕분이었다. 이제는 단순하게 정보만 알려주는 컨텐츠로는 주목받기 어렵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즉 힐링 컨텐츠가 사랑받은 이유다. 의사도 달라지고 있다. 제퍼슨 의과대학은 '공감수치'를 개발하였고, 컬럼비아 의과대학은 '이야기 치료' 수업을 도입했다. 기업들은 감성마케팅에 돈을 쏟아붓고 페이스 북의 엄지 손가락("좋아요")이 컨텐츠의 성공 여부를 가늠한다.  


요컨대, 기능과 가격을 넘어서 아름다움과 공감을 창조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새로운 미래'에 필요한 핵심 능력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이 컨셉'과 '하이 터치'를 구현할 수 있을까. '더 많이 더 싸게'의 경쟁을 뛰어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새로운 미래'를 제공하는 능력은 무엇일까. 그런 능력을 갖춘 미래 인재에 대해 다니엘 핑크가 말하는 여섯가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디자인 (Design)


우리는 토스터기를 빵을 굽는데 쓰는 기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토스터기가 빵을 데우는 시간은 하루 중에서 기껏해야 15분 남짓에 불과하다. 나머지 하루 1,425분 동안은 그저 '진열'될 뿐이다. 즉, 토스터기가 가진 기능의 99%는 '장식품'인 셈이라는 뜻이다. 이 진실을 간파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미래'는 미소를 짓는다. 


2. 스토리 (Story)


스토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방식이었다. 원시인들은 구전되는 이야기를 통해 살아가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스토리의 힘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비단 영화나 RPG 게임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스토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기업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타인을 설득하는 산업(광고, 컨설팅, 카운슬링 등)의 규모가 미국 전체 GDP의 25%에 달한다고 한다. 아이폰을 사랑하는 팬들은 스티브 잡스의 전설같은 스토리의 팬이기도 하다. 


3. 조화 (Symphony)


조화란 서로 다른 것들 사이에서 관계를 발견하는 능력을 말한다. 누구도 결합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에서 패턴을 감지하고 결합하는 능력이 조화다. 대다수의 발명가들이 만나기를 고대하는 문제 해결의 순간, AHA-MOMENT가 여기에 있다. 직군의 경계를 넘나들며 멀티플레이어로 종횡무진 활약하는 사람들도 조화의 힘을 이해한 이들이다. 음악을 철학에, 인문학을 비즈니스에, 수학을 의류 디자인에 접목시키는 일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에 기반하고 있다. 


4. 공감 (Empathy)


공감이란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생각해보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이해하는 사람에게 깊은 호의를 품는다. 소통의 기본이 공감인 이유다. 그렇기에 "리더십은 공감하는 능력과 관계가 깊다"는 오프라 윈프리의 말은 더 없이 적절한 것이다. 실제로 제퍼슨 의과대학에서는 공감 능력 테스트에서의 높은 점수가 의료활동에서의 성과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왜 안 그렇겠는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주는 의사에게 치료받기를, 상사와 함께 일하기를, 선생님에게 배우기를 희망한다. 


5. 유희 (Play)


vocation을 vacation으로 만드는 것에 성공의 비결이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가 '놀이'에서 나오는 것인지 당장 우리 손에 들린 스마트 폰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장담하지만 어느 대학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물어보더라도 <카사블랑카>를 본 학생보다 <슈퍼마리오>를 플레이한 학생이 많을 것이다. 미국 육군은 입대 지원자 수를 늘리기 위한 해결책으로 야심작 <American Army>라는 비디오 게임을 제작하여 무료로 유포했다. 군대생활을 RPG로 미리 경험한 사람들은 군대에 호감을 갖고 정서적으로 익숙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6. 의미 (Meaning)


<갈매기의 꿈>과 <연금술사>, 그리고 달라이 라마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초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물질 그 이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정신적인 가치 말이다. 이러한 물줄기는 크게 두 가지 길로 흘러갔는데, 첫째는 '정신적인 초월'이며 둘째는 '행복'이다. 인도의 명상가 오쇼 라즈니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달라이 라마를 스승으로 모시며,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는 것'과 '우주는 간절히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는 말이 쓰여있는 책을 사람들은 귀퉁이가 닳도록 읽는다. 우울증과 정신분열 따위를 다루었던 심리학이 방향을 틀어 '보다 행복해지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 것도 이와 궤를 같이한다. 




어떻게 하면 이 여섯가지 조건을 갖출 수 있을까. 


과연 우리는 숫자 암산 실력을 기르고, 근육을 단련하듯이, 우리의 우뇌 역시 훈련 시킬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부분도 마치 모국어를 습득하는데 있다는 유리한 시기처럼, 기억조차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옛날에 지나갔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미 우리는 '정보화 시대의 원시인'으로 진화되어 버린 까닭에, 손자손녀들과 놀아주고자 억지로 빅뱅과 EXO를 듣는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몸에 맞지 않는 '하이 컨셉'과 '하이 터치'를 흉내내야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말로 그렇다면 굉장히 슬픈 일인 동시에, 대단히 두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별 수 있겠는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들은 도태되어 사라진다고 찰스 다윈은 경고했다. 비즈니스도 강자와 약자가 있고, 끊임없이 환경이 변화하는 생태계의 하나인데, '새로운 미래'에 적응하지 못하고 과거가 될 '현재'에 매몰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은 서서히 화석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미술관을 가고, 악기를 연주하고, 소설책을 읽으며,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는 등, 쉴틈없이 발버둥을 쳐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인 점이 한 가지 있다.


우리 인간에게 좌뇌와 우뇌가 동시에 주어졌다는 것은, 아마도 우뇌의 능력을 발휘하는 일이 억지로 해내야 하는 무엇이 아니라, '본디 자연스럽게 그리 될' 일종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흐르면 저절로 어깨가 들썩이고, 경건한 사찰이나 장엄한 성당에 들어서면 저절로 숙연한 마음이 든다. 오랜 옛날부터 '이왕이면 다홍치마'를 찾아온 우리 안에는, 연애 편지를 예쁘게 쓰기 위해 밤을 새곤했던 우리 안에는, 때로는 실컷 울고 나오고 싶어 컴컴한 영화관을 찾아들어가는 우리 안에는, 활동하고 싶어 꿈틀꿈틀대는 우뇌의 힘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새로운 미래'에 필요한 '미래 인재의 조건'이란, 그저 보다 자연스러운 우리 자신이 되어가는 것 아닐까 하는 점이다.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스마트했던 그 친구는 지금, 낮에는 변호사로 일하고 밤에는 열심히 탱고를 가르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31 작가를 꿈꾸는 이여 <소설가의 일>을 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