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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3. 2015

#31 작가를 꿈꾸는 이여 <소설가의 일>을 하자

매일 글을 쓴다. 한 순간 작가가 된다. 

말콤 그래드웰의 <아웃라이어>가 분류상으로는 경제, 경영서에 속하지만 사실 나는 이 책을 힐링 서적으로 읽었다. 


<아웃라이어>에는 저 유명한 '1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누구나 하루에 3시간씩 10년, 그렇게 1만 시간을 노력하면 한 분야에서 두 다리로 설 수 있는 전문가가 된다는 이야긴데, 이상하게도 내게는 그 법칙이 어깨를 토닥이는 아버지의 커다란 손바닥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많이들 그랬다. '10년 이라니, 그 무슨 끔찍한 소리냐' 면서 입을 딱 벌리고는 마치 제 스타일이 아닌 상대를 만난 소개팅 자리처럼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모차르트나 비틀스 같이 설득력이 충분한 사례를 눈 앞에 대하면서도 자신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내용인 양 관심을 껐다. 관심을 가진 몇몇 사람도 '그렇다더라' 수준의 가십거리로 받아들일 뿐, 단단한 의지나 펄펄 끓는 열정으로 이어진 경우는 흔치 않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예는 더 흔치 않았다. 


하지만 나에게 '1만 시간의 법칙'은 자기계발 이론 이전에 하나의 위로였다. 왜 그랬을까. 처음에는 '세상의 공평함'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타고난 천재는 없다. 마치 눈 먼 자들의 세계에서 유일한 눈 뜬 사람인양 차원이 다른 결과물을 내놓는 사람도, 알고 보면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그 자리에 간 거다. 성공은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면 이 세상은 그래도 합리적인 이유가 살아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내가 받은 위안을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세상의 공평함이 나 자신에게 적용되는 어떤 메시지가 있어야 했다. 나든 너든 그 누구가 되었든, 탁월성을 향한 케이블카를 타는데 공짜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때 이런 생각이 기린처럼 고개를 들었다. 


누구에게도 공짜가 없다는 말은, 반대로 해석하면 그 누구라도 탈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만 그 비용을 지불한다면 말이다. 

1만 시간 동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법칙이, 하루키가 평생 동안 지하실에 가득 채울 정도로 원고를 써 갈겼다는 사실이, 카잘스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여섯 시간씩 첼로를 연습했다는 일화가 내게 진심으로 위로가 되었던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갔다. 


그러므로 똑같이 하면, 똑같이 될 수 있다. 


과연 얼마큼 해야 도달할 수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공부해도 합격할 수 있는지,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지,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는지,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에 대한 확신조차 가지기 힘든 세상에서 '똑같이 하면, 똑같이 될 수 있다'는 선언만으로도 마음을 쓸어내리기 충분했다. 그것은 손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로 확고한 믿음이었다. 


나도 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얼마의 시간이 걸리느냐의 문제는 겁을 집어먹을 만큼 큰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노력의 여부와 관계없이 어쨌든 시간은 흐르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에 3시간씩 노력을 기울이든 아니든, 어쨌든 10년 뒤에는 2024년이 된다.  그때 나는 마흔 중반의 아저씨가 될터다. 하루 종일 잠만 자든, 잠을 줄여 책을 읽든 어쨌든 10년이란 시간은 흐를 것이다. 


<아웃라이어>에서 위로를 얻었다는 것은 바로 그런 확고한 믿음이 조급증과 불안함의 바다에서 조난자를 구조하듯 나 자신을 쑤욱 건져냈다는 이야기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을 읽으면서 나는 <아웃라이어>를 보았을 때와 같은 향기의 위안을 느꼈다. 오직 '쓰는' 작가 김연수. 언제 도달할 수 있을지,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지는 나중 문제로 제쳐둔 채 20년 간 오직 '쓰기'에만 진력해온 작가 김연수.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에게 자신이 경험한 시간의 흐름을 소설로 보여줄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그는 소설가가 된다. 나는 소설가 마쓰모토 세이초의 전집에 대한 이론 위키피디아의 설명에 감동받은 적이 있다. 그의 전집은 일본 '문예춘추'에서 모두 66권으로 출간됐는데, 일본 위키는 거기에다가 이런 상큼한 주석을 달아놓았던 것이다. '실제로는 선집'" 
"그보다 더 감동적인 일화는 에디거 월러스다. 서른 살부터 작품을 쓰기 시작해 이십칠 년간 170권이 넘는 장편소설을 남긴 소설가다. 월러스의 비서가 그를 찾는 장거리 전화를 받고 한창 집필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상대방이 말했다. '그럼 그 소설을 탈고할 때 까지 기다리겠소.'" 
"너무나 할 일이 없어서 결국 나는 중앙도서관 정기간행물실에 앉아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노트에다가 뭔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해에 나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글을 썼다." 
"언제나 제일 먼저 할 일은 글을 쓰는 일.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듣고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는 등, 다른 일들은 그 다음에(<북회귀선>의 헨리 밀러가 세운 소설 쓰기의 원칙 중)"

하루에 수십 편의 시를 썼다는 김연수다. 그래서 완성된 시 옆에 시를 쓴 '날짜'가 아니라 시를 쓴 '시간'을 적어두었다던 김연수다. 그렇다. 김연수는 닥치는 대로 읽고, 끊임없이 썼다. 20여 년 전 대학생 때, 비스듬히 굴러내려 가는 리어카가 방문 밖으로 고스란히 내다보이는 혜화동의 단칸방에 앉아 펜을 잡고 머리를 쥐어뜯었던 그리고 하여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었을까. 


오직 '쓰는' 작가 김연수 역시 나와 같은 색깔의 위로를 먼저 글을 썼던 수많은 작가들로부터 받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걱정할 시간에 차라리' 하는 자세로 무지막지하게 글을 써댄 전설적인 선배 작가들에 대한 동경이 김연수의 글에는 묻어난다. 그것은 확신의 향기다. 저렇게 하면 나도 될 수 있을 거라 의심하지 않는 그런 확신이다. 그렇기에 그는 성공할 수 있을까, 언제 자리를 잡게 될까, 같은 고민을 한 편으로 제쳐두면서, 그저 계속 문장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꿈이 있는 모든 사람들은, '소설가의  일'처럼 각자 자신의 일을 끊임없이 해내야 할 것인데, 그 길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똑같이 하면, 똑같이 닿을 수 있다는 말에는 똑같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말이 생략되어 있지 않은가. 


그 질문에 대해 김연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최대한 느리게 노력하라.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달리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다. 집을 나서자마자 스톱워치를 누르고 아무 방향으로나 달려간다. 최선을 다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조금만 힘들어도 걷는다. 줄곧 힘들면 줄곧 걷는다. 그렇게 절대로 최선을 다하지 않는 십오 분이 지나면 다시 돌아서서 집으로 향한다. 돌아올 때는 걷든 뛰든 내 마음대로 한다."

 

육지에 기어올라온 바다거북 같은 속도로 가봐야 얼마나  가겠어,라고 내가 혀를 차려는 찰나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리기는 그 어떤 날에도 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달리는 사람이 됐다. 가장 느리게 달릴 때 매일 달릴 수 있고, 매일 달릴 때 가장 많은 거리를 달릴 수 있다."

이러한 방법론은 소설 쓰는 일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글을 얼마큼 많이 썼느냐가 아니라 소설을 생각하며 세 시간을 보냈느냐 아니냐로 글쓰기를 판단하니 결과적으로 나는 매일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됐다. 그렇게 매일 소설을 쓰게 되면 가장 느리게 쓸 때, 가장 많은 글을, 그것도 가장 문학적으로 쓸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이 <소설가의 일>을 펴낸 오직 '쓰는' 작가 김연수가 그의 달리기와 그의 글쓰기에서 증명해낸 일일진대, 우리들 각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하지 말자. 오직 노력할 뿐이다. 어떻게 노력해야 하느냐. 느리게 하자. 느리게, 살살, 힘들지 않게. 그렇게 함으로써 매일매일. 


물론 <소설가의 일>이란 제목 답게 이 책에는 플롯이나 주인공 같은 소설 이론에 대한 이야기도 약간은 등장한다. 그러나 그 어떤 이론도 방법론도, '오직 쓴다'는 한 마디 앞에서는 쿠키 포장지 아래에 모여있는 부스러기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 역시 힐링 서적으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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