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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4. 2015

#36 당신은 NOT-TO-DO 리스트가 있습니까

삶의 비밀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지키는가에 달려있다

단골로 다니는 한의원이 있다.


사실 '단골'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조금 애매한 구석도 있다. 마을 어귀의 허름한 대폿집처럼 '퇴근 길이면 참새가 방앗간 기웃거리듯' 들르거나 회사 사무실 앞 양푼 찌개집처럼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가야 '단골'이라는 말에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병원은 가능하면 찾지 않아야 좋은 곳이요, '단골'로 다니는 병원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쯧쯧쯧 혀를 찰 일이기는 하다. 내가 그 한의원 선생님을 뵙는 것은 고작해야 1년에  한두 번 쯤이었다. '단골'이라고 말하기 멋쩍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차라리 무슨 일이 있으면 꼭 그곳을 간다는 의미에서 '지정 한의원' 쯤으로 불러두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그 한의원이 '지정' 한의원이 된 것은 몇 년 전 어머니 덕분이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 눈이 안 보이셨다. 아예 안 보였던 것은 아니고 마치 유리창에 빗물이 흐르듯, 뿌연 막이 있어 계속 얼룩이 흘러내리듯 하셨다고 한다. 서울 시내 유명한 안과 병원을 갔더니 다들 '원인을  모르겠다'라고 했고, 한 군데는 '일단  수술'이라는 식으로 소매를 걷어부쳤다. 화들짝 놀란 어머니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 전에 몇 번 침을 맞은 적 있던 그 한의원에 가셨다. 한의사 선생님은 맥을 짚더니 '어디 어디 장기가  약하다'라고 진단하고는 침을 몇 대 놓고 일단 누워있으라 했다.


그런데 웬걸. 침을 꽂고 30분쯤 누워있다 일어나니, 눈 앞에 뿌연 얼룩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는 게 아닌가. 눈에 이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의 기운이 떨어져서 눈으로 그 증상이 나타난  것뿐이었다고.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선생님 소매를 붙잡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 자리에서 바로 약 한 첩을 지어 드셨고, 그 뒤로는 한 번도 '눈 앞에 얼룩' 증상은 나타난 적이 없다.

4호선 한성대입구 역에 있는 <늘쾌차 한의원>이다. 


이 곳이 우리 가족의 '지정' 한의원이 된 내력이다. 내가 군대를 들어가기 전에도, 아우가 교환학생을 나가기 전에도, 외할머니가 고령으로 쇠약해지셔서 하혈을 하셨을 때도 <늘쾌차>에 들러 '늘 쾌차'하고 돌아왔다. "거기 한 번  가보세요"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한의원이다.


내가 몇 달에 한 번 들릴 뿐이었던 <늘쾌차>를 보름 간격으로 다시 찾은 것은 내 몸 때문이다. 보름 전, 이래저래 피로함이 몸에 눌어붙은 채로 떨어지지 않아 자동차가 정기 점검을 받듯이 한성대입구를 향했더니 선생님이 그늘처럼 어두운 말씀을 하셨다.


"맥이 너무 약합니다. 몸이 굉장히 안 좋으세요."


근본 원인은 역시 '무리'해서 였다. 건강을 유지하겠다고 나름 검도도 꾸준히 하고, 검도를 못 가는 날은 개천이라도 달렸으며, 야근 혹은 다른 약속으로 그 마저도 힘든 날이면 얼마 안 되는 점심 시간을 엄마손 파이처럼 얇디 얇게 쪼개서 러닝 머신 위를 뛰었다. 나는 원체 잠이 많은 사람이라 공부든 독서든 그 무엇 이든 간에 아침에 하려고 결심하면 작심  3일은커녕 작심 '당일' 수준으로 추락하고 마는 한심한 인물이다. 부득이하게 잠을 참아가며 올빼미형 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식으로 빠듯한 시간에 할 일들을 꾸역꾸역 채워가며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자주 때우다 보니 직장생활 만 3년이 못되어 나타난 결과였다.


"맥이 너무 약합니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몸 구석구석마다 '살려달라'고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기껏해야 '알레르기성 비염'으로  진단받을 뿐인 재채기와 콧물이 끊이지 않았고, 허리는 삐끗한 적도 없는데 이유 없이 아팠다. 얼굴은 뜨끈뜨끈 열이 오른 것이 대패질 안 한 나무처럼 거칠었고, 아침에 내 몸 하나 일으키는 일이 아틀라스가 하늘을 들듯 힘겨웠다. 고작 서른 중반인데, 건강을 챙긴다고 술 담배도 아니하는데 이런 결과라니 당혹스러웠다.


<늘쾌차> 선생님의 말씀과 <음혈론 : 건강해지는 9가지 방법>을 참고하여 당장 개선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정리했다.


1. 인스턴트를 끊는다 : 


라면, 과자, 소시지, 조미료를 비롯한 모든 인스턴트를 먹지 않는다. <먹지 마 건강법>의 손영기 한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인스턴트는 음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2. 커피를 끊는다 :


카페인은 '쓴 맛'이라 일견 음혈 보충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이뇨 작용으로 음혈을 계속 소모 시는 작용이 지대하다. 집중력 때문에 커피를 마셔오긴 했는데, 카페인이 높여주는 집중력이란 비유하건대 힘껏 따귀를 한 대 올려 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순간적으로 반짝 정신이 돌아오는 대신 얼얼함(음혈 소모)이 지속된다. 따라서 하루 서너 잔 씩 커피를 마셔가며 혈중 카페인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키는 사람은 멍이 드는 줄도 모른 채 지속적으로 따귀를 맞는 셈이나 다름없다.


3. 매운 음식을 끊는다 :


임진왜란 때 조선 땅에 처음 들어온 고추는, 원래 음식이 아니라 화생방 무기였다. 일본군들이 고춧가루를 태워 그 연기로 조선군에게 타격을 입힐 용도로 가져왔던 것이다. 조선 후기 음식으로 쓰이기 전까지 고추는 '독초'로 분류되었다고. 매운 음식을 먹으면 음혈이 쉽게 소모된다. 땀이 한 껏 나면서 영혼이 분리된 듯 정신이 혼미할 때,  그때 바로 음혈이 빠져나가는 중이다.


4. 잠을 일찍 잔다 : 


같은 시간의 잠이라고 같은 효과를 주는 것이 아니다. 한의학에서는 11시에서 3시 사이에 숙면을 취해야 비로소 음혈이 보충된다고 본다. 서양의학에서 '성장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파악한 시간대와 동일하다. 올빼미형 인간의 전형이지만, 몸을 살리려면 아침형 인간이 되는  수밖에 없다.


5. 찬 음식을 끊는다 :


이 세상에는 'made in 겨울왕국'이란 꼬리표가 달려 있는 맛난 음식들이 너무도 많다. 빙수는 어찌어찌 참을 수 있다지만 나는 냉면에 사족을 못쓰는 사람이다. 아이스크림도 마찬가지. 커피는 또 어떤가. 육각 얼음이 가득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야 말로 카페 매출액의 절반 넘게 차지하는 커피의 대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몸의 장기는 찬 기운을 싫어한다. 냉기를 쐬면 기가 쇠한다.

정리하고 보니 to-do 리스트가 아니라 not to-do 리스트였다. 


인스턴트, 커피, 찬 음식.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테지만, 실제로 뚝하니 끊어내는 사람은 흔하지 않다. 새롭게 습관을 들이는 것 못지 않게 기존의 습관을 끊는 것이 힘든 까닭이다. 하지만 내 몸을 망가뜨리는 대부분의 원인들이 '몸에 좋은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몸에 나쁜 무언가를 해서'인 것을 어쩌랴.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를 지은 세계적인 경영학자 짐 콜린스가 학생 시절의 이야기다. 길에서 마주친 교수 한 명이 짐 콜린스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자네는 열심히 사는 것 같기는 하지만 제대로 살고 있진 않군." 


짐은 교수님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이에 교수님은 정색을 하고 답했다.


"사람은 해야 할 일을 정하는 것 못지 않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네. 만일 지금 자네가 200만 달러를 상속받았다고 해보지. 그 대신 자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아 단 10년 밖에 살지 못하는 걸세. 그렇다면 자네는 무엇을 '하지 않겠는가'?"


훗날 짐 콜린스는 말하길, 그 순간의 깨달음이 자신을 현재의 짐 콜린스로 만들었노라고 했다. 


하지 않아야 할 것의 리스트를 정하는 것.
그리고 그 리스트를 철석같이 지키는 일.

보름 만에 <늘쾌차> 한의원에 들어섰더니, 선생님의 표정이 밝다. "선생님, 얼굴이 확 달라지셨군요." 내가 대학생 때도 환자로 찾아가면 꼬박 꼬박 '선생님'이라고 불러주셨더랬다. 나는 보름 동안 열심히 발등의 불을 껐노라고 이야기했다. 커피와 찬 음식은 아예 끊었고, 라면과 과자도 거의 먹지 않았으며, 매운 음식은 물론 고춧가루도 멀리해서 김치 대신 백김치를 먹었다고 말했다. 일찍 자는 것이 쉽진 않았지만,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자정 이전에는 잠들려고 애썼다고 '보고'했다.


"지켜야 할 것들을 다 지켜주시니 너무 고맙습니다."


<늘쾌차> 선생님은 오히려 내게 고맙다며 활짝 웃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지만 맥도 보름 전보다 확실히 강해졌다 했다. "지금 하신 것처럼 계속  관리해주실 거지요?" 100점 받은 학생의 머리를 쓰다듬듯 선생님은 나의 다짐을 받았다. 지금처럼 앞으로 하면 된단다. 그렇게만 하면 확실히 건강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한다.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을 해야 하냐고.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고, 건강하려면 무엇을 먹어야 하냐고. 그런 후에 그것들을 잘 지키느냐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몸이 상하면서 지켜야 할 일들을 꼽다 보니 태반이 '해야 할 것'이 아니라 '하지 말아야 할 것'이었다. 그 not to-do 리스트도 어느 것 하나 특별한 내용이 아니었다. 누구나 다 하는 내용. 다들 하지 말라고 하지만 "에이, 남들도 다 하는데 뭐" 라던가 "요즘 세상에 다 안 하고 어떻게 살아" 라던가 "좋은 효과도 있다잖아" 라면서 뜨끈한 구들장에 붙은 엉덩이마냥 게으름을 부리며 끊지 않았던 평범한 것들이었다.


불과 보름 걸렸다. 메아리처럼 희미해져 가던 맥박이 살아나는데 말이다. 하이얼그룹을 세운 중국의 장루이민 張瑞敏은 이렇게 말했다. "평범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 평범한 일을 모두 잘 해내는 것이 바로 평범하지 않은 것이다." 이 문장의 핵심은 바로 '모두'에 들어있는 듯 싶다. 


평범한 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알고 있는 일을 '모두' 잘 해내는 데
삶의 '맥'은 뛰는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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