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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재우 Aug 04. 2015

#35 글을 쉽게 시작하는 방법

첫 문장 앞에서 막막함부터 느끼는 당신을 위하여

Q. 질문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혹시 글 쓰실 때 어떤 단계로 글을 쓰시나요? 


대학생이라 이런 저런 리포트나 에세이를 써본 경험들이 있는데, 글을 쓸 때마다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한계를 뛰어넘고 싶어 이런 저런 책과 신문을 읽기 시작을 했습니다만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조언 부탁드립니다. 

A. 우선 아래 글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나는 마흔 고개를 넘어서야 글 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한층 가까이 다가왔다. 밥벌이를 위해 일하는  틈틈이...(중략)... 조금씩 써내려 갔다. 

나는...(중략)... 한동안 필사적으로 글 쓰는 작업에 매달렸다. 하지만 며칠, 심지어 몇 주 동안 작업을 중단하더라도 실을 다시 이어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집중력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책을 읽을 때 책갈피를 꽂아둔 곳에서 다시 읽어갈 수 있듯이 나라면 글을 쓰는 것도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자부했다. 

잘못된 생각이었다. 

글을 이어가는 솜씨가 부족한 탓이었다. 작가들도 기껏해야 문법과 철자법, 그리고 독서법을 배우는 것이 거의 전부다. 이런 수준을 넘어 작가들이 탁월한 업적을 남긴다면, 배우려고 애쓰는 것을 무턱대고 시도함으로써, 달리 말하면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를 터득함으로써 얻은 결과일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서머싯 몸은 '좋은 책을 쓰는 데는 세 가지 규칙이 있다. 안타깝게도 누구도 그 세 가지 규칙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요. 글쓴이는 애초에 자신이 '잘 쓸 수 있을 거라고 자부'했지만 결국 '글을 이어가는 솜씨가 부족'함을 통렬하게 깨달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좋은 책을 쓸 수 있는 규칙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서머싯 몸의 저 유명한 고백을 인용했지요. 서머싯 몸의 고백에 글쓴이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떨군 채로 힘없이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얼핏 보면 제대로 된 글을 발표한 적도 없는 풋내기 작가, 혹은 멋들어진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독서량이 미미해서, 다른 말로 하면 '내공이 부족해서' 텅 빈 원고지를 보며 머리칼만 쥐어뜯는 보통 사람이 써놓은 회고록 같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정 반대입니다. 저 글은 세계적인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이 쓴 <책 읽는 사람들>에서 발췌한 문장입니다. 1948년 생인 망구엘은 10대 후반에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 책을 읽는 행운을 잡은 이래로 평생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살았습니다. 소설과 비소설을 구분하지 않고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는 책을(어쩌면 열 손가락으로 들 수도 없는 책을!!) 써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무려 30개 언어 이상으로 번역되기도 했지요. 그런 망구엘이 저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짧은 경험에 따르면, 저 글에는 글쓰기 공부에 대해 엄청나게 중요한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첫 번째는 '글을 이어가는 솜씨'.
두 번째는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를 터득'한다는 말입니다.

'글을 이어가는 솜씨'부터 살펴봅시다. 여기서 핵심은  '이어가는'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집에는 하루키의 책이 60권 넘게 꽂혀 있지요. 제가 하루키의 최근 작품인 <1Q84>를 읽을 때 경험한 일입니다. 급한 일이 있는 여자 주인공이 꽉 막힌 고가도로 위에서  답답해하다가 차문을 열고 나옵니다. 제 기억에 택시였던 것 같군요. 그리고 고가도로에서 지상으로 내려진 사다리, 그러니까 일종의 비상구인 셈인데, 차라리 그 비상구로 내려가기로 결심합니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서 사다리에 매달린 주인공은 상당히 위태위태하지요. 


아무튼 이런 장면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재미있게 읽다가 문득 페이지를 보았더니 글쎄 무려 50p가 지나가 있는 게 아닌가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학교 교과서를 읽었을 때  두세 쪽을 읽는 것조차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들 기억하실 겁니다. 아무리 소설책이라지만 50p가 순식간에 넘어갔어요. 토끼 눈을 한 저는 지나간 50p에 무슨 내용이 있었나 뒤적거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50p가 고작 방금 이야기한 저런 내용이었던 겁니다. 고가도로에서 내려오는 여자. 대단한 사건도 없고, 배꼽을 잡을 만한 유머도 없었지요. 흥미진진이요? 하루키를 읽어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많은 하루키의 작품들은 양념 없는 흰 두부와 맑은 미소 된장국처럼 줄거리 자체는 담담합니다. 


대중소설 시장에서는 '페이지 터너'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목이 뻐근하도록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책이라는 뜻입니다. 저는 <1Q84>를 읽으면서 '아, 이런 책이 바로 페이지  터너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저는 별로 집중력이 좋지 않아서 어떤 책을 읽건, 심지어 어떤 영화를 보건 잠시도 참지 못하고 딴 짓을 하곤 하거든요. 


'고가도로에서 내려오는 여자'를 곰곰이 곱씹으면서 페이지 터너의 비결이 무엇인가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깨달았지요. 그것은 '글을 이어가는 솜씨'였던 겁니다. 똑같은 주제와 사건을 이야기하라고 해도 작가마다 혹은 강사마다 전달력은 천양지차입니다. 물론 가끔씩 빵빵 터지는 웃음거리라던가, 반짝이는 이벤트("여기서 잠깐!)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데 도움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페이지 터너는, 그러니까 독자로 하여금 눈을 떼지 못하고 글 머리에서 글 꼬리까지 정신없게 따라가도록 만드는 힘은 바로 '글을 이어가는 솜씨'에서 비롯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두 가지 문제가 남습니다. 


첫째, '글을 이어가는 솜씨'란 무엇이냐.
둘째, 그것을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느냐.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안타깝게도 서머싯 몸이 이미 드렸습니다. 글을 이어가는 솜씨라는 것이 분명히 있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연인끼리 앙탈을 부릴 때 종종 던지는 "내가 어디가 좋아?" 같은 질문과 비슷합니다. 물론, 구석구석 찾아서 답을 할 수는 있지요. 주술 관계에 오류가 없다. 맞춤법이 정확하다. 문장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예시가 비근하다. 하지만 그 모든 답들은 사실 가장 핵심적인 한 가지 답변만 못합니다. "그냥 뭐라 말할 수 없이 너가 좋아." 



우리는 왜 좋은지를 설명할 수는 없더라도, 정말 좋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글을 이어가는 솜씨'도 마찬가지입니다. <1Q84>가 왜 술술 넘어가는지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더라도, 술술 넘어간다는 것만은 읽어본 사람이라면 금세 깨달을 수 있지요. 


그렇다고 '글을 이어가는 솜씨'를 습득하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는, '아하!' 하는 대목을 만나면 어떤 점에서 내가 '아하!' 했는지를 곱씹어보는 편입니다. 그러면 대개 어떤 식으로든 '아하! 했던 이유'를 깨닫곤 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책에 간단히 메모하지요. 마치 땅에 떨어진 500원짜리 동전을 우연히 줍듯이 기분 좋은 순간입니다. 그런 '노력 아닌 노력'이 쌓여서 조금씩 글을 이어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솜씨가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그럼 두 번째 문제, '글을 이어가는 솜씨'를 어떻게 하면 기를 수 있느냐. 


그 답은 저기 앞에서 이야기한 망구엘의 언급,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를 터득'한다에 들어 있습니다. '글쓰기를 배울 수 있는 왕도(王道)가 따로 있는 것 아니냐?'고  궁금해하실 줄로 압니다. 요즘 서점에 가보면 글쓰기, 책 쓰기에 대한 책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서가의 한 쪽 벽면이 아예 글쓰기 코너로 되어 있지요.  그중 어딘가를 샅샅이 뒤져보면 왕도로 향하는 지름길을 발견할지도 모릅니다. 저도 그런 길을 찾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약간이긴 하지만요. 하루키의 책과 비슷한 숫자의 '글쓰기' 책이 제 책꽂이에는 꽂혀 있습니다. 


그런데 지름길을 열심히 훑은 결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읽을 때는 뭔가 있는 것 같았는데, 실제로 쓸 때는 거의 도움이 안되더라'는 것입니다. 마치 수능 외국어 영역 단기 특강 같은 것이지요. 특강을 들으며 열심히 받아 적은 '출제되는 지문의 18가지 유형' 같은 것은 실제 시험지와 마주했을 때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글쓰기의 비법도 그와 비슷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수영은 수영을 함으로써 배울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자전거를 탐으로써 배울 수 있고요. 연애도 연애를 하지 않고는 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럴진대 글쓰기라고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


글쓰기를 배우는 방법은 오직  '글쓰기'일뿐입니다.

저도 근래 몇 년 들어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 편이지만, 이런 가운데도 단 며칠만 펜을 손에서 놓으면, 손가락이 타이어라도 매단 듯 무겁고 둔해집니다. 문장은 나오지 않고 단어는 빗나가지요. 그렇게 적어도 2~3일은 다시 기름칠을 해야, 겨우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갑니다. 글쓰기 실력이 나아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겨우 평소 상태로 '회복'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경험으로 미루어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대단한 글을 써내는 정말 훌륭한 분들은, 정말로 꾸준하고 부지런히 '글쓰기'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책 혹은 지면이라는 형태로 외부에 '발표된' 글만을 보고 작가의 작업량을 추산합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문자 그대로 그것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하고 말이지요. 


언젠가 하루키의 수필에서 그런 말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자신의 지하실에는 발표하지 않은 원고가 꽉꽉 들어있는 상자들이 수북이 쌓여있다고. 일본에서 하루키의 작품은 평균 잡아 석 달에 한 권 꼴로 발매된다 합니다. 물론 단편 소설집이나 수필집은 중복으로 실린 작품도 있겠지만, 그만한 책을 내놓은 뒤에도 아직 빛을 쐬지 않은 작업이 그토록 많다는 사실에 '괜찮은 글쓰기'를 꿈꾸는 사람들은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리하겠습니다. 질문하신 대로 '글을 쓰기 시작할 때 막막함을 깨뜨리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글쓰기를 통해서 글쓰기를 배우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씀으로써 '글을 이어가는 솜씨'를 익힐 수 있고, 글을 이어가는 솜씨를 갖추게 된다면 어떤 종류의 글이라도 적어도 두려움은 없이 대할 수 있습니다. 자잘한 글쓰기 기술들은 또 있겠지만, 제가 아는 한 이것이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이자 가장 중요한 글쓰기 훈련의 원칙입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실지 모르시겠다면, 일단 시작하시길 권합니다. 


엉망진창인 시작일지라도 일단 이륙을 하고 보면 제법 괜찮은 문장이 술술 풀릴 수도 있고, 그런 후에 오히려 '쓸만한 시작'이 '아하!'하고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때 가서 시작 부분을 수정하면 됩니다. 글쓰기가 말하기와 달리 좋은 점은 외부에 내놓지 않는 한, 아직 '쏟아지지 않은 물'이라는 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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